마크 둘리(한국어로 치니 마인크래프트하는 둘리밖에 안나오던;;) 라는 철학자가 기고한 글인데, 여기서 저자는 데리다를 보수주의적 전통과 상충하지 않는 철학자로 조망합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과거(유산)를 계승하려는 데리다의 태도가 보수주의적 전통과 상충되지 않는다는거죠.
이는 국내외 데리다에 대한 대중적 인상과는 꽤 반대되는 뉘앙스입니다.
오히려 유산 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최근에 읽은 데리다 입문서들인 김민호 교수의 <데리다와 역사>, 강남순 교수의 <데리다와의 데이트>를 생각나게 하는 글입니다. 특히 보수주의 철학자인 로저 스크루턴 경의 유저 관리자literary excutor인 저자가 이런 주장을 했다는게 좀 신기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로저 스크러턴 경은 평생 데리다를 경멸해왔지만 저자 덕분에 삶의 마지막 순간에 데리다에 대한 경멸을 조금 누그려뜨렸다고 하네요.
(이와 별개로 저자 역시 데리다의 해체가 끼친 악영향에 데리다가 완전히 책임이 없진 않다고 말하는데, 대체 20세기에 해체란 무엇이었을까요? 21세기 한국에서 태어난 저로서는 감도 잘 안잡힙니다.)
2.이와 별개로 정치적 올바름과 포스트 모더니즘 어쩌구 하는 떡밥을 또 물었다가... 로저 스크러턴은 데리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고 검색하다가 구글 가장 상단에 위치한 이 글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어쩌다보니 20세기 프랑스 철학을 위시한 대륙철학에 관심이 갔고, 그 사유들이 주는 어떤 이미지를 선호해 철학과에 갔는데, 졸업한 지금에도 여전히 제가 철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끄럽게도 재학하는 당시 그다지 많은 철학책들을 읽지는 못했던거 같네요. 지금은 다른 분야에 도전중이면서 그때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어나가는데 공부하는 속도는 더디기만 하네요.
다시 정치적 올바름과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돌아가서, 솔직히 그런 떡밥이 돌면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흔히 인식되는) 철학자들을 피상적으로 비판하는걸 볼때면 네가 그 철학자들에 대해 뭘알아! 하는 반발심이 드는데, 돌이켜 보면 저 역시 잘 알지 못한채로 어찌저찌 배운 몇몇 구문들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서 부끄럽네요. 더이상 부끄럽지 않게 배워보자며 책을 많이도 샀지만, 이것저것에 관심이 생기며딴 철학자들로 빠지게 됩니다. 과연 언제쯤 다 읽을수 있으련지...
Contrary to his popular caricature, Derrida regularly insisted “I write in order to keep.” [...] For Derrida, writing permits us to reconnect with the past and to push against the boundaries of loss and forgetfulness. It is central to what he calls “the work of mourning,” the work of dealing with the dead. To genuinely mourn is not merely to accept or grieve loss, but to use every trace of the past to uncover its secrets and to make it more alive. As such, the work of mourning, without which no home can endure, is a work of love for the ghosts of a past that cannot be made fully present. As he put it in an interview with me: “I have a passion for the impossible”—meaning that he was passionate about recovering as much of the past as possible, even while knowing that full resurrection was an impossibility.
이 부분이 참 흥미로우면서도, 데리다를 너무 낭만주의 철학자처럼 묘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네요. 또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가 보수주의 철학자라면, 철학사를 배경으로 하는 연구자 중에 보수주의 아닌 사람이 어디있나 싶기도 하구요.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데리다의 "보수주의" 하니 하버마스가 떠오르는군요. 하버마스가 1980년 아도르노 상 수상 연설 "미완의 기획으로서의 현대" (Die Moderne — ein unvollendetes Projek) 에서 자신의 계몽적 모더니즘에 반하는 3가지 퇴행적 보수주의 조류를 들고, 그 중의 "청년 보수주의" 딱지를 데리다를 포함한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붙인 적이 있죠. 데리다의 소위 "보수성"이 한편에서는 긍정적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퇴행적으로 묘사되는 것이 재밌기도 합니다.
Let me briefly distinguish here the antimodernism of the Young Conservatives from the premodernism of the Old Conservatives, on the one hand, and the postmodernism of the New Conservatives, on the other.
The Young Conservatives essentially appropriate the fundamental experience of aesthetic modernity, namely the revelation of a decentred subjectivity liberated from all the constraints of cognition and purposive action, from all the imperatives of labour and use value, and with this they break out of the modern world altogether. They establish an implacable opposition to modernism precisely through a modernist attitude. They locate the spontaneous forces of imagination and selfexperience, of affective life in general, in what is most distant and archaic, and in Manichaean fashion oppose instrumental reason with a principle accessible solely to evocation, whether this is the will to power or sovereignty, Being itself or the Dionysian power for the poetic. In France this tradition leads from Georges Bataille through Foucault to Derrida. Over all these figures hovers, of course, the spirit of Nietzsche, newly resurrected in the 1970s.
아무래도 마크 둘리가 이해하기엔 상속과 애도를 강조하는 데리다에게서 보수주의의 향기를 진하게 느낀 반면, 본문에서 스탈린주의자라고 욕먹는 사르트르 같은 (저자가 생각하는)급진좌파철학자들한테서는 그런 것보단 파괴적인 면모를 본것 같습니다.
데리다를 싫어하는 쪽에서는 그를 흔히 해체와 파괴, 허무주의 철학자로 비난하는 반면 옹호하는 쪽은 그렇지 않다며 그를 변호하려하는데, 데리다와 척을 질것 같은 보수(그것도 로저 스크루턴의 유저관리자인) 철학자가 옹호하는 쪽과 마찬가지의 논리를 내세우며 데리다를 변호하려 한다는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저도 은연중에 보수주의자라면 모두 데리다를 비난할거라고 생각한 것이겠죠.
이런것을 보면 한 철학자를 그 철학자가 속한것으로 생각되는 진영의 특성이나 논리를 너무 강조하며 그 철학자를 파악하려 하는게 그닥 유용하지 않다는 생각이듭니다. '저사람은 포스트모더니스트니 혹은 좌파이니 혹은 우파이니 이런 저런 사상을 가질거야'라고 생각해버리는게 도움이 안될것 같고, 오히려 그 철학자에 대한 편견만 강화시켜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그 철학자의 학파나 소속 진영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더라도, 그 철학자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상을 파고드는게 공부에도, 편견으로 부터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