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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카트라이트, 『물리학의 법칙이 거짓말하는 법』
1. 과학적 반실재론의 세 가지 유형: 반 프라센, 퍼트남, 카트라이트
I say that the laws of physics do not provide true descriptions of reality. This sounds like an anti-realist doctrine. Indeed it is, but to describe the claim in this way may be misleading. For anti-realist view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are traditionally of two kinds. Bas van Fraassen is a modern advocate of one of these versions of anti-realism; Hilary Putnam of the other. Van Fraassen is a sophisticated instrumentalist. He worries about the existence of unobservable entities, or rather, about the soundness of our grounds for believing in them; and he worries about the evidence which is supposed to support our theoretical claims about how these entities behave. But I have no quarrel with theoretical entities; and for the moment I am not concerned with how we know what they do. What is troubling me here is that our explanatory laws do not tell us what they do. It is in fact part of their explanatory role not to tell.
Hilary Putnam in his version of internal realism also maintains that the laws of physics do not represent facts about reality. But this is because nothing—not even the most commonplace claim about the cookies which are burning in the oven—represents facts about reality. If anything did, Putnam would probably think that the basic equations of modern physics did best. This is the claim that I reject. I think we can allow that all sorts of statements represent facts of nature, including the generalizations one learns in biology or engineering. It is just the fundamental explanatory laws that do not truly represent. Putnam is worried about meaning and reference and how we are trapped in the circle of words. I am worried about truth and explanation, and how one excludes the other.
(Cartwright, 1983: 55-56)
카트라이트는 물리학의 법칙에 대해 일종의 반실재론적 입장을 제시한다. 단적으로 말해, 그는 “물리학의 법칙은 실재에 대한 참된 기술을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히 ‘반실재론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카트라이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정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반실재론적 입장이 어떠한 근거에 의해 정당화되는지, 그리고 반실재론적 입장으로부터 어떠한 함의가 도출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과학적 반실재론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들이 있다. 가령,
(1) 반 프라센의 반실재론: 반 프라센은 일종의 ‘도구주의’를 바탕으로 반실재론을 제시한다. 관찰불가능한 존재물들은 단순히 경험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유용한 도구로서 상정되는 것일 뿐, 그 존재물들이 세계의 실재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할 만한 아무런 철학적 근거도 없다는 것이 반 프라센의 반실재론을 이루고 있는 핵심이다. 따라서 반 프라센의 반실재론에서는 관찰불가능한 존재물들이 이론적 도구 이상의 형이상학적 지위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2) 퍼트남의 반실재론: 퍼트남은 일종의 ‘반표상주의’를 바탕으로 반실재론을 제시한다. 뢰벤하임-스콜렘 정리에 따라, 우리의 언어는 무한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우리의 언어는 세계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상할 수가 없다는 점이 퍼트남의 반실재론을 성립시키는 근거이다. 따라서 퍼트남의 반실재론에서는, 현대물리학의 기초적인 방정식을 제외하면, 어떠한 이론도 실재에 대한 사실을 표상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바스 반 프라센과 힐러리 퍼트남
두 종류의 반실재론과 카트라이트의 반실재론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우선, 카트라이트는, 반 프라센과 달리, 이론적 존재물을 반드시 부정하지는 않으며, 우리가 그 존재물들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를 문제 삼지 않는다. 또한 그는, 퍼트남과 달리, 언어의 의미와 지시체 사이의 표상 관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며, 현대물리학의 기초적인 방정식이 세계의 사실을 가리켜 보인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오히려 카트라이트의 반실재론은 ‘진리’와 ‘설명’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3) 카트라이트의 반실재론: 카트라이트는 진리와 설명이 서로 배제하는 관계라는 점에 주목한다. 즉, ‘진리’ 혹은 ‘참’이라는 가치를 지향한다면, 대단히 국소적인 영역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론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 그 이론은 다양한 현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자연법칙에 대한 이론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설명력’이라는 가치를 지향한다면, 대단히 포괄적인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 그 이론은 수많은 예외들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참된 이론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자연세계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 ‘법칙’에 대한 이론이란 설명력을 위해 진리를 상당 부분 포기한 이론일 뿐이다. 이러한 이론이란 사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2. 카트라이트의 예시: 중력의 법칙과 쿨롱의 법칙
In words, Feynman tells us:
The Law of Gravitation is that two bodies exert a force between each other which varies inversely as the square of the distance between them, and varies directly as the product of their masses.
