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기본적으로 생각을 공유할 수(예를들면 텔레파시등등)없습니다.
기독교는 그 점을 이용해서 자기 자신을 끝없이 의심하게 만들고 점점 더 속박시킵니다,(그러니까, 나는 10정도믿는걸 다른사람은 알 수 없기때문에 계속 의문이 들게 합니다)
기독교가 지금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해서 의도까지 선한것은 아닙니다
기독교는 과학/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명백한 문제가 있습니다
(다윈의 자연선택)기독교가 진리이기때문에 지금까지 내려오는것이 아니라 가장 적합한 생존시스템을 가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려오는것입니다.
따라서 지나온 세월을 근거로 기독교를 정당화하는건 논파될 수 있는 주장입니다
기독교가 큰 영향력(기원력,인구의 20억명)을 가진것은 정치와 운의 결합이 컸습니다.
기독교는 정치적으로 이용(또한 정치는 사람들을 일단 생활시키게 합니다)
되게 되었습니다
2가지요소인데
1.정치입지강화
2.선한영향력이용해 생활을 도움
이는 완전히 반대되는 종교(믿는사람을 다 죽인다)를 생각해보면 명백해집니다
이는 기독교를 정치인들이 선택하게 만들어서, 유지되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기독교는 그 동아줄이 끊어졌고, 포교라는 동아줄에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것을 선택했기때문에 살아남았습니다
기독교의 시스템은 정말 예술적일정도로 완벽한 시스템입니다
(지옥-사람-포교-후대-선교-....)
딱히 문제가 되는 글은 아닐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문투가 다소 공격적이라는 느낌을 받지만, 개인차가 있는 것이니까요. 분란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아니시라면 주제는 문제가 없습니다. 여긴 기독교적인 주제로도 글이 많이 올라오니까요.
자, 그럼 저는 글쓴이께서 쓰신 이 일련의 아이디어를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줄 한 줄 피드백 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는 진리가 아닌 종교적-생존-시스템일 뿐입니다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 얄팍한 경험상 이 정도 사이즈의 주장이면 벽돌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의 근거가 필요할 겁니다. 그게 아니면 반기독교적 슬로건일 뿐입니다.
기독교는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전히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밑에 나오는 정치 관련 언급이 유관한 내용이겠으나, 여전히 '밀접한 관련'이라는 게 어떤 방식으로 맺어진 관련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기독교는 정치적으로 이용(또한 정치는 사람들을 일단 생활시키게 합니다)
되게 되었습니다
2가지요소인데
1.정치입지강화
2.선한영향력이용해 생활을 도움
이는 완전히 반대되는 종교(믿는사람을 다 죽인다)를 생각해보면 명백해집니다
이는 기독교를 정치인들이 선택하게 만들어서, 유지되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기독교는 그 동아줄이 끊어졌고, 포교라는 동아줄에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큰 영향력(기원력,인구의 20억명)을 가진것은 정치와 운의 결합이 컸습니다.
정확히 무슨 사례를 염두에 두고 쓴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초견적으로 몇 가지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첫째는, 초기 기독교인들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초기 기독교의 리더들조차도 부와 명예는 커녕 고생하다 순교한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기독교와 정치가 연관성을 맺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독교를 반대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다수가 됐기 때문에 옳은 것처럼 여겨질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반대로 옳기 때문에 정치적 다수로부터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기독교가 정치 권력과 결탁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기독교가 정치적 산물이라는 주장이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셋째로, 설령 제도적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부패했었다 하여도 그리스도 신앙이 거짓이라는 것을 입증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각을 공유할 수(예를들면 텔레파시등등)없습니다.
기독교는 그 점을 이용해서 자기 자신을 끝없이 의심하게 만들고 점점 더 속박시킵니다,(그러니까, 나는 10정도믿는걸 다른사람은 알 수 없기때문에 계속 의문이 들게 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서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는 게 일단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그걸 통해서 뭘 속박시킨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네요. 괄호 안의 말도요. 무슨 의문이 계속 든다는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기독교가 지금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해서 의도까지 선한것은 아닙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해서 의도까지 선한것은 아닙니다"라는 말은 그럴 수 있습니다. 여기서 행위 주체인 기독교는 누구를 가리키나요? 개별 기독교인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카톨릭 보편교회 같은 걸 말하나요? 아니면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을 말하는 것인가요? 만일 그렇다면 그런 행위 일반의 의도가 선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충분한가요?
