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의사소통의 해석학으로서 기독론 -비테킨트의 종교적 의사소통의 이론을 중심으로 (2)

2. 기독론의 방법론으로서 종교적 의사소통

비테킨트에 따르면 우리는 언어를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자체가 다양한 언어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이해는 기독교 전통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언어적 양식으로 보는 이해와 일맥상통하다. 특히 20세기 변증법적 신학의 등장으로 그리고 칼 바르트의 영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신학을 하나님-말씀론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더욱 강화되었다. 바르트 뿐이 아니라 문화프로테스탄트 진영에서도 엠마누엘 히르쉬는 자신의 기독론 전개에 앞서 표지에 „예수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와 말씀의 일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바르트와 히르쉬가 하나님의 존재와 말씀의 일치를 강조한 것과 달리 비테킨트는 „하나님 말씀“(Gottes Wort)과 „전달“(Anrede)을 연관시켜서 서술한다. 그에 따르면 „종교적 의사소통과 전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화는 기독론 안에서 근원적 종교적 전달로 형성되었고, 그래서 예수그리스도 자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다. “(162)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신자들을 의사소통하게 해주는 의사소통의 매개로서 하나님 말씀이다. 이제 예수는 종교적 진술의 사건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실체의 증언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현실화는 결국 하나님-인간의 의사소통의 사건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주고받는 종교적 말씀 사건은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한다. (162-163)

4세기 그리스도의 두본성론으로 확정된 이후 기독론은 근대시기까지도 예수라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서술을 목표로 했다. 이는 한 위격 안에 두본성의 통일성을 서술하거나 역사적 예수 안에 있는 진정한 인간성의 원형(Urbild)를 서술하려는 의도를 가졌었다. 하지만 비테킨트에게서 하나님 말씀으로서 기독론은 종교적 진술의 컨텍스트 안에서 예수에 대한 회상의 기능화를 의미한다. (163) 기록론의 기능은 종교적 의사소통 안에서 종교적 주체가 새롭게 형성되는 기능을 다룬다. (164) 이러한 점에서 기독론은 현재 공동체의 역사적 문화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고, 오히려 오늘날 공동체가 자신의 종교적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해석학적 과정이다. 20세기 하나님 말씀의 신학은 말씀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현실화의 이념을 숙고했지만, 인간적 종교적 진술의 상황 안에서 말씀의 현실화가 어떤 기능으로 작동하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168) 하지만 모든 영적인 종교는 보이는 요소를 필요로 한다. 이미 초대 그리스도교 안에서 교회는 생성시대에 유대 종교와 헬레니즘의 제의적 요소들을 수용했다. 물론 이 수용과정은 단순히 유대적 헬라적 요소들의 무비판적 수용이 아니라 기독론적 변형의 상황 안에서 발생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종교적 요소는 종교사적 유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선포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며, 이 기억은 다시 제자 공동체의 종교적 실천 안에서 확장되고 살아 있다. (169-170)

비테킨트는 그의 기독론적 구성에서 해묵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예수의 대립을 다시 논쟁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에 대한 기억(Erinnerung an Jesus)“또는 „기억된 예수(erinnerte Jesus)“개념을 자신의 의사소통적 종교적 진술 안에 수용한다. 영미권에서 이 기억개념은 교의신학보다 신약성서학에서 주로 논의되었다. 특히 영국 신학성서학자 제임스 던은 이 기억 개념을 사용하여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제자들의 기억을 통한 구두전승으로 연결하여 성서가 가진 역사적 신학적 신뢰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제임스 던에게 있어서 기억 또는 기억하기는 그리스도교의 정체성 형성을 위한 중요한 모티브를 의미한다. (던 564) 제임스 던은 기독교의 설립자로서 예수와 예수의 가르침 그리고 이 가르침이 제자들을 통한 역사적이고 해석학적 확장이 예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성서학의 정경형성과정 또는 성서형성과정에 관심을 가지는 제임스 던과 다르게 오늘날 독일 조직신학에서 문화학자 얀 아스만의 기억문화개념을 통해서 기억개념은 역사적 형성과정이 아니라 오늘날 문화가 기억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외르그 라우스터는 성서를 초대교회의 초월적 경험에 대한 문서로서 이해하고 이 문서는 오늘날 다양한 문화적 양식을 통해 재기억을 통해 다시 초월적 경험을 전달받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라우스터에게서 성서 해석 또는 다양한 교리의 재구성은 기억문화를 통해 거룩성과 같은 개념을 탈마술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마술화(Verzauberung)로서 이해된다.