Does this law truly describe how bodies behave? Assuredly not. Feynman himself gives one reason why. ‘Electricity also exerts forces inversely as the square of the distance, this time between charges…’ It is not true that for any two bodies the force between them is given by the law of gravitation. Some bodies are charged bodies, and the force between them is not Gmm′/r2. Rather it is some resultant of this force with the electric force to which Feynman refers.
For bodies which are both massive and charged, the law of universal gravitation and Coulomb‘s law (the law that gives the force between two charges) interact to determine the final force. But neither law by itself truly describes how the bodies behave. No charged objects will behave just as the law of universal gravitation says; and any massive objects will constitute a counterexample to Coulomb’s law. These two laws are not true; worse, they are not even approximately true.
(Cartwright, 1983: 57)
카트라이트는 대표적인 ‘자연법칙’ 중 하나인 중력의 법칙을 예시로 사용하여 이론적 법칙에 대한 자신의 반실재론을 설명한다. 가장 유명한 자연법칙인 중력의 법칙조차 수많은 예외들을 무시한 채 성립한 법칙이라는 것이 카트라이트의 지적이다. 즉, 뉴턴의 법칙에 따르면,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두 물체들 사이에는 Gmm′/r**2만큼의 힘이 작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법칙은 실제로는 전기띤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전기띤 물체가 지닌 최종적 힘에 대해서는 뉴턴의 법칙과 쿨롱의 법칙이 함께 적용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두 법칙을 함께 고려하더라도, 모든 물체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자연법칙이 존재한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뉴턴의 법칙도 쿨롱의 법칙도 그 자체만으로는 전기띤 물체가 지닌 힘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법칙이기는커녕 엄밀하게 말해서는 ‘거짓’으로 여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띤 어떠한 물체도 보편적 중력의 법칙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질량을 지닌 어떠한 물체도 쿨롱의 법칙에 대한 반례가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법칙은 참이 아니고, 더 부정적으로 말해, 그들은 대략적인 참조차 아니다.”
3, 암묵적 수식어: ‘다른 조건이 같다면’
There is an obvious rejoinder: I have not given a complete statement of these two laws, only a shorthand version. The Feynman version has an implicit ceteris paribus modifier in front, which I have suppressed. Speaking more carefully, the law of universal gravitational is something like this:
If there are no forces other than gravitational forces at work, then two bodies exert a force between each other which varies inversely as the square of the distance between them, and varies directly as the product of their masses.
I will allow that this law is a true law, or at least one that is held true within a given theory. But it is not a very useful law. One of the chief jobs of the law of gravity is to help explain the forces that objects experience in various complex circumstances. This law can explain in only very simple, or ideal, circumstances. It can account for why the force is as it is when just gravity is at work; but it is of no help for cases in which both gravity and electricity matter. Once the ceteris paribus modifier has been attached, the law of gravity is irrelevant to the more complex and interesting situations.
(Cartwright, 1983: 57-58)
중력의 법칙에 ‘다른 조건이 갖다면(ceteris paribus)’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일 경우 그 법칙을 참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다른 조건이 갖다면’이라는 수식어는 그 법칙을 보편적 자연법칙의 지위에서 격하시킨다. 본래 중력의 법칙은 물체가 온갖 복잡한 상황에서 지니는 힘을 설명하는 법칙으로서 여겨졌다. 그러나 중력의 법칙이 실제로는 제약된 상황에서 제약된 설명력을 지니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우리는 이러한 법칙에 더 이상 자연법칙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중력의 법칙이 세계에 내재된 보편적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식의 사변을 전개하고자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4. 설명의 본성: 원인의 합성에 의한 설명
This unhappy feature is characteristic of explanatory laws. I said that the fundamental laws of physics do not represent the facts, whereas biological laws and principles of engineering do. This statement is both too strong and too weak. Some laws of physics do represent facts, and some laws of biology—particularly the explanatory laws—do not. The failure of facticity does not have so much to do with the nature of physics, but rather with the nature of explanation. We think that nature is governed by a small number of simple, fundamental laws. The world is full of complex and varied phenomena, but these are not fundamental. They arise from the interplay of more simple processes obeying the basic laws of nature. (Later essays will argue that even simple isolated processes do not in general behave in the uniform manner dictated by fundamental laws.)
