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종말? 그리고 철학과 대학원생은 언어공부 수고를 덜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openAI에서 영어, 스페인어 실시간 AI 통역을 하는 것을 공개했습니다. 댓글보면 찬양하는 게 많고, 거품을 떼고 봐도 여행인 관광할 때 가볍게 쓸 수 있는 정도인 거 같네요.

저걸 보면서 앞으로 번역가의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해봤습니다. AI에 의해 대체되는 일자리 - 5백만 프리랜서 직업 분석 | GeekNews
이 글을 보면 근래에 번역가들의 시간당 페이가 20프로 정도 감소하고 있다고 나오죠. AI 번역 영향이 적지 않을 겁니다. 일례로 저희 회사에서 앱내에서 한국어 -> 영어 번역을 지원했어야 했는데, chatgpt로 인한 번역이 예상(?)보다 상당히 쓸만했습니다. 물론 생성된 번역문을 한 번 쫙 읽어봐야됬지만, 직접 쓰는것과 이미 써진 것을 교정하는 수고를 비교하면 후자가 압도적으로 적은 게 체감되었습니다.

철학과 분들이 이런 번역 이슈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실지 궁금하네요. 제가 알기로 많은 철학과 분들이 언어를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특히, 특정 분야(예를 들어, 불교 철학이나 중세철학 전공자 분들) 분들은 아예 많은 고언어(산스크리트어나 아랍어, 히브리어 등)를 할 줄 알아 원전을 읽는 게 경쟁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유학을 전공하시는 분이 한국고전변역원을 수학하시면서 번역을 공부하는 사례도 본 거 같습니다. AI 번역이 좀 더 효율적이고 쓸만해진다면(사실 이미 상당히 유용한 수준, 그러니까 기업에서 채용할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캔한 글자를 잘만 인식해준다면, 그런 공부에 상당한 공력을 들인 분들의 노력이 기회 비용(?) 대비 상당히 허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AI 번역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겠죠. 특히나 해석이 민감한 부분일 수록 원전을 직접 읽는 능력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왠지 거대한 흐름으로는 점점 더 대학원생들이 언어 공부를 안하겠다는 예측을 할 수는 있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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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학문의 영역에서 아직 그렇게 의미 있는 것 같진 않아요. 글자를 읽는 것과 자간을 읽는 것 사이에는 큰 의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글자를 읽는 시간을 압도적으로 줄여준다?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학술어 번역은 아직 미흡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히 대가들의 책은 문장 구조가 유난히 복잡한 경우가 많아서... 번역기 돌려도 이해 가능한 형태로 도출되는 경우가 많이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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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나 독일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기능은 아직 한계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에는 정말 AI 번역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 생각이 다른데요. 글쓴이 분도 언급하셨지만 해석이 민감한 부분의 존재 때문에라도 원전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에 대한 필요는 계속 존재할 것 같고 또 학술장에서의 위치 차지를 생각해보더라도 언어학습은 여전히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굳이 철학사 연구자가 아니라고 하면 가능한 일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철학사 연구자에게는 언어 학습이 사회에서 직업을 얻을 때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에서 철학사 연구자의 직업시장에서의 가치 하락. 그리고 철학사 연구자와 철학 연구자의 백그라운드가 더 달라짐에 따라 둘 간의 간격이 더 벌어지는 일은 있을 수 있을 것 같네요.

DeepL 번역기기 나왔을 때 제 분과에 속한 대학원 학생들한테 보낸 톡입니다:

DeepL 번역기

를 사용해 구문이 단순하지 않고 다양한 어휘들이 구사되어 있고 짧지 않은 영문 기사 두개를 번역해 보았어요. 결과가 아주 놀라워요. 오역률이 0%에 근접할 뿐만 아니라 문장이 매끄럽기까지 해요. 영어->한국어 번역 수준이 이 정도면 사용자들이, 따라서 데이터가 훨씬 더 많은 언어들끼리의 번역은 말할 것도 없어요. 번역은, 서구 나라들이 앞서 있는 학문 분야에서는 특히나 더, 기본적인 공부 활동 중 하나이고 여러분은 늘 영어 문헌들을 정확히 독해하는 데 많은 시간과 신경에너지를 투입할 것을 요구받고 있어요. 그 시간과 신경에너지가 대폭 줄어들게 된거에요. 아울러 다른 학문 선진국들의 문헌들도 그 나라들 언어의 기본적 문법만 알고 있어도 그 문헌들이 해당되는 주제에 친숙하다면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번역을 업으로 삼거나 외국어글이나 문헌을 즐겨 읽는 이들이나 여러분같은 인문학도들은 이 녀석에 초벌 번역을 맡겨야 할 거에요. 물론 이제 누구나 번역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최소한 번역기보다는 번역을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기도 했어요. 번역기가 오역하거나 매끄럽지 않게 번역한 부분을 여러분 자신이 잡아내고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여러분의 외국 문헌 독해 실력은 뛰어난 번역기로 인해 정체보다는 향상을 강제당할 거에요.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로 인해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사진의 기준이 올라간 것처럼 말이에요. 독해력에 일정 이상의 자신이 있는 이들과 이미 외국어 글 및 문헌 읽기가 생활화 되어 있던 이들만 번역기를 자신있게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번역기가 나온지 꽤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인터넷 게시판에 양질의 번역이 올라오는 경우가 거의 늘지 않았다는 사실에 드러나요. 우리는 정의상 그런 한계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에요. 인터넷에 쓰레기 같은 외국어글들만이 아니라 좋은 외국어글들도 어마어마무시하게 많고 거의 모든 외국어 학술 문헌들이 번역기에 투입하는 것이 용이한 형태로 나오는 현실에서, 여러분이 관심있는 주제의 글들과 문헌들을 이전보다 훨씬 적은 신경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 읽을 수 있게된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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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번역이 무엇인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에 관련한 토론은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단어 하나하나 그에 상응하는 국어 단어를 찾는 번역이 좋은 번역인지, 아니면 맥락과 언어의 실질적 사용에 중시한 번역가의 의도가 개입한 번역이 좋은 번역인지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다만 고문서, 혹은 여러 저자가 함께 작업한 문서의 경우에는 이런 인공지능을 활용한 번역이 큰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문서들에서도 문체(?)와 맥락이 중요하겠지만 연구에서 사용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 생각되네요.

번역기는 아니지만, 그래멀리(Grammarly) 문법 검사기에 추가된 인공 지능이 제가 쓴 영어 문장을 더 명료하게 만드는 데 유용하긴 하더군요. 그래도 여전히 인문학도뿐만 아니라 이공계 학생들도 영어 학습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계가 다듬거나 번역한 글의 최종 검토자는 아직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끔 기계 번역이 나쁠 때가 있어요.

아랫글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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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인공지능은 글을 더 가독성있게 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례로 다음 글은 한국어로 작성된 것을 chatgpt4로 영역한 것인데, 영어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티가 많이 납니다.

Choosing a major is a pivotal decision that shapes one's academic journey and
future career path. For me, the decision to major in biology is deeply rooted in my
passion for understanding the intricate complexities of life and the natural world.
Biology, as a field of study, encompasses the essence of life and the mechanisms that
drive it, making it a fascinating and dynamic subject.

원래 주어진 한국어 글을 읽지 않고서도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뻔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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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는 왜 저 글에서 번역 투가 안 느껴질까요? :joy: 아무래도 저도 전공서 말고 다양한 종류의 영문을 더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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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작을 해야 할 때면 ChatGPT와 Grammarly를 동시에 사용합니다. 토종 한국인인 저보다야 이런 인공지능들이 영작에 훨씬 능숙하긴 하고, 또 제가 영어의 자연스러움을 평가할 만한 수준의 어학 실력이 되지 않기는 하지만, 확실히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면 주어부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길어지는 문제가 있긴 하더라고요. (아마 'a라는 b' 같은 한국어 특유의 수식 어법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단순히 제 한국어 글쓰기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요.) 특별히, 제가 쓴 글을 영어로 번역한 다음 소리내어 읽다 보면, '이거 원어민이 보기에는 정말 한국어스러운 문장이겠구나.'하고 저 스스로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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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손을 거치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처음부터 영작하는 거랑, 주어진 것을 교정하는데에서 드는 품 차이가 꽤 있는 거 같네요. 그리고 품뿐만 아니라 요구되는 어학적 능력의 정도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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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경우는 항상 번역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단어가 제대로 번역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개의 다른 개념을 담고 있는 전문용어가 같은 단어로 해석되는 경우도 많이 봤고, 또 문맥에 따라서 같은 단어가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도 있지요. 또, a/the 같은 article의 경우에는 한국어에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미묘한 차이도 번역이 되지 않겠지요.