라우스터가 그리스도교 문화사 구성 안에서 기억문화에 기초한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문화사적 탐구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 반면에, 비테킨트는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역사적 문화사적 내용이 아닌 다양한 의미집단과의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 찾고자 한다.

예수 안에서 시작된 종교적 의사소통은 오늘날 기억 안에서 형성되는 해석학적 반성을 의미한다. (170) 그리스도로서 예수(Jesus als Christus)는 역사적 예수의 삶 안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견건성이나 메시아적 자기의식이 아니라 예수의 선포 사건이 가진 청중과의 관계에서 구성된다. 비테킨트에게서 전기적 보도에 제한되지 않는 예수의 대한 기억은 그의 종교적 의사소통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172) 따라서 전달은 기독론 구성에서 종교적 의사소통의 기능에서 핵심적 구성요소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의 선교명령은 비테킨트에게 타종교에 대한 비교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보편성과 완전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 종교적 환경 안에서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의 실현을 의미한다. (172-173)

예수에 대한 기억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론은 그리스도교적 종교적 진술의 현실화 양식을 서술하는 과제를 가진다. 그리스도교는 청중에 대한 관심, 전달 그리고 이 청중들의 인격화된 체화를 통해 의사소통의 공동체이다. 그래서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해석과 의미 확장은 그리스도교를 지속적으로 확장시킨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지속적 확장 안에 예수의 기억은 필연적 요소이며, 그런 점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의 기억을 통해 그리스도교적 종교적 의사소통 사건이 지속적으로 확장된다. (174-175) 특히 비테킨트는 신인식의 장소를 인간의 의식이나 성서 문자에 제한하지 않고 의사소통하는 공동체를 신인식의 장소로서 이해하기 때문에 예수의 기억을 통한 공동체와 신인식의 연결은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든다.

비테킨트에게서 기독론은 결국 하나님 소외와 죄의 극복 안에서 신앙의 생성이 아니라 종교적 의사소통 안에서 이해사건의 확장을 의미한다. (177) 그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결코 속죄 신학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또는 정치적이거나 역사성의 탐구 안에서 다루지 않는다. 예수의 죽음은 제자들과 예수의 독특한 의사소통의 단절을 의미하고 그로 인하여 예수공동체의 종교적 의미 생산의 폐기를 의미한다. 부활은 이와 반대로 제자공동체 안에서 종교적 의사소통의 회복과 확장을 의미함으로써 예수의 기억을 통한 의사소통 공동체의 새로운 의미생산으로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 그 자체의 내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신앙 사건 안에서 복음이 전달되는 의사소통 행위에 대한 해석학적 서술이다. (178) 이러한 기독론적 이해는 매우 이질적인 형태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독론적 서술은 4세기 이래로 어떤 확고한 객관적 실체에 대한 서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이후 역사적 예수의 탐구도 예수를 확고하고 견고한 신앙의 근거를 얻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다비드 스트라우스는 역사적 예수의 탐구의 결과로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에서 신앙의 근거를 찾지 못하고 헤겔적 사색적 길로 나아갔다. 이는 기독론 또는 역사적 예수의 탐구가 객관적 대상에 대한 재현을 통해 견고한 신앙의 근거를 제시하려는 목적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서술은 근본적으로 계몽주의 이후에 역사적 예수에 집중함으로써 예수의 사회적 행위가 내용의 중심을 형성했다. 예수는 1세기 갈릴리에서 누구이며, 무엇을 했고 어떤 의도를 가졌는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 한 개별적이고 역사적 문화적 사회 안에서 예수의 행위는 그리스도로서 예수의 존재의 묘사를 의미하고, 이 사회적 행위는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의 과제로서 나타난다. (184)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론 구성 안에서 사회적 행위가 아니라 예수에 대한 기억 안에서 인격적 의사소통을 중심으로 고려한다면,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교적 인격성 형성의 가능성은 사회적 형태가 아니라 종교적 예수의 인격을 통한 기억된 관심의 해석 안에 근거한다. (185) „기억된 예수의 목적은 그래서 테스트들 뒤에 있는 어떤 예수라는 사람의 도달이 아니라 타당성의 숙고 위에 세워진 자료의 추상화로서 움직이는 구상일 수 있다. “(schröter 36) 기억된 예수는 마치 오늘날 연구가 자료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고유한 시간사적 배경 안에서 타당한 역사적 형상이지만, 이는 자료 뒤에 있는 지상의 나사렛 예수로부터 구분되어야만한다. (Danz 조직신학, 186)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말씀은 역사적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의 기억을 통해 형성된 종교적 진술의 양식과 선포 안에서 예수와 청중의 살아있는 만남을 연결시키는 사건이다. 이처럼 비테킨트는 하나님의 말씀론과 공동체의 기억의 확장을 통해 기독론을 단순히 3인칭 시각에서의 대상에 대한 객관적 서술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자기반성의 행위로서 이해한다.