기독교는 과학/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명백한 문제가 있습니다
"명백"한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주시면 좋겠네요. 물론 저는 기독교에 그런 문제들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게 있다고 해서 믿음을 포기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스러운 것이지요. 저는 아직까지 믿음을 도저히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보지 못했습니다.
(다윈의 자연선택)기독교가 진리이기때문에 지금까지 내려오는것이 아니라 가장 적합한 생존시스템을 가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려오는것입니다.
따라서 지나온 세월을 근거로 기독교를 정당화하는건 논파될 수 있는 주장입니다
애초에 종교가 유지되었던 세월이 길다는 것을 기독교를 정당화하는 주장 자체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대번에 이 논증은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교를 지지하는 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이 주장은 허수아비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기독교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종교라는 현상에 대해서 '기독교가 적합한 생존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라는 것과 '기독교가 참된 종교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좋게 봐야 경쟁하는 설명입니다. 단순히 기독교가 적합한 생존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반대쪽 설명을 논파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지요 참된 종교니까 가장 살아남기 좋은 방식의 시스템을 갖고 있을지도요.
결론적으로 기독교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것을 선택했기때문에 살아남았습니다
"결론"이라고 말하려면 논증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읽기에는 논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일련의 독립적인 주장들만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아주 많은 근거를 필요로 하는 주장들이죠.
부분적으로 맞는 말씀도 있습니다. 기독교회는 믿음과 용서와 사랑으로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기독교의 시스템은 정말 예술적일정도로 완벽한 시스템입니다
(지옥-사람-포교-후대-선교-....)
결론적으로 기독교를 믿는것은 파리지옥에 스스로 들어가 나올 수 없는 것과 동일합니다.
파리지옥이 아니라 저는 파리천국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ㅎㅎ
하나님 앞에 파리목숨인 우리가 용서받고 용납받고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위로하고, 피차 서로 감사하고, 고난 중에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으니까요. 한 번 들어오면 나가기 쉽지 않지요.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확신합니다. 환대와 사랑, 감사, 위로, 용서, 훈계와 지지, 교제의 풍성함을 교회 공동체에서 경험하게 되면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건 맞습니다!
글쓴이분 말씀대로, 기독교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시면 어떨까요?
개리 하버마스나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같은 사람들은 무신론자들과도 적극적으로 논쟁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왕이면 알리스터 맥그래스 같은 과학자 출신 신학자가 쓴 책들도 좋구요, 좀 더 마음이 열린다면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나 팀 켈러의 <하나님을 말하다> 같은 책도 도움이 될 겁니다.
저보다 똑똑하고 박식하신 그리스도인도 계시니 아마 더 궁금한 건 그 분이 또 답해주시지 않을까 싶네요. 글쓴이께서 복음을 직접 마주하실 수 있기를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하겠습니다ㅎㅎ
예전 22년도쯤 학교에서 썼던 글이었어요ㅎㅎ
소중한 비판을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비판을 거의 처음 받는거라 좀 떨리면서도 댓글달아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네요
제가 더 발전하기위해서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판 하나하나가 매우 날카롭고 생각할거리를 많이 주는 것 같아 좋아요.
저도 이런말씀 드리기는 뭐하지만 항상 성경을 곁에 두고 있어요.
저보다 절대적인 무언가가 제 곁에 있다는 느낌이 좋아서요
솔직히 기독교나 종교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을 하고 갈팡질팡했어요
답변을 통해서 제 논리의 허점을 더 생각해보게 됐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네요
종교와 모든 사상을 초월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꾸벅)
저도 문제가 될 만한 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기독교에 대해 논의할 때 (a) 사회적 집단과 제도로서의 기독교를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 (b) 신학적 사상과 이론으로서의 기독교를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자라면 교회에 대한 몇몇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가능할지도 몰라요. "내가 교회에 가 봤는데 …하더라.", "내가 기독교인들과 만나 보았는데 …하더라.", "내가 성경을 읽어 보았는데 …하더라."와 같은 식으로 말이에요.
하지만 후자라면 '신학', '종교학', '종교철학' 같은 전문적인 학술 담론에 개입하지 않고서는 유의미한 이야기를 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기독교의 안과 밖에서 이루어진 비판, 변론, 논쟁을 학문적으로 꼼꼼하게 고찰해야만, 단순한 '인상 비평'을 넘어서 기독교에 대한 공정하고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해지는 거죠.
