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키에 대한 웃픈 실화를 발견해서 가져와 봤습니다.
크립키는 거의 모든 철학교수가 그렇듯이매우 단조로운 생활을 영위해 간다.주로 프린스턴에서 보내면서, 호수 연변을 따라 산책하며, 때로는 팔을 휘젓고 속보를 즐기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단조로운 생활을 하던 그에게 1976년에는 큰 파문을 몰고온 하나의 사건이 생겼다. 그것은 그가 아직 록펠러 대학에 재직해 있을 때의 일이었는데, 결국 그 일로 해서 철학과를 폐쇄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마침 뉴욕의 힐튼 호텔에서 "진리론"에 대한 크립키의 특강이 마련되었다. 그날은 의외로 많은 청중이 몰려 들어서 대연회장으로 옮겼는데도 불구하고 의자 사이에 앉거나 발코니에까지 넘쳐날 정도였다.주제가 '진리'였기 때문인지 일반 청중이 대부분이었고 그 중에는 장발에 턱수염이 더부룩한 히피들도 많이 자욱한 담배 연기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렇게 대중적이어서 그랬는지 크립키는 서두를 이렇게 꺼냈다. "빌라도가 마태복음에서 제기한 문제는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 만족할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청중속에서 웃음이 터져나왔고 철학도 별 것 아니라는 듯 안도의 한숨 소리마저 들렀다. 그러나 그는 디도서에 나오는 크레테 섬의 현자 에피메니테스의 이야기로 옮겨갔고, 그리하여 순간적으로 진리는 종교적 광야로부터 논리적 계곡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 현자가 "크레테 사람은 모두 거짓말장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진리이면 허위가 되고 허위이면 진리가 된다는 이른바 "거짓말장이의 역설"이라는 논리적 문제로 크립키는 주제를 전환시켰기 때문이었다.
언어철학이나 논리철학에 생소한 청중들은 더 이상 이 주제에 접근할 수가 없었고 강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크립키의 몸동작, 곁말이나 손짓, 칠판위에 그려진 갑골문자 같은 형태만을 신기한듯 바라볼 뿐이었다. 현대의 빌라도들도 비록 이유가 다르기는 하지만 여전히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원한 답변은 찾지 못했던 것이다.
발표가 끝난 다음, "음, 이것이 나의 기본적인 견해였습니다."하고 말을 맺었지만 장내는 당혹감과 아쉬움과 이상한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카플란(D.Kaplan)은 전문가답게 "철학사에서 새로은 전기를 마련했다"고 극찬했지만, 그러나 대부분 다른 철학자들은 "이런 발표를 들으면 교수직을 그만 두고 택시나 몰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말에 동조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청중 가운데 록펠러 대학의 총장인 사이츠(Frederick Seitz)가 끼어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얼마후 이 대학의 철학 프로그램은 모두 폐쇄되고, 덕분에 크립키는 프린스턴 대학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엄정식, 크립키와 양상논리적 언어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