3. 타자의 인정에서 의사소통하는 종교적 주체로의 전환

비테킨트가 기독론을 역사적 대상에 대한 객관적 서술이 아니라 현재와 관계된 문화적이고 종교이론적 신앙의 자기반성으로서 이해한다면, 이제 기독론은 이전 세대보다 현재 문화적 상관성을 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다. 계몽주의 이후 그리스도의 두 본성론이 효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역사와 계시에 대한 질문 아래서 그리스도를 당대 철학적 의식과의 연관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조정을 시도했다. 이미 알버트 슈바이처의 예수의 생애에 대한 포괄적 연구를 통해 드러났듯이, 역사적 예수 연구조차도 그 당시 종교적 이념이 역사적 예수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근대 조건에서 기독론은 자기의식이론 또는 주체성이론으로 전개되었고, 이 틀 안에서 기독론은 철학적 자기의식이론과 관계된 문제를 주제화하고 개정하는 이론으로서 이해되었다. (Danz ZHJDC 6-7) 또한 자유의 구성적 이론으로서 근대 기독론은 문화해석학적 연구와 결합되었다. 특히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신학을 지배했던 역사주의와 함께 기독론 논쟁의 중심에 신앙을 위한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질문은 기록론을 역사철학으로 수정하였고, 이 이후 20세기 중반 틸리히, 고가르텐 그리고 불트만 같은 신학자들은 기독론을 역사에 대한 지식 생성의 반성적 서술로서 구성했다. (7) 이처럼 20세기를 넘어오면서 기독론은 역사적 대상에 대한 현재적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넘어서 종교적 주체의 자기묘사 기능을 가졌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은 이와 함께 다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20세기 후반 종교적 다원주의의 등장으로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은 비기독교 종교에 대한 실증적 가치평가의 관심 속에서 기독론과 결합된 절대성요구의 해체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7)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자 존 힉은 세계 종교들의 상호 인정을 위해 각 종교가 가진 진리-주장이 아니라 구원개념에서 종교간의 대화를 시도한다. (힉 134) 그에게서 구원이라는 개념은 기독교적인 개념이지만 그는 다른 종교와의 기능적 유비 속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와 다른 위대한 전통들의 구원의 길이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134) 그는 실재와 관계하는 다양한 형식 안에서 자기중심성으로 구성된 인간 실존에서 실재중심성으로의 방향 전환으로 구원을 이해한다. (136) 여기서 힉은 주목할 만한 실재와 윤리의 관계를 설정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실재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 삶과 문화 안에서 그 실재는 경험되어야 한다. (137) 이런 점에서 윤리는 힉에게 인간 실존 안에서 실재를 향한 전환이고, 각각의 종교 전통은 이기적 태도에서 타자를 향한 실재중심적 태도로의 규범적 역할을 윤리에 부여한다. 힉이 타자를 향한 실재중심적 지향을 사랑 또는 자비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구원을 궁극적 실재 중심으로의 전환으로 본다면 세계 종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139)

존 힉의 다양한 세계 종교의 구원이해의 통합원리로서 초월적 실재는 인간 존재의 다양한 종교-문화적 방법 안에서 다양하게 응답된다. (140) 초월적 실재는 인간의 인식지평을 넘어서 그 자체로 인간에게 경험될 수 없지만, 실재에 근거한 다양한 종교적 현상으로부터 사유되고 경험된 신성과 절대성은 인간 의식의 다양한 역사적 방법을 통해 경험될 수 있다. (140-141) 이런 점에서 실재 그 자체는 인간의 인식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에, 힉에게서 특정한 종교적 경험 또는 고백은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142) 존 힉의 추상적 실재론적 신 이해에 근거한 종교이해는 그가 종교를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초월적 실재의 문화적 응답이라고 보는 이해에 근거한다. (143) 그러나 그는 종교의 신적 근거를 확증하기 위해서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자기계시 행위와 인간의 응답을 불완전하게 파악한다. 인간의 무조건적 경험에 대한 해석으로서 종교는 언제나 부분적 진리만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그에게서 더 이상 종교는 궁극적이고 무조건적인 특성을 상실했다. 또한 이 추상적 단일신론적 실재론에 근거한 윤리와 문화는 각 종교가 가진 문화적 다양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힉은 근본적으로 비기독교적 종교를 타자로서 인정하기보다 고전적인 추상적 실재론 안에서 비기독교적 종교를 포괄함으로써 포괄적-추상적 유일신론을 전개하고 각 종교의 고유성을 단일화시켰다.