제가 보기에, Nirvana님이 다루고 싶어하시는 주제들은 (b)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가령, "기독교는 단순히 정치 권력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가령, 니케아 공의회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열렸을 뿐이다.)", "기독교의 의도는 선하지 않다. (가령, 약한 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예수의 주장은 '르상티망'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기독교는 현대과학과 상충한다. (가령, 기독교는 진화론을 부정한다.)"와 같은 주장들은 신학, 종교학, 종교철학에서 논의되는 주제들이거든요.
이런 주제들을 다루는 책들이 많이 있지만, 저는 책보다도 우선 좋은 유튜브 채널들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처음부터 딱딱한 학술 서적을 읽는 것보다는 영상 매체가 훨씬 접근하기 쉬우니까요.
<잘잘법: 잘 믿고 잘 사는 법>: 기독교 방송 CBS에서 제작하는 채널입니다. 연세대 신학과 김학철 교수님이나 청파교회 김기석 원로목사님 등, 현재 한국 개신교계에서 아주 신뢰할 수 있는 '어른' 분들이 기독교 신앙의 여러 주제들에 대해 논의하는 영상들을 다루고 있어요. 아주 일상적인 신앙 생활과 관련한 고민부터 시작해서, 꽤나 신학적이고 학술적인 주제들까지 컨텐츠의 폭이 넓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몇 가지 추천드리는 영상은 다음과 같아요.
<신학블록버스터>: 한국교회탐구센터 채널에 있는 재생목록 중 <신학블록버스터>라는 목록이 있습니다. 두꺼운 신학 벽돌책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주는 내용인데,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학의 굉장히 다양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특별히, (위에서 Raccon님도 언급하신) 알리스터 맥글래스의 『기독교의 역사』와 로저 올슨의 『현대신학이란 무엇인가』를 다루는 내용이 좋았습니다.
<신학펀치>: 다소 오래되기는 하였지만 CBS에서 옛날에 <신학펀치>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에 관한 도발적인 질문들을 모아둔 뒤, 서로 의견이 조금 다른 신학 교수님 두 분을 초청해서 토론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일반 신앙인인 낸시 랭 씨가 중간에 끼어 있어서, 이해가 되지 않거나 의견이 다를 때 반박을 제기하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유튜브에 잘 보존되어 있더라고요.
<기독교미디어 로고스 TV>: 다양한 신학교의 교수님들이 출현하시는 신학 강좌 채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채널에 있는 김근주 교수님의 구약성서 강해와 배덕만 교수님의 교회사 강의를 좋아합니다.
그밖에도 유튜브에는 기독교 관련 좋은 컨텐츠들이 정말 많습니다. 개인들이 운영하는 채널 중에서는 기독교 변증을 주로 다루는 오성민 선생님의 <다마스커스 TV>,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장민혁 전도사님의 신학 스터디 영상 및 인터뷰 영상들을 담고 있는 <오늘의 신학 공부>, 오후다섯시교회 전원희 목사님의 구약성서 강의를 담은 <오늘의 구약 공부>, 신약 강의를 주로 다루는 장로신학대학교 안용성 교수님의 <안용성의 성서와 해석> 등을 자주 봅니다. 참고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흔히 기독교와 로마제국 사이의 관계, 기독교와 중세 유럽 사회의 관계, 기독교와 근대 제국주의의 관계 등을 거론하면서 이런 문제제기들을 많이 하죠. 하지만 실제 역사의 구체적인 정황들을 살펴보면, 결코 정치와 종교 사이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령,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의 상황만 하더라도, 그 당시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의 권력 안정화에 반드시 도움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오히려 그 시기 콘스탄티누스의 소집으로 열린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통'으로 인정된 기독교는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을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파였고, 콘스탄티누스 자신은 성부와 성자의 유사본질을 주장하는 아리우스파라는 이단에 더욱 기울어져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기독교 공인 이후에도 정통파 기독교는 엄청난 탄압을 받았어요. (아타나시우스가 집전하는 부활절 미사에서 아리우스파에 의한 대학살이 일어날 정도로요.) 정치적으로 권력을 잡지 못하였던 아타나시우스파가 신학적 논쟁에서는 결국 승리를 거두어서 이후의 수많은 공의회를 통해 '정통'으로 인정된 것이 거의 기적적인 사건일 정도이죠. 로마 정치가 기독교를 정당화했다거나, 기독교가 로마 정치를 정당화했다는 주장은, 적어도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의 아타나시우스/아리우스 논쟁 상황에서는 결코 적용되지 않아요.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이동영 교수님이 삼위일체론 역사 강의에서 이 점을 잘 설명해 주시죠.
