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주의와 충분이유율

충분이유율이 참이라면 모든 존재는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존재 X가 그렇게 존재하게 한 이유가 있다면 당연히 그 존재 X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충분이유율이 참인 조건에서는 우연적 존재는 있을 수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신 자체가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될 수 있는 그런 필연적 존재는 없다고 봅니다. 비슷하게 스피노자식으로 말해 자기 원인과 같은 필연적 존재인 실체와 같은 개념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굳이 그런 개념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충분이유율과 가능 세계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능 세계가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충분이유율이 참이라면, 모든 존재는 필연적이라고 봅니다.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세계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각각의 인간이 왜 태어났는가는 그 테두리 안에서 말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존재 이유가 닫혀 있는 상황에서라도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충분이유율이 참이고, 가능 세계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모든 존재는 필연적인 것이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때문에, "나는 누워있다"는 명제는 충분이유율이 참이라면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럼 차라리 충분이유율이 참이라면 필연/우연의 이분법을 폐기해버리는 것이 올바른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필연/우연의 구분은 인간이 가능 세계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서 생기게 된 것이라면, 그것은 실제적인 구분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포스팅에서 너구리님과 저의 대화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보기에 구리님은 "필연성"이란 단어를 형이상학적 필연성과 자연적 필연성을 혼용해서 쓰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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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율이 지배하는 결정론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지금 주사위를 던져 6이 나올 확률이 육분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정보에 대한 무지때문이지
모든 원자의 위치와 운동량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라플라스의 악마의 관점에서는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 6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 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로 넘어오면 그러한 기계론적 결정론은 깨집니다.
우주 자체가 애초에 입자성과 파동성이 중첩되어 있는 확률의 세계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무지에 의한 확률이 아니라, 라플라스의 악마조차도 알 수 없도록, 우주가 본질적으로 확률의 파동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세계에서는 '필연성'은 성립되지 않게 됩니다.

약한 결정론 (weak determinism) 인지 강한 결정론 (strong determinism) 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이 둘의 차이는 시작점이 필연적인지에 따라 갈립니다. 약한 결정론은 여러가지 시작점이 있을 수 있다고 하고, 강한 결정론은 시작점이 하나밖에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약한 결정론의 경우에는 시작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필연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강한 결정론의 경우에는 모든 것이 필연적이겠지요 (법칙이 필연적이라는 전제도 한다면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양자역학에도 많은 해석이 있고, 결정론을 고수하는 해석들도 있습니다. 초끈이론도 있고 봄식 해석도 있지요. 물리학에서는 결정론이 사장됐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철학계에서는 결정론이 사장됐다고 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끈이론이나 봄식 해석을 완전히 배재할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Albert - Quantum Mechanics and Experience에서 봄식 해석을 간략하게 다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Albert 피디에프 링크입니다: https://www.rivercitymalone.com/wp-content/uploads/2011/12/David-Albert-Quantum-Mechanics-Experience-199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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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형이상학을 테크니컬하게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guri님이 올리시는 일련의 글들을 읽다 보면 '가정 망각의 오류'를 자주 범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장에서 '전건'에 해당하는 "충분이유율이 참이라면"이라는 부분은 단순한 가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별도의 논증이 제시되지 않는 이상, 충분이유율이 참이라는 것은 결코 자명한 사실이 아닙니다. 특별히, 저로서는 오늘날 형이상학에서 충분이유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철학자들이 몇이나 될지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세계가 '원인-결과'의 관계로 되어 있다는 주장은 (물론, 형이상학적으로는 의문스럽다고 해도) 자연과학적으로 널리 통용되지만, 세계의 모든 것들에 '이유'가 있다는 주장은 일종의 목적론적 질서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주장은 "신이 세상의 모든 것에 이유를 부여하였다."라는 주장만큼이나 철학적으로는 매우 의문스러운 주장입니다. 그런데 guri님은 이 가정을 망각하고서 어느 순간 곧바로