존 힉의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은 종교를 변화하지 않는 본질와 본질의 문화적 현실화로서 이해함으로써 모든 종교를 포괄하는 메타지평을 목표로 한다. (Danz 100) 그런데 메타지평에 기초한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은 개별 종교에 대한 외부자적 시각을 야기했다. 즉, 배타주의가 내부자의 시각에서 타자를 배격했다면,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은 모든 종교를 외부자의 시각에서 봄으로써 각 종교가 가진 삶의 자리 또는 삶의 연관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라인홀트 베른하르트에 따르면 언제나 고유한 신앙의 삶에 대한 확고한 기억이 비역사성 안에서 보편화된 평준화 앞에서 다양한 고유성을 보호한다고 말한다. (베른하르트 230) 종교간의 대화 또는 종교간의 상호 인정은 각 종교의 참여자들 간의 대화라는 점에서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의 계획은 실제적 대화의 해석학적 구성적 원리를 형성할 수 없다. 베른하르트는 배타주의와 다원주의의 중간길로서 상호포괄주의를 제안한다. 그는 종교의 내적 인식과 내적 인식의 통합을 추구함으로써 종교적 인식의 다양성을 서로 간에 포괄할 수 있는 종교신학적 다원주의의 수정으로서 상호포괄주의를 제시했다. (Danz 99)

근본적으로 인식이란 어떤 틀 또는 렌즈를 통해 형성된 세계관을 의미한다. „각각의 세계관은 그의 삶의 자리에 결합되고 인간들이 살아가는 삶의 연관성에 속한다. “ (231) 이런 점에서 의미지평은 언제나 컨텍스트에 의존하고, 그 특징은 공동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연관성을 통해 세계형상의 적합성과 의사소통 능력을 보증한다. (231-232) 베른하르트에게서 현실성을 통합하는 순수한 추론명제는 종교간 대화의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다양한 종교들은 이제 언제나 서로 간의 교환관계 안에 있으며, 따라서 선험적 개념을 통해 하나로 일치될 수 없다. 그는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의 비역사성을 문제시함으로써 오늘날 종교적 환경을 정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개별 종교의 고유하고 집합적인 경험이 낯선 경험을 통해 풍부해지고 타자의 관점의 포섭을 통해 고유한 인식지평이 확장됨으로써 대화의 과정 안에서 고유한 자기이해가 깊어지는 역동적 종교 간의 소통을 강조한다. 베른하르트는 배타주의, 다원주의 그리고 포괄주의가 모두 추상적 단일성에 기초하여 배타주의는 제도적 교회를 절대화하고, 다원주의는 추상적 단일성을 절대화하고 포괄주의는 이 추상적 단일성이 그리스도교 안에서 가장 완전하게 실현되었지만 타종교에게서도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는 이 이해를 비판한다. 이 3가지 종교신학의 유형은 결국 하나님-세계의 단일구조에 근거하여 하나의 고백, 하나의 이론을 절대화함으로써 종교 간의 상호교환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그는 기독교 절대성의 테제를 제도적이고 고백적 교리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는 종교 간의 대화 안에서 진정한 대화를 위해 배타적이거나 교만한 포괄주의적 관점을 거절하고 타종교와의 만남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다른 종교와의 만남 속에서 관용적 대화의 현대적 근본원칙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우리 신앙의 진리와 확신을 머뭇거리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이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 (237) 진정한 절대성은 타자의 거부도 자기의 거부도 아니라 타자인식과 자기인식의 통합이다. 베른하르트는 „그의 삶의 자리가 송영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진리요구가 이성적-보편적 진리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무조건적 진리에 관계함을 의미한다. 절대성은 따라서 어떤 대상에 대한 정보을 통해 획득될 수 없고, „고유한 하나님-관계의 깊이와 진지성의 표현“이다. (238) 그에게 송영적으로 이해되는 절대성요구는 결국 역사적 문화적 컨텍스트 안에서 드러나는 인식의 통합으로 나타나는 대화적 절대성이다.