더 이전 시대인 초대 교회 시대에는 기독교와 로마 제국이 상당한 갈등 관계이기도 하였죠. 로마가 기독교를 명시적으로 박해하던 시대였으니까요. 게다가, 오늘날 신약성서신학에서 '제국 연구'라는 주제가 많은 학자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듯이, 신약성서 자체가 반제국주의 성격을 꽤나 강하게 지닌 문헌이기도 해요. 애초에 '복음(유앙겔리온)', '주님(퀴리오스)', '국가(바실레이아)', '구원(소테리아)', '하나님의 아들(테우 휘오스)' 같은 단어들은 로마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기 위해 사용된 '전문 용어'들인데, 신약성서는 이 전문 용어들을 예수와 하나님 나라를 전도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그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독교가 했던 행위들은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으로 여겨질 가능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었던 거죠. (실제로, 예수 자신이 반역자로 사형당하기까지 했고요.) <오늘의 신학 공부> 장민혁 전도사님의 아래 영상에 이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들이 소개되어 있어요.
또, (Raccon님이 이미 잘 지적하셨듯이,) 정치와 기독교의 결합이 반드시 부당하고 잘못되기만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죠. 가령, 5세기 초에 서고트족의 침략 당시, 황제는 로마를 버리고 떠났지만 교황은 로마에 남아 서고트족과 평화협정을 맺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죠.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했던 로마 말기에, 이렇듯 국가가 수행하지 못하는 정치적 역할을 교회가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그 당시 로마 사람들에게 교회가 인정을 받았던 거고요. (이후 중세 교황권의 강화도 초기 교회의 이런 긍정적인 기능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물론, 교황권의 강화에는 분명히 어두운 측면도 있었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왜 그 권위를 인정하게 되었는지 추적해 보면 그 과정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려운 거죠.)
또 8-9세기 중세 문예부흥도, 샤를마뉴 대제가 잉글랜드의 신학자인 알퀸을 통해 수도원 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학교를 설립하고, 그리스-로마의 문학 작품들과 기독교 신학서 등 수많은 책들을 필사하고 편찬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문맹이었던 사를마뉴가 자신의 지적 한계를 인정하고서 당대 지식인들이었던 신학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을 때, 중세시대의 중요한 학문적-예술적 결과들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현대적인 예를 들자면,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폐지에 성공회 대주교인 데스몬드 투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나, 미국 침례교 목사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미국의 인종차별 비판에 앞장섰다는 점 등이 기독교의 정치적 활동에서 대표적으로 긍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도 아주 신실한 신앙인으로 자신의 신앙적 신념과 정치적 신념을 긴밀하게 결합시켰던 긍정적인 사례로 미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죠.
(2) 기독교의 의도는 선하지 않다?
니체가 기독교 도덕을 '르상티망(원한감정)'의 발현이라고 비판하죠. 기독교인들 본인들이 약자들이기 때문에 약자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내세우는 것일 뿐, 결국 그들도 강자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이런 니체의 비판은 철학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죠. 소위 '의심의 해석학'이라고 하는 (니체뿐만 아니라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방법론부터가, 반증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뿐더러(포퍼), '의심의 해석학'이라는 방법론이 텍스트가 말하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신뢰의 해석학'과 반드시 대립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서요(리쾨르). 게다가, 약자를 혐오하는 문화가 당연했던 고대 시대에 기독교가 약자의 편에 섰다는 것 자체가 문화인류학적으로 아주 놀라울 만큼 기적적인 사건이라는 평가도 존재하고요(지라르).
