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경'의 중요성 2 : 해명과 대답

(0) 제가 짧게 남긴 글에 많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기쁘네요!!! (하...관종의 삶이란....) 그렇지만 워낙 휘리릭 쓴 글이라서 제 논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겸사겸사 묵가에 대한 기본 정보도 정리할 겸, 이 글을 작성합니다.

(1) <묵자>의 구성.

<묵자>란 우리에게 유일하게 남은 묵가의 텍스트입니다. 다만 슬플 필요는 없는게, 제자백가 텍스트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고 오탈자와 착간이 많기로 악명이 높은 텍스트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간단히 텍스트의 구성을 살펴보겠습니다.

(I) 입문 에세이 : 친사/수신/소염/법의/칠환/사과/삼변 - 총 7편.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이고, 당대 제자백가들이 모두 공유하던 수양법, 치국법 등이 담긴 에세이입니다. 아마 시기적으로 가장 나중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II) 묵가 십사 : 상현/상동/겸애/비공/절용/절장/천지/명귀/비악/비명 - 상중하편 - 총 30편(이어야하나, 결락된 편도 있다. 그래서 현재 23편 현존.) 이제 여기가 묵가의 핵심 명제 10개를 해설한 코어 파트입니다. 다만 여기는 같은 제목과 유사한 내용을 가진 상중하 세 가지 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유사하다고 해도, 결정적인 부분에서 내용이 다른 부분이 꽤 있습니다.)
왜 텍스트가 상중하로 구분되어서 내려오는가? 이 부분을 해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설이 나왔습니다만, 이건 묵가와 후기 묵가 파트에서 다루겠습니다.

(II -1) 묵가 십사 부록 : 비유 - 2편(이어야하나, 상편 결락. 그래서 총 1편 현존) 말 그대로 유가에 대한 비판입니다.

(III) 묵경 혹은 묵변 : 경/경설 상하 - 대취와 소취 - 총 6편. 묵가의 논리학적/인식론적 기술들과 여러 철학적 용어들을 정의하고 그에 대한 해설을 한 사전 파트입니다.

(IV) 묵자 어록 : 경주-귀의-공맹-노문-공수-결번 - 총 6편(중 5편 남음)
(V) 병법서 : 총 21편(중 11편 남음)

(2) 그렇다면 (전기) 묵가와 후기 묵가는 무엇이고, 그 차이는 무엇인가?

전기 묵가와 후기 묵가를 말할 때, 두 가지 구분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묵가의 분열 이후를 후기 묵가로 보는 것입니다.
우선 묵가의 분열에 대해서는 <한비자>의 [현학]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묵자의 사후, 총 세 부류로 나뉘었고, 각각 "상리씨", "상부씨", "등릉씨"라고 되어있습니다. 문제는 도대체 이들이 누구인지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분화에 대한 말이 어느정도 사실임을 인지할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맹자>에서 묵가로 나오는 이지는 묵가의 주장은 '박장'(절장), 즉 검소한 장례를 치루지 않고 사치스러운 장례를 치루었기에, 맹자에게 묵가의 교리에서 어긋난다고 비판받습니다. 이에 대해 이지는 우리는 마땅히 모두를 사랑해야하지만, 그 시작은 부모로부터 해도 된다는, 유가와 절충된 입장으로 자신을 옹호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고려할 때, 그레이엄은 묵가십사가 각각 상중하인 이유가, 분화된 세 학파의 각자 다른 문헌들이 상중하로 나뉘어서 남겨졌다는 견해를 제시합니다. 다만 현재에 와서는 그닥 옹호되지 않는데, 이 실체를 불분명하기 때문이고, 과연 상편마다(혹은 중편/하편마다) 하나의 일관된 사상을 가진 것인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이질적인 묵가 학파 그룹이 여러 시기에 걸쳐서 만든 텍스트들을 상중하로 나누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묵자에서 다른 부분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논리학적/인식론적/언어철학적 부분이 담긴 '묵변' 파트를 기존 윤리학적/정치학적 주장을 하는 묵가와 구분해서 후기 묵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보이다시피, 두 구분은 차이가 있으며, 두 구분 사이에 관계가 무엇인지는 굉장히 불명료합니다. 허나 현재 학계에서는 보통 '후기 묵가'라고 할 경우, 묵변에 있는 텍스트를 보통 지칭합니다. 따라서 전/후기 묵가의 구분은 '내용상'의 구분으로 보는게 편합니다.

(2-1) 그리고 전기/후기 묵가 구분이 공자/노자/양주 이후 텍스트에서 의미가 없는 이유는?

단순히 말해서, 이미 묵가 사후 묵가의 분열이 일어났고,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늦어도 이 시기 조금 이후로 '묵변'의 프로토타입은 성립되었다고 보는게 타당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맹자는 당시 세상은 양주와 묵가로 양분되어있다고 회고합니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묵자를 만나지 못하고, 묵자의 제자들인 이지, 고자 등을 만납니다. (참고로 이들은 <묵자> 자체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즉, 직전 제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죠. 직전 제자로는 금골회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맹자는 묵가에 대한 꽤 자세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서 이지의 화려한 장례가 묵가의 교리와 어긋난다는 지적이나, 고자를 상대할 때 '흰색'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논박하는 부분 등에서 우리는 그걸 알 수 있죠. (그리고 우리가 언급한 권이나 추의 용법까지도요.)