라인홀트 베른하르트의 상호포괄주의는 절대성 요구를 기본적으로 종교 간의 우위성 또는 철학적 관념의 우위성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대화적 인식의 통합으로서 구성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월적 실재를 인정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에 대한 질문에서 절대성은 고백이나 제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그 자체로부터 비롯된다고 이야기한다. (237) 물론 그의 상호포괄주의적 종교신학은 철학적 문제보다 해석학적 구성적 대화원리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러한 문제로 그는 후에 종교개념의 종교철학적 반성을 포기한다. (Danz 100) 베른하르트에게도 다원주의적 종교신학과 마찬가지로 주체는 대화를 통해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참여자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확신과 진리를 가지고 타자와의 대화를 진행한다. 이는 결국 상호 종교 간의 차이인식이나 대화사건이 종교적 자기정체성 생성에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종교신학은 자기 종교의 가치와 타종교의 긍정적 평가의 관계규정 안에서 평가될 수 있다. 크리스티안 단츠는 타종교의 신학적 인정은 자기 종교의 인식에 대한 가치요구와 함께 결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33)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 또는 자기종교의 근본가치의 포기는 역사적 종교의 상대화 또는 비역사성를 야기하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신학에서 수용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종교들의 신학의 구성적 관계를 자기지시성의 문제와 연결한다. (233) 즉, 역사적 종교의 자기정체성의 대한 규정없이 종교들 사이에 차이인식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종교신학은 반성적 자기 관계를 통해서 구성적 관계에 도달한다. „살아 있는 차이의식으로서 종교의 규정은 언제나 이미 역사적으로 규정된 그리스도 고백의 자기 반성에서 획득된다. “ (234) 따라서 단츠에게서 종교신학은 차이해석학으로서 기능한다. 그에 따르면 종교적 자기존재는 하나님과의 차이관계에 의하여 인간은 유한한 자유로서 규정된다. 이 유한한 자유로서 인간의 자기규정은 타자와의 대응관계 안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결국 상호 종교 간의 인식은 자기존재와 타자성을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단츠는 종교들의 신학에서 이전의 종교신학과 다르게 종교철학적으로 반성된 종교개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235) 방법론적으로 반성되고 이성적으로 구성된 종교개념없이 종교들의 신학은 규범적 가치반성을 형성할 수 없다. 오늘날 비교신학(Komparative Theologie)은 소위 종교신학의 메타지평의 포기를 요구하고, 각 종교적 전통과 경전의 비교평가를 통해 더 깊은 자기에 도달하려고 하지만, 모호한 실재론적 통일성의 요구를 포기함에도 불구하고 비교신학은 종교적 규범성을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상황관계적 의미성을 구성할 수 없다. 따라서 단츠는 종교를 의미확신성을 위한 현실성의 상황관계적 해석 (124) 으로서 이해함으로써 종교 간의 비교를 통한 차이인식 안에서 규범성의 형성을 목적으로 한다. 그는 프로테스탄트 전통으로부터 개인의 유한한 자유의 의식을 종교개념과 결합하고 신앙을 차이의 인식 안에서 실현된 차이의식으로서 이해한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적 대화 또는 종교 사이의 차이 인식은 유한한 개별성의 의식에 근거하고 따라서 유한한 개인의 자유는 차이 인식을 가능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신학적 환경 속에서 개신교 신학은 단순히 사회와 문화 안에서 만나는 다른 문화 또는 종교형태의 인정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인식 안에서 형성되는 판단기준으로서 규범성이라는 차이해석학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신교 신학은 다종교적 상황 안에서 기독론의 절대성요구의 포기가 아니라 종교적 주체형성을 위한 기독론의 기능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폴카르트 비테킨트는 기독론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 서술이 아니라 기억된 예수에 대한 사건을 통해 현실적 삶 안에서 기독교 종교의 독특한 종교적 주체를 형성하는 기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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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주장이네요. 그리스도론이 나사렛 예수에 대한 서술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기반성 행위라는 주장 말이에요. 저는 이 주장의 요지에는 동의하지만, 이 요지를 강조하려면 '나사렛 예수'라는 실체와 그 예수에 대한 '해석학적 서술'이 존재론적으로 동일하다는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요. 마치 바르트가 '계시자', '계시', '계시됨'의 동일성을 강조한 것처럼, 혹은 융엘이 '하나님의 존재'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존재'의 동일성을 것처럼 말이에요.

