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쾨르의 공화주의에 대한 단상

위 요약문을 정리하고 나서 쓰는 다소 두서 없는 단상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신 분은 위의 링크를 읽고 오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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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쾨르를 공화주의자로 연결지어 해석하는 드라이스 듀어의 논문은 상당히 재밌고, 여러모로 동의한다. 특히 리쾨르를 기존의 공화주의의 두 흐름, 시민 공화주의와 시민 인본주의와 다른 점을 제시하며 리쾨르가 보다 적절한 공화주의를 제시하고자 했다는 듀이의 설명은 개인적으로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자유에 대한 긍정적 개념을 제시하지 않고, 오직 임의적인 지배의 부재로서만 자유를 해석한다면 결국 시민적 미덕을 실천하거나 공동선을 추구하는 행위는 모두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될 것이다. 이는 결국 자유주의적 정치 이론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를 그대로 담습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과 같은 시민 인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 입각해 공동선에 참여하고 책임을 지는 정치의 내재적이고 본질적인 방식이 바로 자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공동체의 자치가 반드시 선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이클 샌델이 많이 받는 비판 중 하나가 그의 정치철학이 공동체가 타락하거나 공동체가 개인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자유주의의 오류와 문제를 피하기 위해 다시 개인을 억압하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치가 본질적인 선이라는 논란 많은 가정을 버리고, 정치적 형태나 방식은 도구적일 뿐, 중요한 것은 정치란 언제나 변질되고 개인을 억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리쾨르는 개개인이 공적인 정치 행위에 참여하고 동시에 공동체의 지배 방식을 견제를 하는 시민성을 갖추고, 공동선을 이룩하기 위해 참여해야 하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태도가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방식의 공화주의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라고 주장한다. 나는 리쾨르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하는데, 그 이유는 정치적 행위나 특정한 정치 방식을 본질적 선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공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할 이유를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 무맥락적인 개인이 아니고, 언제나 공동체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공동체와 타인이 반드시 본질적인 선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더 쉽게 예를 들자면 국가도, 정부도, 가정도 우리의 배경을 이루고 우리의 기반을 이루지만 그것들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우리는 때로 선을 위해 국가에 반기를 들 수 있고, 정부에 반기를 들 수 있고, 가정에 반기를 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공동체든, 특히 정치 공동체는 우리의 열망과 정치적 참여가 반영된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 공동체가 변질되어 우리를 억압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우리는 나와 내 이웃들을 지키고 함께 잘 살아간다는 선을 이룩하기 위해서 시민적 미덕을 갖춰야 하고, 견제하는 시민성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국가를 존중해야 하고 정치 시스템을 존중해야 하지만 각 공동체가 자치를 하는 것이 반드시 선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리쾨르의 정치철학이 그가 "해석학과 인문사회과학"에서 가다머-하버마스 논쟁을 다룰 때 제시했던 관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리쾨르는 우리가 전통과 무관하지 않은 맥락적 존재임을 강조한 가다머와 전통에 대한 객관적 비판 가능성을 강조하는 하버마스 사이의 길을 열고자 노력했다. 우리가 맥락적 존재가 맞고, 그렇기에 우리는 공동체의 맥락을 존중하며 우리가 전적으로 객관적인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속한 전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판적 계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리쾨르는 그것을 거리두기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신의 전통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속한 전통과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비판의 계기를 만들 수 있는 거리두기가 가능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리쾨르의 정치 사상과도 직결된다. 우리는 무맥락적이고 보편타당한 정의에 의존하는게 아니라 선을 추구하고, 공동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그런 조건에서 벗어난 완전한 객관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성공할 수 없는 기획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이 전통과 공동체의 맥락에 입각해있다고 해서 그것을 선하다고 받아들이거나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이웃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 공동체가 역설적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정치적 역설을 언제나 기억하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거리를 두며 비판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고, 공적 행위에 참여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런 리쾨르의 정치 사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공공성을 갖추면서도 비판의식을 가진 시민을 기르기 위한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보수층은 "애국", "충성"과 같은 개념들을 사용하며 우리가 국가로부터 나온 존재고 우리는 그 국가라는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의 통치 방식에 따라야 함을 강조한다. 반면 진보는 국가 공동체가 국민들을 어떤 식으로 억압해왔는지를 강조하며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의 지배에 저항해야 하고, 그 저항을 위해서 같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두 가지 양 극단의 흐름 속에서 리쾨르의 사상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개인의 권리에 매몰되지 않고 공동체를 존중하며 공동선을 추구해야 하지만, 그것이 곧 국가의 자치와 통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본질적 선으로서의 정치 방식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안된다고 지적할 수 있다.

정치는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도구적 가치만을 지닐 뿐이지만, 윤리적인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필수불가결한 요소고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윤리적 삶을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리쾨르의 정치 사상은 강점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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