보다 결정적인 것은 맹자와 동시대 인물인 장자입니다. 장자에는 묵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도 있지만, 특히 혜시에 대한 많은 언급이 있습니다. 혜시가 명가로 분류되지만, 명가의 논의들이 '묵변'의 내용들과 겹친다는 점 그리고 혜시의 윤리적 주장이 묵가의 겸애와 유사하는 점에서, 혜시가 묵가를 잘 알았다는 건 기정 사실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장자 역시도 [제물론] 등의 논의를 통해서, 묵가의 용어과 논증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상의 내용을 고려해볼 때, 적어도 맹자 - 장자 때에는 '묵변', 즉 논리적 묵가의 내용이 이미 등장했고, 그것이 꽤 많은 영향력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3) 보너스 ; '묵변'에서 보이는 재미있는 정의들.

(a) 효 : 효란 피붙이를 이롭게 하는 것(利)이다.
설 : 효란 온화한 모습으로 치붙이를 모시여, 힘닿는 한 피붙이를 이롭게 하지만, 반드시 효자라는 명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 기본적으로 묵가는 인/의/효 등의 윤리적 덕목들을 '이로움을 주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즉, 실질적으로 무언가 이롭게 만들어줘야한다는, 적어도 그럴 의도로 행동을 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맹자와 묵가가 극심히 대비되는 부분은 이 지점일텐데, 맹자는 이런 '이익을 줌'이라는 것이 도덕의 영역이라는 점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자와 묵가의 정의 사이에는 굉장한 유사점이 있죠.)

(b) 변론 : 변론을 함에 이기는 자가 없다면, 그것은 반드시 적절하지 않은 변론이다. 그 (변론에 대한) 설명이 변론에 있지 않는 것이다.
해설 : (변론을) 함이란 같은 내용이 아니라면, 다른 내용이라는 뜻이다. 같은 내용이란 어떤 사람이 개(狗)라고 부르면, 그것을 다른 사람도 도그(犬)라고 부르는 경우다. 다른 내용이란 어떤 사람이 소라고 부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말이라고 부르는 경우다.

변론함에 승자가 없다면, 그것은 변론이 아니다. 변론하는 사람 중 어떤 이가 그것이라 하고, 어떤 이가 저것이라 한다면, 합당한 (주장을 한) 자가 이긴다.

:이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묵가에서 변(론)이란 반드시 누가 옳거나 그른, 일종의 유사-베중율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유사-배중율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변이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형식 논리가 아니라, 그걸 포괄하는 일종의 비형식 논리 - 설득법 일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해설 역시 흥미로운데, 묵가는 외연과 내포 비스무리한 구분을 여기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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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현대철학의 밭 가운데 동양철학이라니.. 이건 귀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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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저는 "묵경"을 통해 "맹자"를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 조금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1. 맹자가 알고 있었던 묵가의 사상체계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묵가의 사상체계 사이에 괴리가 존재할 가능성.

맹자는 묵가를 비판할 때 2가지 지점에서 갈등관계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별애'와 '겸애'의 갈등, 두번째는 '도덕'과 '이익'의 갈등이 그것이죠. 그런데 그레이엄의 해석에 따르면 겸애와 교상리는 최종적으로 '상동尙同'을 지향합니다. 여기서 제가 가지는 의문은 '맹자는 묵가의 핵심적인 교리인 '상동'을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는데 언급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아예 몰랐기 때문에 거기까지 비판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런 점들이죠. 즉, 맹자가 알고 있던 묵가의 주장과, 우리가 재구성해 낸 묵가의 주장이 일치하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러한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아무래도 "묵경"이라는 텍스트가 여러 세대에 걸쳐서 완성되었다는 점이 큰 것 같습니다. 마치 "예기"에서 묘사되고 있는 공자의 상을 가지고 역사적인 공자를 추론하기 힘든 것처럼, 후대에 형성된 개념을 앞선 시기의 사상가가 갖고 있던 아이디어를 파악하기 위해 적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만약 "묵경"에서 정의하고 있는 '권'개념이 "맹자"보다 후대에 구성된 것이라면, 이를 "맹자"에 적용할 때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1. 권, 추 개념은 묵가만의 고유한 개념어인가? 아니면 당대의 사상가들이 공유하고 있던 개념 정의인가?

밑의 글에서 다른 분이 지적해주셨지만, 만달라님의 주장은 두 입장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권'개념을 당대의 사상가들이 이미 공유하고 있었고 묵가가 이를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은 것이라면 상관 없을지라도 '권'개념이 만약 묵가만의 고유한 성격을 갖고 있다면 맹자를 이해하기 위해 이 개념을 도입할 때 더욱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만달라님은 이 두 가지가 서로 일치한다고 주장하고 계시지만, 실제로 문헌적으로 증명되는 것인지요? '권'이라는 단어는 "맹자"에 총 3차례 등장하는데요. 이 중 어디에서도 맹자는 '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양혜왕상'7에서 "저울질한 연후에 무게를 알 수 있고, 자를 대봐야 길이를 알 수 있다." [權, 然後知輕重; 度, 然後知長短. 物皆然, 心為甚.]라고 한 부분은 아예 다른 맥락에서 제시되어 있죠. 그냥 뭔가 묵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례와 유사해 보인다는 심증만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기에는 증명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달라님은 "장자"의 사례를 제시해주셨는데요. 최근 출토문헌을 중심으로 한 연구들을 보면, 당대의 사상가들 사이에서도 지역적 차이 즉 지역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심지어 '성자명출'로 대표되는 곽점초간은 오히려 사맹학파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증거이기까지 합니다. 지역성과 더불어 묵자 사후 묵가가 최소 세 학파 이상으로 분열되었다는 정황까지 고려한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맹자가 알고 있는 묵가와 장자가 알고 있는 (혜시로부터 간접적으로 알게 된) 묵가 사이에도 차이가 있을 거라는 예상도 가능할 겁니다.
만약 만달라님의 연구방향성이 "맹자"의 원의를 복원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면 시간적 맥락과 공간적 맥락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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