그런데 이런 이론적인 논의들을 떠나서, 실제 기독교인들이 실천하고 있는 활동들을 보면 "저 사람들의 의도는 선하지 않아!"라고 단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뒤에 다른 음흉한 의도를 숨기고서 선한 일을 한다고 하기에는, 인생 전체를 그 일에 다 걸어버리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렇게 인생을 다 걸만큼 자신의 이기심을 의도적으로 숨길 수 있다면, 오히려 그 의도야 말로 진정한 '선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래는 제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의 영상과, 제가 한 달에 한 번 봉사활동을 가는 주사랑공동체(베이비박스 설립 단체)의 영상입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입으로도 결심조차 하기 힘든 일들을 실제로 매일같이 해내는 이런 분들을 볼 때, 저는 이분들의 의도가 선하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가 없어요.
(3) 기독교는 현대과학과 상충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올린 영상들에도 많은 답변들이 있고, 제가 개인적으로 서강올빼미에 따로 쓴 글도 있습니다.
국내에 일부 과격한 종교... 그 중에서도 정치권에 영향을 주고, 의도적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얻으려고 하는 종교단체들이 있죠. 그리고 그들이 대부분 기독교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미지가 나빠지는 거 같습니다. 특히나 요즘에 전광훈 목사와 그의 지지자들이 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눈에 띄네요. 사실 이렇게 정치가 종교권 눈치를 보는 건 해외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전광훈과는 다른 범주겠지만) 독일에서는 기민당이 존재하고, 미국 대선 후보들은 경선 때... I believe in god을 외치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까요.
철학 커뮤니티에서 다룰 얘기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일반적인 종교인들의 이미지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건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겠죠. 때문에 아마 말씀하신 (a) 사회적 집단과 제도로서의 기독교가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을 상당히 심도깊게, 심지어는 학술적인 접근하는 시도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b)보다 (a)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할 수 있고, 그 관심의 깊이도 얕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로 조사를 해본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조직력이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는 큰 요소로 보입니다. 큰 집단이 모여있으면, 정치적인 활동에 쓰기 유리하겠죠. 간단하게는 선거에서의 머릿수일거고... 정치를 할면서 필연적인 단체 활동에 자원봉사자들로 사용되는 게 더욱 직접적일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조직력이 교회 일부 목사님의 말에 따라 순응적으로 움직이죠. 개인적인 일화입니다만... 동네 교회에서 목사님이 청년부 친구들에게 교회 일이 있다고 하니까 20명 정도 되는 친구들이 무보수로 나와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걸 자주 봤습니다. 자본주의에 찌든 저로서는 저렇게 무보수로 아무 불만없이 점심에 롯데리아 정도만 사주면 별말없이 움직이는 인력들이 있다는 게 참 신기했죠. 단순히 교회 일로써 동원되는 건 귀여운 일이지만... 목사가 만약 전광훈같이 극단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자라면 악영향을 미치기 쉽겠죠.
결정적으로 대규모에 순응하는 성향을 가진 조직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목사에 대한 견제세력이 교회 내에 전혀 없어보이긴 했습니다. 뭔가 목사님이 사상적(?)으로 이상한 소리를 설교 때 얘기한다고 해서, 대학원처럼 "목사님,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라고 말하는 평신도, 혹은 어느 정도 조직내에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해지긴 하더군요.
만약 내부에서 목사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그 이유는 아마 기독교인들의 문화나 이데올로기와도 깊은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특별히, 개교회주의가 강한 개신교에서 각 교회의 리더들을 지나치게 신봉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향들이 자주 나타나죠.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목사라는 개인보다는 '교의', '신학', '전통', '교회사', '공의회' 같은 초개인적 지평들이 기독교에서 강조될 필요가 있지 않나 해요.
저는 전공자는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입니다. 뭔가 글이 너무 두서가 없기도 하고 윗분들께서 문장 단위로 피드백을 해주셔서 저는 다른 관점에서 봤습습니다. 불순한 의도를 통한 선행, 모순되는 많은 교리와 내용들, 종교의 역사, 종교의 성공, 정치와의 결합, 현재의 상황 등이라는 키워드로 글이 압축되는 것 같아서 "성경"의 "진리"를 믿는 종교들인 아브라함 계통 종교에도 이 글의 내용이 적용될 수 있는지 검토된다면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독교로만 한정지었을 때는 (부정적 관점에서) 공감이 갑니다만 기독교가 아니고 천주교였다면, 이슬람교였다면, 동방정교였다면, 유대교였다면 이 글이 그 신자들에게도 공감이 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aaaa님께서 주장하는 것이 만약
'youn님이 제시하는 근대우주론과 진화론은 더이상 현대과학을 대표하지 못하므로, 기독교와 최신화된 현대과학은 상충될 수 있다'는 주장이라면, 이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youn님이 마지막으로 링크하신 것에 '종교경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주류적인 해석방법이 아니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가 현대과학과 상충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youn님이 언급하신) 현대과학은 기독교의 진실성을 입증한다라는 말이 아니라, 과학은 그 성질상 애초부터 기독교를 입증할수도 반증할수도 없는 관계에 있다라는 말로 해석하는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참이라면 youn님이 언급한 이론들은 더 이상 현대과학으로 쳐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반박이 아닌것 같습니다.