두번째로, 헤겔처럼 말장난 (wordplay)을 많이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것을 번역으로 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서만 보게 되면 헤겔이 지금 말장난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기가 어렵지요.

또,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어순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문단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고 해봅시다: "I went to bed early last night, because I was tired." 이 경우에는 "나는 피곤했기 때문에 어제 일찍 잠이 들었다"라고 번역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 경우에는 어순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영어에서는 문단을 시작하는 문장 (정확히 말하면 topic sentence)의 끝부분에 그 단락의 focal point가 들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문장을 읽을 때 우리는 피곤하다에 중점을 맞춰야하겠죠. 그러면서 그 단락의 나머지가 왜 피곤했는지, 얼마나 피곤했는지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을 예상합니다. 하지만 어순이 바뀐 문장을 보게 되면 그런 건 없어지지요. 그렇기 때문에 번역어는 어순을 제대로 전달해줄 수 없다는 면에서 우리에게 정확한 의미를 전달해줄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모든 이유들은 제가 번역 자체에 회의감을 갖고 있는 이유고, 전 AI가 이 이유들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철학사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AI가 발전하더라도 언어를 계속 공부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2차자료 같은 건 그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나니 드는 노력을 조금은 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딱 그 정도의 가치만 있을 것 같다는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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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 저건 일반 번역체보다는 GPT체라는 번역체의 한 종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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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기가 철학과 문학 텍스트에 대한 엄밀한 번역을 해낼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해요. '클로드3'과 대화 해보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이의 말장난도 처음에는 캐치하지 못하지만 설명하면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더군요. 이 경험을 토대로 저는 데이터가 쌓이면 섬세한 표현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번역해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번역자의 역할이 인공지능의 초벌 번역을 검토하고 최종 원고를 결정하는데 주력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나중에는 어떤 번역기의 초벌 텍스트를 감수하였는지가 번역서를 고르는 기준 중 하나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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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이해'한다는 말을 하신 게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심리철학 개론 수업 때 존 설의 주장에 설득이 됐었거든요. 제가 이해하기로 존 설에 의하면 인공지능은 대화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계산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제가 중국어를 아예 모른다고 하고 한 방에 들어간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저는 그 방에서 한 룰을 전달받아요. 그리고 제가 한 중국어 문장을 받으면, 전 지령받은 룰에 의해서 중국어 문장의 모양만을 보고 다른 문장을 생성해냅니다. 그리고 그 룰이 충분히 좋다면, 바깥에서 중국어 문장을 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와 중국어 대화를 하고 있다고 느끼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 안에서 룰에만 따를 뿐 그 문장을 이해하지 않았죠. 그리고 존 설은 인공지능이 하는 것이 방 안에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럴싸한 문장을 생성해내는 저와 같다고 하는겁니다. 그래서 존 설에 의하면 인공지능은 문장을 룰에 의해서 compute하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존 설이 무조건 맞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존 설에게 설득된 저로써는 인공지능이 '이해'한다고 하는 게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네요. 물론 전 심리철학 알못이기 때문에, 전 흔히 말하는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긴 합니다 (그때 존 설의 책을 다 읽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 권도 아니네요 :joy: 또, 제가 존설을 읽은지 오래돼서 제 요약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와 별개로, 위에서 제가 말한 번역의 한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왜냐면 결국에 제가 주장한 것은 번역 그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AI가 @tonertech 님 말대로 완벽한 번역을 해내더라도 어찌됐든 번역이기 때문에 원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니깐요. 다시 말하면, 전 번역는 번역을 해주는 도구이고, 이 도구는 인공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완벽해질 수 있겠지만, 결국 번역 자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번역기가 완벽하더라도 원서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tonertech 님은 번역기가

해준다고 하시고, 결국 완벽한 번역가 아닌 완벽한 번역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거든요. 물론 짧게 쓰신 걸로 넘겨짚은 것이라서 예측에 불과하겠지만, 제가 맞게 넘겨짚었는지, 또 그렇다면 번역의 한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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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번역자의 역할이 인공지능의 번역을 검수하고 최종 원고를 결정하는 것이 된다면, 저는 오히려 언어공부의 수고가 늘어난다고 생각됩니다. 인공지능이 번역한 것이 정확한지, 문맥과 시대적 배경까지 고려하여 사용된 단어가 "옳은" 단어이며 번역인지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번역의 종말은 커녕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언어능력이 대학원생들에게 요구되지 않을까요?

