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스 듀어, 「리쾨르와 영미 정치 철학: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그리고 공화주의」 요약

논문 인용정보: Deweer, D. (2018). Ricoeur and Anglo-American Political Philosophy: Liberalism, Communitarianism, and Republicanism. Philosophy Today, 62(3), 803-821.​​

1장.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자로서의 리쾨르

리쾨르를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라는 미국 정치철학적 용어를 이용해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이런 시도를 제시한 첫 번째 학자는 버나드 다우엔하우어다. 다우엔하우어는 리쾨르가 자유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한 측면에서는 동조했지만 그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그 자율성을 지키는 시스템 자체를 위협하는 자기 전복적인 특성을 경계했고, 공동체주의는 우리의 정체성이 공동체에 의해 형성되고 우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했지만 개개인의 자율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다우엔하우어가 리쾨르를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자로 분류한 것은 주로 개인 정체성에 대한 리쾨르의 개념에 근거한 것이다. 이 개념은 자신의 시공간적 동일성을 구성하는 경험적 성향의 집합인 이뎀-정체성(idem-identity)과 약속을 하고 지킬 수 있는 능력, 따라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의 근간이 되는 자아 불변성인 이프스-정체성(ipse-identity)을 구분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리쾨르는 개인 정체성을 인간의 부채 의식과 새로움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모두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뎀 정체성과 이프스 정체성을 결합한 내러티브 정체성으로 설명한다. 리쾨르는 집단적 정체성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개별 인간의 인격성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자다. 하지만 리쾨르는 그 자아, 개별 정체성이 발생하는데 있어 공동체적 자원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특히 이뎀-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있어 공동체적 자원이 반드시 들어간다는 점에서 공동체성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다우엔하우어는 리쾨르를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자로 분류한다.

요한 마이클도 리쾨르를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자로 설명한다. 마이클은 리쾨르가 공동체주의의 반-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반-맥락주의를 어떻게 연결짓는지를 설명한다. 마이클에 따르면 리쾨르는 롤스를 비판하면서 그의 절차주의적 성향과 형식주의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리쾨르는 정치 원리들을 결합하기 위해 공동체적 자원, 역샂거-문화적 전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그런 기존의 문화적 요소를 배제한 채 절차와 형식만으로 윤리와 정의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하지만 리쾨른느 여전히 윤리적 원칙들이 보편적이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공정과 정의가 맥락적이라는 공동체주의의 주장을 거부한다.

프레드 달마이어도 마찬가지로 리쾨르를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자로 설명한다. 그는 리쾨르가 자유주의의 보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맥락주의를 그가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리쾨르가 "보편성에 대한 요구"와 "맥락적 한계에 대한 인지" 사이의 반성적 평형을 강조하면서 보다 열린, 보편적인 원칙을 세우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각자가 문화적, 사회적 맥락의 한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좋음과 진리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그 용어들에 해석이 다양함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주의에 빠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듀어는 이 저자들의 설명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공동체주의적 자유주의라는 용어만으로는 충분하게 리쾨르의 작업을 포착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리쾨르의 작업을 보다 잘 조명하기 위해서 공화주의 개념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2장. 공화주의의 부활

개인과 공동체의 긴장 속에서 새롭게 제기된 문제가 바로 시민권의 문제다. 그리고 이 시민권의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쿠엔틴 스키너, 필립 페팃, 마이클 샌델이고 이들이 공화주의의 부활을 촉진했다. 이 현대의 신공화주의자들은 고대 공화주의 이론을 계승한다. 페팃은 공화주의의 핵심 사상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1) 비지배로서의 자유 개념