게다가, 실체와 실체에 대한 해석 사이의 존재론적 동일성 논제를 받아들이더라도, '하나님'이라는 (어떤 의미에서의) 추상적 실체를 넘어서 '예수'라는 구체적 실체에게까지 이런 동일성 논제를 적용하려면, 이런 동일성 논제가 얼핏 반직관적일 수 있다는 반론에 대해 잘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가령,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어떤 자기반성을 하든지, 역사적 예수는 그 반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일 수도 있다."라는 식의 반론에 대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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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비테킨트의 이 신앙의 자기반성으로서 기독론의 명제는 그 내적으로 최근 10년간 등장한 독일 조직신학계의 "기억된 예수"라는 논의의 맥락에서 등장했습니다. (이 부분은 지면상 문제로 제가 자세히 서술하지 못한게 문제이긴 합니다) 이 "기억된 예수" 담론은 근본적으로 역사적 예수의 영향사적 해석으로 등장했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오히려 "역사적 예수와 교의학적 그리스도론의 대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입니다. 즉, 신앙사건 안에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고백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자기반성의 행위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기억된 예수라는 기독론 명제가 제기하는 것입니다. 한편에서 19세기 역사적 예수는 신앙과 관계없는 예수론을 제시하였고, 다른 한편에서 교의학적 그리스도론도 과거제기된 초자연적 계시로서 신론에 대한 카피된 그리스도론을 지속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기독론은 현재상황관계적 신앙경험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졌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의 대한 고백 또는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 신앙의 자기반성없이는 단순히 나와 관계없는 그리스도에 불과하지 않냐는 문제제기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제가 다시 상세하게 포스팅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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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맥락이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제가 지난 방학 동안 아주 재미있게 완독한 책 중 하나가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의 『예수와 그 목격자들』이었어요. 보컴이 이 책에서 복음서를 예수에 대한 '증언'으로 보아야한다고 강조하는 이유 중에,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기억이 신뢰할 만 하다는 점이 있더라고요. 오랫동안 양식비평이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기억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과 달리, '통제된 구전 전승'에 대한 케네스 베일리(Kenneth Bailey)의 연구 이후에 그 기억이 꽤 신뢰할 만할지도 모른다는 점이 부각되었고, 이 주장을 제임스 던(James Dunn)이나 톰 라이트(N. T. Wright)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컴은 베일리의 논의를 수용하면서도 통제된 구전 전승에 대한 베일리의 가설이 지닌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증인의 기억'에 대한 논의를 제시하더라고요. 한편, 베일리의 논의 반대편에서는 베일리의 주장에도 여전히 약점이 있다는 테오도어 비덴(Theodore J. Weeden)이나 바트 어만(Bart D. Ehrman)의 재반박도 제기되고요. 이 논쟁들이 하도 재미있어서 인터넷으로 보컴과 어만의 토론까지 찾아봤네요.

그런데 영어권 성서학계에서 '기억된 예수'의 문제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문제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주제인 것 같아요. 결국 보컴과 어만의 논쟁에서도 쟁점은, '증인의 기억'이라는 것을 정말로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기억으로부터 우리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충분히 신뢰할 만한 지식을 도출해낼 수 있는지이니까요. 단순히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반성적 재해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기억 자체가 과연 믿을만 한지가 성서학계에서는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읽기로는, 비테킨트도 결국 기억된 예수와 역사적 예수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입장 아닌가요? 종교적 의사소통의 해석학으로서 기독론 -비테킨트의 종교적 의사소통의 이론을 중심으로- (3) 나온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비테킨트도 역사 서술이라는 것이 단순히 '객관적 서술'(하르낙)이라는 형태로 수행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대상으로부터 '의미를 부여받는 행위'(틸리히)라고 강조하니까요.

저는 이런 주장들에 동의하기는 하는데, 이 주장 자체만으로는 논의가 너무 원론적인 층위에 머무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요. 성서학계에서 '기억된 예수'를 둘러싸고 논쟁하는 실제 쟁점들이 다루어지고, 그 쟁점들을 통해 교회의 기억이 역사적 예수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정당화되어야, 교회가 그 기억을 바탕으로 예수에 대해 수행하는 모든 해석들이 "예수와 청중의 살아있는 만남"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성서학적 논의가 전제되어야 '신앙의 그리스도/역사적 예수'라는 이분법이 극복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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