저희가 접하는 대부분의 대형 언어 모델(LLM)들은 학습된 모델들입니다. 이미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사람이 직접 답변을 평가하며 학습된 것이죠. 방대한 양의 지식을 학습하고, 사고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지닌 강인공지능(마치 영화 Her에 나오는 사만다처럼요.)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인간이 개입된 선행학습의 과정이 생략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는 결국 인간의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블럭체인처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피드백을 해가며 주관이라는 오차를 줄여나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학습 방식 자체가 인공지능이 번역에 도입되기에는 한계를 만드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인공지능의 학습에 관련하여 다음 영상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재밌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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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학자 이상빈 교수에 따르면 적어도 영어 전공 학부생 수준에서는 머신 번역을 사용할 때 번역 퀄리티가 유의미하게 높아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계 번역이 정말로 글을 이해하면서 번역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간 검수자는 항상 필요할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번역 분야를 떠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인공지능이 할 수 있고, 또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 궁극적으로 텍스트 등에 대한 "이해" 등을 인간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둘을 같이 활용해야 합니다. gpt는 통계론적 추론을 통해서 응답을 위한 낱말들을 연이어 생성한다고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 기법을 활용해 생성된 글은 일개 개인이 자신의 제한적인 경험/지식을 통해 내놓는 말이 담지 못할 통찰력 있는 내용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신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글도 이해에 기반한 게 아니라 통계적 추정치를 통해 생성된 글이기에 잘못된 내용을 여과 없이 포함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적 "이해"는 아무래도 시간의 연속성 등을 감지할 수 있는 qualia적 능력도 필요할 것 같은데, gpt는 이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글을 "이해"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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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런 부분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는 모어를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고 모어로 이해하는 것이 쉽기 때문에 번역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마다 쉽게 이해하는 글을 쓰는 방식이 달라 같은 언어권 내 화자라도 글을 쓰는 방식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더 어려운 학문적 개념이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동안의 이해를 바탕이 되어야 하죠.
영상에서 나온 실시간 동시 통역은 사실 이해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문자를 문자로 옮기는 작업에 가깝고 현재의 동시 통역도 이후에 전체 번역문이 보도가 됩니다. 다만 동시 통역 과정에서 중대한 오류가 발생하면 이를 실시간으로 바로 잡기 어려운 점은 있죠. 그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저는 오히려 번역가보다는 동시통역가가 먼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GPT를 사용할 땐 단순히 번역을 원하는 글만 줄 뿐입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예시로 생각하면 아무리 발번역이라 한들 번역자가 그동안에 쌓았던 경험과 자료조사를 통한 이해를 모어의 문체에 반영해야 하는데...저는 GPT가 아직 거기까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fine-tuning을 통해 특화된 LLM을 설계할 수는 있습니다만 빅테크 기업들은 좀 더 포괄적인 방향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GPT 4o 다음날 진행된 Google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Gemini의 차기 버전이라던가 삼성의 One UI 업데이트, 애플의 Siri와 GPT 4o 통합 등을 보면 요즘 LLM의 추세는 전문가 모델보단 일상적으로 포괄적인 것을 담당할 수 있는 챗봇, 자비스 같은 존재로 방향을 살짝 바꾸지 않았나라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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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미권이나 유럽 학생들은 모국어로 철학을 공부하는 게 디폴트이고, 그런 점에서 비영미권 비유럽권 학생들이 언어 학습에 지나친 시간과 수고를 투자하는 게 이상한 거라고 생각해요. 영미와 유럽 학계가 오랫동안 지배적 위치에 있고, 오랜 세월 철학 장에서의 전통적 강자인지라,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언어에 많은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ㅜㅜ 그런 점에서 챗지피티 같은 번역기의 발전이 정말 텍스트 읽는데 있어 많은 수고를 덜어줄 수 있고 유용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매우 analytical한 작업을 해야할 경우, 한계가 여전히 많겠지만은요. 수업 가기 전에 읽어야 할 텍스트가 한가득인 철학과 학생들에게 유용한 툴일 거 같습니다. 대신, 그럼에도 번역이 적확한지 본인 스스로 한 번 더 검수할 수 있어야 하기에, 여전히 학생의 언어 능력은 필요한 거 같아요. 저같은 불안증 의심증은 번역기 돌리고도 미심쩍음에 꼭 다시 검수하고 제 언어로 표현하려고 하는 편이라..
근데, 이제 유학생들에게 이 번역기가 제한적 역할만 하는 게, 세미나 가서 선생님과 학생들의 대화를 알아듣고 또 본인이 디스커션에도 참여해야 하고, 이렇게 외국 학계에 몸담고 있다면, 결국 언어 능력은 필수인지라 뭐... 유학 가서 텀페이퍼랑 논문만 쓰고 후딱 학위따서 돌아오겠다 하면 번역기가 공부하는데 정말 유용하겠지만, 그 이상을 성취하기를 원한다면, 번역기의 유의미성은 제한적인 거 같아요.
그리고 외국어로 텀페이퍼 쓰거나, 어떤 글을 쓸 때도 번역기 정말 유용하고 저도 종종 도움을 빌리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의심이 남아요. 글쓰는 이들에게는 고유한 스타일 문체가 있는데, 번역기를 돌리면 뭐 문법이나 어휘는 좀 정교해질 지 몰라도, 자신만의 철학적 글을 쓰는데 있어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저는 믿거든요. 그래서 저는 중요한 철학적 글을 써야할 때는 서툴러도 제가 직접 문장을 짜서 단어를 짜서 씁니다. 그게 또 전달력이 더 명쾌하고, 제 의도를 더 잘 전달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구요. 제가 서툴게나마, 그러나 내용과 요지를 분명하게 쓰면, 상대도 그리고 교수님도 정확히 캐치하더라구요. 이건 언어 숙달만의 문제를 넘어서는 사안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스타일의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번역기가 재현해주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아직 저는 생각해요. 번역기는 표준화된 표현들을 골라서 쓸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저는 표준화된 어떤확률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은 혹은 그럴듯한 표현을 찾는 게 아니니까요. 이게 커리어, 이 업에 장기적으로 종사할 생각이 있다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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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k9297님 제 생각을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닷 ㅎㅎ
댓글을 달려다가 댓글달려는 내용에 대한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서 몇 번이나 댓글을 달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했었네요..ㅠㅠ 그런데 생각해보니 yhk9297님이 '말장난'을 언급하신 것을 보고 제가 말장난의 번역과 관련하여 '클로드3'과 대화했던 것을 적은 것이니.. 생각해보면 대화는 제 쪽에서 먼저 시도했음에도 오랫동안 머뭇거리고 있었네요 ㅋㅋㅋㅋ... 저도 심리철학 개론 수업에서 존설의 책을 읽은 것이 전부이고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기는 하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말씀 듣고 생각해보니 제가 '이해'라는 말을 엄밀하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일단 저는 인공지능이 외적으로 '이해'가 수반되어야만 할 수 있는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인공지는이 '이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것이었어요.

