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오토 아펠의 논문을 읽다가

아펠(K. O. Apel)은 국내에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하버마스와 더불어 가다머 이후 해석학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아펠과 하버마스는 이상적 담화 상황에 근거한 ‘보편적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해석학에서 그동안 망각되었다고 비판하는데, 이들의 비판은 ‘해석학의 보편성 주장‘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거대한 하나의 축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모든 것이 해석이다!“라고 주장하는 해석학은 정작 자신의 그 주장 자체에 대해서만큼은 해석을 넘어서는 일종의 ‘보편성‘을 부여하려 하죠. 가다머는 이런 해석학의 보편성 주장으로 인해 많은 논란과 비판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래서 가다머 이후의 해석학들은 모두 이 해석학의 보편성 주장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아펠과 하버마스는 그 중에서도 ‘초월론적-실용주의적‘ 접근을 시도하는 인물들이죠. 해석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라도, 객관적 타당성, 보편성, 합리성 같은 이념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입니다. 이 이념들을 옹호하기 위해 칸트의 초월철학을 갱신시키려 하는 것이 이들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죠. 오늘날 언어철학에서 제시된 (특별히 신실용주의에서 제시된) 논의들이 이러한 초월철학의 갱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이 주장하는 바입니다.

저는 아펠과 하버마스의 논의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 두 사람의 글솜씨에는 정말 놀라게 되네요. 하이데거를 비판하는 아펠의 논문을 읽는데, 어떻게 이렇게나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으면서, 개념들을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감탄이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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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제 주변을 넘어 올빼미에서도 아펠의 논의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역시 하버마스의 이론 철학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윤 님께서 얘기를 꺼내시는군요. 개인적으론 하버마스의 이론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선 아펠의 논의도 잘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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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시절에 아펠의 「해석학과 의미비판」( 『해석학의 철학』, O. 푀겔러 엮음, 박순영 옮김, 서광사, 2009 수록)을 아주 유익하게 읽었거든요! 언젠가 위의 논문이 수록된 책인 From a Transcendental-Semiotic Point of View도 전체적으로 꼼꼼히 읽어보려고요. 아펠의 초월철학적 입장이 잘 반영된 책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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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펠과 하버마스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하이에크와 노직, 호페 같은 자유지상주의~ 무정부주의 사상에서도 아펠의 이름이 간간히 언급되던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하이에크와 노직, 호페 같은 자유지상주의~ 무정부주의 사상에서도 아펠의 이름이 간간히 언급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마침 서강올빼미에도 관련 글이 있어서 apprentice 님의 요약문을 언급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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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칼 오토 아펠도 하버마스아 마찬가지로 인용은 많이 되는데 번역은 잘 되지 않는 철학자인 느낌이더군요.

저도 리처드 번스타인을 통해 (신)실용주의와 철학적 해석학을 처음으로 접한 입장에서 로티나 버스타인 같은 실용주의의 입장에서 해석학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년의 로티가 해석학과 거리를 둔 것에서 보듯 가다머 이후의 현대 해석학은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너무 전통주의적이거나 너무 이성중심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최근에 올리신 형이상학적 해석학이 그런 사례 중 하나겠지요) YOUN님은 아펠과 하버마스의 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보다 대안적인 해석학에 관심이 있으신 듯 한데 이런 상황에서 실용주의와 해석학이 상호 발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방향일지도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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