(2) 혼합된 조직(mixed constitution)에 대한 개념

(3) 깨어있는 시민(vigilant citizenry)의 중요성

공화주의의 특수성은 바로 첫 번째, 비지배로서의 자유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란 다른 사람이나 단체가 나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을 때 그것을 자유롭다고 한다. 이런 자유 개념에 따르면 기존의 자유주의에서 규정하는 자유 개념에 대한 두 가지 비판점을 제기하게 된다. 먼저, 자유주의는 자유의지를 행사하는데 있어 모든 종류의 간섭이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반면 공화주의는 간섭이 있더라도 그것이 바로 자유의 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가령 우리가 민주적 의사 결정 절차 내에서 공동의 힘의 표현으로 자유의지를 제한하는 간섭을 제기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그 간섭을 실현하는데 참여했기에 자의적인 지배가 없었으므로 자유가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 다른 한편, 간섭이 없다고 해서 자유롭다고 볼 수도 없다. 가령 여성의 운전이 금지된 사우디에서 한 여성이 낙타랑 부딪힐까봐, 혹은 걷는게 좋아서 운전을 안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자유주의자들은 사우디 여성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고 주장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을 운전을 못하도록 한다는 자의적인 지배가 남아있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사우디 여성이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개인의 자유는 정치 공동체의 자유, 자의적 지배가 없는 정치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이 자의적인 지배가 없는 정치 공동체는 권력자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혼합된 조직을 필요로 한다. 혼합된 조직이란 각 시민이 다른 시민과 평등한 법치, 헌법적 질서와 어느 한 개인이나 단체에 법의 지배를 거부하는 권력 분리 및 공유, 즉 혼합된 질서를 보장하는 것이다.

또한 공화주의적 자유는 자신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권력자의 침해를 경계하고 그런 침해에 대해 기꺼이 저항하고 행동하는 깨어있는 시민성을 요구한다. 공화주의는 자유라는 공화주의의 이상이 양심적인 시민들과 함께 역동적인 민주적 과정에 의존하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높은 기준을 설정한다.

이렇게 신 공화주의는 세 가지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 안에 또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뉘게 된다. 먼저 스키너와 페팃은 현대 시민 공화주의자로, 자유에 대한 모든 긍정적 개념에 반대하고 자유라는 관점에서 시민의 의무를 생각하며 적극적 방식의 자치가 지배에 대한 필수적인 대응책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마이클 샌델,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나 아렌트와 같은 이들이 지지하는 입장은 시민 휴머니즘으로 불리며, 이 입장도 페티가 제시한 공화주의 세 가지 핵심 요소에 동의하지만 시민 공화주의와 다른점은 시민 휴머니즘은 공화주의적 자유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치가 단순히 지배에 대한 필수적인 대응책이라고 하는 것을 넘어 자치가 적극적이고 양심적인 시민권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삶을 성취하기 위해 본질적으로 가치 있고 필수적이며 일차적인 전제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듀어는 이런 공화주의와 리쾨르의 사상을 연결지어 이해하고자 한다.

3장. 공화주의와 리쾨르

듀어는 폴 리쾨르의 정치 철학에서 "정치적 역설"이라는 개념이 통해 공화주의의 핵심 사상과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설명한다. 리쾨르의 핵심 사상은 정치 철학이 종종 정치의 뚜렷한 합리성을 강조하는 쪽과 권력과 폭력 사이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추는 쪽의 두 진영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이분법을 거부하고 두 가지 관점을 결합하여 정치적 합리성은 필요하지만 정치에는 본질적으로 부패와 폭력의 위험이 수반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방향을 취한다.

리쾨르의 정치적 역설은 국가가 개인의 열정과 헌신의 결과물인 동시에 잠재적 악의 원천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는 정치의 긍정적인 가능성은 본질적으로 부패의 위험을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는 공화주의의 세 가지 핵심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1. 비지배로서의 자유: 리쾨르는 정치의 핵심 문제를 자유의 실현으로 본다. 그는 진정한 정치적 자유를 불법적이고 자의적인 권력 장악을 제거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이는 비지배로서의 자유라는 공화주의 사상과 일치한다. 그는 진정한 정치적 자유에는 정치 권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자유와 권력을 행사하는데 참여할 수 있는 자유를 모두 포함한다.