라는 결론을 도출해 버리십니다. 충분이유율 자체가 철학적으로 논란의 대상이고, 현대철학자들 중에서 이 법칙을 과연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조차 의문스럽고, 심지어 guri님의 글에서도 저 법칙을 정당화하는 어떠한 논증도 제시되지 않았는데도, 충분이유율에 대한 '가정'에서 충분이유율이 참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리시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대통령이라면, 나는 우리나라를 개혁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대통령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식의 가정망각의 오류들이 너무나 자주 범해지고 있다 보니, guri님께서 너무나 커다란 형이상학적 주장들에 손쉽게 개입하게 되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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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ri님의 결론을 잘못 이해하신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 글에서 guri님이 '충분이유율이 참이다'라는 주장을 하신 것 같진 않네요.

guri님의 글은
'If 충분이유율이 참이면, then (even if there are possible worlds,) 모든 존재는 필연적인 것이다.' 로 이해하는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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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하나의 해석이긴 하지만, 저는 guri님이 지금까지 쓰신 글들을 볼 때 충분이유율이 참이라고 결론 내리시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결정론자“라고 규정하시면서, “자유의지는 없다.“와 “모든 것의 원인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라고 반복적으로 글을 올리셨으니까요.

그래서 저에게는 저 결론 부분이 “충분이유율은 참이다. 그리고 충분이유율이 참이라면, 가능세계 개념을 받아들이더라도 모든 존재는 필연적이다.“라고 읽히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저 결론 부분 문장 자체도 애매하다는 점에서, 그다지 좋은 요약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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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것들에 '이유'가 있다는 주장은 일종의 목적론적 질서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충분이유율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존재하게 한 원인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원인"이란 말은 넓은 의미에서의 원인을 뜻합니다. 달리 말해 무에서 유가 나올수 없다는 뜻이지요. 충분이유율과 목적성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몇 가지 중요한 혼동들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 원인과 이유: '원인(cause)'이라는 개념과 '이유(reason)'라는 개념은 서로 범주가 다릅니다. 전자는 '원인-결과'라는 인과적 관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지만, 후자는 '전제-결론'이라는 추론적 관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제가 어느 날 자동차에 부딪혀서 다리가 부러졌다면, 다리가 부러진 '원인'은 명백하게도 '자동차 사고'이지만, 다리가 부러진 '이유'가 따로 존재하는지는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혹자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하려 할 지도 모르지만, '원인'과는 달리 '이유'의 영역은 실증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2) 인과율과 충분이유율: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는 법칙은 '인과율'이고 모든 것에 '이유'가 있다는 법칙은 '충분이유율'입니다. '원인'과 '이유'가 개념적으로 다르듯이, '인과율'과 '충분이유율'도 개념적으로 다릅니다. 특별히, 충분이유율은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츠의 철학처럼 대개 신이나 최선의 원리를 상정하는 형이상학에서 주로 제시됩니다. 다른 맥락이 제공되지 않는 이상, 충분이유율을 받아들이면서 이런 형이상학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철학 전공자들에게는 굉장히 의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3) 인과와 형이상학: '원인'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결정론과 같은 특정한 형이상학을 전제하고서만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인 것도 아닙니다. "내 골절의 원인은 자동차 사고이다."라는 아주 일상적인 진술에서 "내 골절은 필연적이다."라는 형이상학적 진술은 도출되지 않습니다. 별도의 아주 특수한 논의들이 그 사이에 따로 상정되지 않는 이상, 그 두 진술은 연역논리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에 '원인'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그 일들이 '필연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그 사이를 연결해 줄 수많은 특수한 논의들을 입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4) 가능세계와 결정론: 가능세계 의미론이 그 자체로 결정론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능세계 개념은 단지 "필연적이다"와 "가능하다"라는 양상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는 개념일 뿐입니다. 물론, 이 개념들로부터 데이비드 루이스처럼 어떤 존재론적 개입을 밝혀내려 하는 시도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가능세계 의미론 자체가 어떠한 형이상학적 함의를 지니는지에 대해 철학자들이 완전히 합의하고 있는 내용은 (적어도 제가 아는 한에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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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드립니다.

저의 자의적 생각일 수도 있는데. 저는 쇼펜하우어의 충분이유율을 염두에 두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하는데, 저는 이에 동의를 하거든요. 보통 이유라는 것은 인간의 어떤 개념적 행위를 설명할 때 도입되는데, 저는 이것 조차 하나의 원인 개념으로 간주합니다. 넓은 의미에서요. 그러니까 이유라는 것도 큰 틀에서는 하나의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자세한 논증이 필요하겠지만, 저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철학자도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