그런 얘기가 아니라 현대과학과 기독교의 관계를 다룰 때 말하는 "현대과학"이 지극히 편향된 분야만 다룬단거죠.
현대과학으로 기독교를 비판할 수 있다고 하든 심지어 종교(보통 아브라함계 종교)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으며 새로운 "보편타당한" 종교적 진리를 제시할 수 있다고 하든 과학사적으로 뭐라고 얘기를 하든
이때 나오는 현대과학이 정말 과학 입장에서는 매우 좁거나 지엽적인 분야 밖에 안된다는 겁니다. 빅뱅이론이니 진화론이니 다 현대과학 이긴 하고 중요한 이론이긴 한데 과학 전체를 봤을 때 얼마나 큰가 하면 글쎄요. 특정 과학 이론과 종교의 관계라고 보면 몰라도 과학과 종교의 관계가 어떻다는 얘기로 보이지 않습니다.
정확히 뭐가 문제라고 보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진화론이나 상대성 이론이 아닌 여타 분야의 과학 이론을 가져오면, 그게 "신학과 과학을 반드시 상충하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YOUN 님의 전체적인 논지의 타당성에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나요?
제가 보기에는 (@aaaa 님께서 링크 거신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 주제처럼 초전도체 이론 같은) 과학의 다른 분야를 가져와서 논의 거리로 삼더라도 @YOUN 님의 주장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데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논의 주제가 신학과 과학인 이상, 해당 주제와 관련 있다고 생각되는 과학의 하위분야들을 끌어올 수밖에 없지 않나요? 우리가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과학의 모든 분야들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이상 말입니다.
저도 비슷하게 생각하기는 해서, 다른 과학의 분야를 가져온들 youn님의 주장의 타당성이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상적으로 충돌한다고 알려진 현대과학의 하위 분야만 검토하는 것도 과학과 종교가 충돌하지 않음을 보이는 데에 있어 좋은 전략입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주장을 넘어 과학과 종교의 관계라는 담론이 말은 과학 일반을 지칭하면서 현대과학의 일부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 역시 타당해 보입니다. 둘이 양립 불가한다고 보든 어떻든 그 주장을 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과학을 다룬다고 하면서 그 분야는 매우 한정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21세기 신무신론, "과학적 회의주의"를 주장하는 쪽에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다룬다고 하면서 실은 특정 이론(우주론, 진화학, 연대 측정, 고지질학)과 종교의 관계를 부풀려 다루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로 보입니다.
21세기 과학은 덩치가 너무 커져서 다원적인 이론이 공존하는 상태입니다. 예를들어 도킨스 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전자와 분자생물학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전자는 다릅니다. 전자는 적당히 확장된 멘델의 법칙을 만족하며 형질을 전달하는 무언가고 후자는 적당한 처리를 거쳤을 때 단백질의 설계도가 되는 무언가 입니다.
사회진화학을 하던 윌슨은, 양자와 적자에 대한 아버지의 살인률을 비교해 적응도(후손을 남기는데에 이점)가 낮다는 이유로 친족살해 유전자는 도태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분자생물학자는 이 설명을 듣고 의아할 것입니다. 그 유전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 무슨 단백질을 만든다는 거지? 니가 말한건 형질인데?
이렇게 볼 때, 신무신론측의 주장은 사실 과학과 종교가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호하는 특정 이론과 종교가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으러 축소되어야 합니다. 저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양립 불가한 것으로 다루는 주장에 대해 위와 같이 대응합니다. 그리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다룸에 있어서 신무신론측이 강조하는 지엽적인 분야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다른" 의견이고 그래서 youn님의 글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