This picture of how nature operates to produce the subtle and complicated effects we see around us is reflected in the explanations that we give: we explain complex phenomena by reducing them to their more simple components. This is not the only kind of explanation we give, but it is an important and central kind. I shall use the language of John Stuart Mill, and call this explanation by composition of causes.
It is characteristic of explanations by composition of causes that the laws they employ fail to satisfy the requirement of facticity. The force of these explanations comes from the presumption that the explanatory laws ‘act’ in combination just as they would ‘act’ separately. It is critical, then, that the laws cited have the same form, in or out of combination. But this is impossible if the laws are to describe the actual behaviour of objects. The actual behaviour is the resultant of simple laws in combination. The effect that occurs is not an effect dictated by any one of the laws separately. In order to be true in the composite case, the law must describe one effect (the effect that actually happens); but to be explanatory, it must describe another. There is a trade-off here between truth and explanatory power.
(Cartwright, 1983: 58-59)
설명력이 큰 ‘근본적 법칙(fundamental law)’들은 사실을 기술하지 못한다. 세계를 구성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들은 작은 과정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다. 따라서 (카트라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본적 법칙이란 언제나 더 작은 과정들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근본적’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카트라이트의 주장이 지닌 함의에 따르면) 근본적 법칙이란 작은 과정들에서 이루어지는 대상의 움직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법칙’이라고도 할 수 없다. 어느 쪽으로 보든지, 자연세계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근본적 법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카트라이트의 반실재론은 설명의 본성에 대한 논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이란 그 현상을 더 단순한 요소들로 환원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인의 합성에 의한 설명(explanation by composition of causes)’이라고도 일컬어질 수 있는 이러한 환원의 작업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과정에 있어서 중심적이다. 크고 작은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법칙이 불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복잡한 현상을 기술하는 법칙은 단순하지 않다는 점에서 참될 수가 없고, 참된 법칙은 단순하다는 점에서 복잡한 현상을 기술할 수가 없다. “참과 설명력 사이에는 여기서 거래가 존재한다.” 가령, 질량을 지니면서 전기띤 물체들의 복잡한 운동은 중력의 법칙과 쿨롱의 법칙의 결합을 통해 설명된다. (a) 이러한 복잡한 현상에 대해 ‘참’이 되는 법칙이란 중력의 법칙도 쿨롱의 법칙도 아닌 (그 현상에 정확히 대응하는) 제3의 법칙이어야 한다. 그러나 (b) 이러한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는 법칙이란 (그 현상보다도 더 작은) 중력의 법칙과 쿨롱의 법칙이어야 한다. 참과 설명력을 동시에 지닌 보편적 법칙이란 ‘설명’이라는 활동의 본성상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카트라이트의 이러한 논의는 1990년대 이후로 ‘얼룩진 세계(dappled world)’에 대한 사유로도 이어진다. 세계가 수많은 법칙들에 의해 지배되는 다양한 영역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카트라이트가 제시하는 존재론이다. 이러한 입장은 ‘반실재론’이라는 단순한 용어만으로 규정되기는 어렵다. 카트라이트의 존재론이 모든 현상에 적용되는 포괄적 법칙에 대해 반실재론적 입장을 취하기는 하지만, 수많은 개별적 현상에 대해서까지도 반실재론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카트라이트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우주의 창조자는 꽤나 ‘너저분한 정신’을 지닌 분이다. 그는 통일적이고 일원적인 법칙에 따라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파편적이고 다원적인 법칙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였다. 따라서 현실의 모든 대상과 사건을 관통하는 실재의 구조나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수도 없이 다양하고 풍부한 존재의 영역들과 그 영역들에 적용되는 수도 없이 다양하고 풍부한 존재의 법칙들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을 뿐이다.
참고
N. Cartwright, How the Laws of Physics Lie, Oxford: Clarendon Press,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