  1. 경계하는 시민성: 정치의 역설은 깨어 있고 적극적인 시민권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리쾨르는 모든 시민은 정치적 경계에 참여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에는 책임의 윤리(신중하고 현실적인 정치적 행동)와 신념의 윤리(이상 유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포함된다.

  1. 혼합된 조직: 리쾨르는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권력 분립과 균형이 필수적인 혼합형 조직의 개념을 지지한다. 그는 권력의 오용을 방지하면서 권력의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독립적인 사법권, 정보의 자유, 노동조합의 자유, 파업권 등이 포함된다.

리쾨르는 평생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역설을 재구성하며 정치 시스템 내에서 견제와 균형의 필요성을 항상 강조한다. 그는 정치 제도와 개인의 번영을 연결하여 개인과 정치 제도 간의 상호 인정 관계를 옹호한다.

리쾨르는 그의 사상이 공화주의와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공화주의자라고 밝히지 않았다. 그가 공화주의자로 분류되기를 꺼린 이유는 공화주의라는 분류에 갇히는 것에 대한 거부감, 영미 정치 철학에서 공화주의가 부활한 것이 너무 최근의 일이라는 점, 그리고 프랑스의 맥락에서 공화주의가 갖는 다양한 의미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과 연관된 프랑스 공화주의는 대중 주권과 민족 자결권에 더 중점을 두는데, 이는 영미 신공화주의에서 혼합 헌법과 경합적 시민권을 강조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로 인해 리쾨르는 공화주의와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공화주의자로 분류하지 않았다.

리쾨르의 정치 철학은 비지배로서의 자유, 경계하는 시민의식의 중요성, 권력 균형을 지키고 폭정을 막기 위한 혼합된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공화주의의 한 형태로 특징 지을 수 있다.

4장. 보다 적절한 공화주의

리쾨르는 공화주의자들의 기본 전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공화주의자라고 볼 수 있지만, 기존의 공화주의자들과는 분명 차이를 두고 있다. 앞서 살펴본 시민 공화주의나 시민 인본주의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보다 명확하게 할 수 있다.

시민 공화주의는 긍정적인 자유 개념 자체를 거부한다. 그런데 문제는 긍정적으로 이룩할 수 있는 자유 개념을 거부하고 선보다 정의가 우선한다고 주장할 경우 시민 공화주의가 강조하는 시민적 미덕을 강조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시민 공화주의자들은 결국 자유란 임의적인 지배가 없는 상태일 뿐이라고 주장하기에 시민들의 최우선 순위는 시민의 미덕이 아니라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을 지키는 것에 한정된다. 이런 종류의 공화주의는 결국 정치적 자유주의자들과 근본적인 차이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리쾨르는 자유에 대한 긍정적인 개념이 존재하고, 시민적 덕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개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정의가 아니라 그것이 좋은 것, 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들이 가져야할 올바른 태도는 우리가 공적인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권리를 지키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좋은 것, 선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윤리적 태도다.

이렇게 보면 리쾨르가 시민 인본주의자들의 편에 선 것 같지만 또 차이가 있다. 시민 인본주의자들은 공동체의 자치가 본질적으로 좋은 선이기 때문에 자치가 긍정적 자유 개념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리쾨르는 정치의 역설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즉 정치가 시민들의 열망을 반영하지만 그 열망이 누군가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그 역설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치가 잘못 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시민들의 정치 참여, 공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치라는 방식이 반드시 본질적으로 좋은 방식이라고 볼 수 없다. 본질적인 정치적 좋음이라는 것은 없다.

리쾨르는 분명 선이 정의에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선은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특정한 정치 형태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나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정치는 언제나 그 균형이 깨지기 쉽기에 공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맥락에서의 공동선에 대한 참여다. 리쾨르가 생각하는 선의 개념은 논란이 많은 자치권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가정이 아니라 그의 해석학적 현상학이 증명하는 광범위한 윤리적 추구에 대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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