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님이 잘 말씀해주셨는데, 몇 가지 부연 설명을 드리고 싶어요. 언어가 철학에서 중요한 주제로 부각된 것은 현대철학에서 일어난 소위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분석철학에서는 20세기 초반에 프레게, 러셀, 비트겐슈타인의 작업을 통해 언어의 한계를 기준으로 사고의 한계를 긋고자 한 시도가 이루어졌고, 대륙철학에서는 1960년대 이후에 하이데거, 가다머, 데리다, 라캉 등이 언어와 사유와 존재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였거든요.
이렇듯 현대철학 전반에서 언어가 커다란 이슈로 떠올랐고 여전히 많은 철학자들에게 언어가 중요하게 여겨지다 보니, 철학 안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에 대한 논의들은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대부분 언어적 전회에 대한 평가와 관련되어 있어요. 기사에서 언급된 촘스키의 연구도 넓게 보면 언어적 전회의 흐름 안에 놓여 있고요. 오히려 언어적 전회의 맥락을 벗어나면 (a) "철학자들은 언어가 사고의 핵심이라고 강조해왔다."라면서 철학자들 일반의 입장과 언어의 중요성을 굳이 연결 지을 이유도 없을 뿐더러, (b) 언어가 철학적으로 중요성을 지닌다는 주장 자체가 의문스러운 것이 되고 말죠.
그래서 저는 저 기사를 쓴 기자분이나 저 기사에서 제시된 인지과학적 연구를 수행한 분들이 언어적 전회에 대한 논의를 분명히 겨냥하고 있을 거라고 봐요. 언어적 전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만이 "철학자들은 언어가 사고의 핵심이라고 강조해왔다."라는 주장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그 주장에 대해 동의하든 비판하든 할 수 있는 거죠. 언어적 전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언어가 철학자들에게 중요한지조차 알 수 없으니까요.
다만, 언어적 전회가 영향을 미치는 철학의 영역이 너무나 광범위하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이 논의들의 쟁점이 다소 불분명해 질 때도 있어요. 특히, 지각철학처럼 철학과 인지과학이 자주 뒤섞이는 분야에서는 '언어'나 '개념'이라는 단어로 두 분야가 서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다르다 보니, 이런 혼동이 더 자주 발생하기도 하고요.
저는 인지과학의 논의들이 철학에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제가 지각철학에서 흥미롭게 보았던 존 캠벨(John Campbell)의 논의는 '시각적 주의 집중에 대한 불주의적 지도 이론(Boolean map theory of visual attention)'이라는 인지과학 이론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던 걸요. 캠벨의 책에는 아예 이 논의를 도표와 그림까지 인용하면서 자세히 설명할 정도로요. (캠벨은 감각을 통해 대상을 '선택'하는 과정과 표상을 통해 대상에 '접근'하는 과정 사이의 차이를 이 이론에 근거하여 구별하거든요.)
그러나 이렇듯 인지과학적 연구가 철학적 논의에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인지과학이 그 자체로 철학적 논의를 반박하거나 옹호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특별히, 언어에 대한 인지과학자들의 경험적인 연구 성과들이 언어에 대한 철학자들의 선험적 탐구들과 같은 층위에 놓이는 것은 아니죠. 저는 (a) 인지과학이 종종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아요. 단지 (b) 인지과학이 언어의 편재성에 대한 철학의 통찰을 비판하는 데 사용될 수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에요. 적어도, 저 기사의 내용은 확실히 이 두 가지 층위를 구분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