yhk9297님께서 말씀하신 주어진 룰에 따라 compute하는 것은 '이해'라고 할 수 없다는 지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이전 발표회에서 들은 것인데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확실한 내용인지는 잘 자신이 없습니다..ㅠ 참고를 부탁드려요.)

존 설의 논의를 기반으로 생각했을 때 저는 오늘날의 인공지능이 '계산'을 하는지 '이해'를 하는지 구별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인공지능의 내부에서 '계산'인지 '이해'인지를 구별하기 위한 '학습자료-결과'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인공지능은 학습자료를 통해 결과값을 산출해내기는 하나 학습자료가 '어떻게' 결과값에 반영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인공지능 내부의 '학습자료-결과'의 연관을 파악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계산'을 하는지 '이해'를 하는지 구별하기 위한 근거이기 때문에 반드시(최소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없도록) 파악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어 방 논증에서도 학습과 결과 값 사이의 연관성을 근거로 해당 인공지능 모델이 계산(compute)을 하고 있다고 결론짓는 것 같습니다. 그건 중국어 방이 아무리 인간과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하더라도 내부에서 '학습자료-결과' 연관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인공지능은 내부의 '학습자료-결과'의 연관이 모호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들었던 발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인즉 학습자료를 입력하면 그에 맞는 결과값을 제시해주기는 하나 이 학습자료로부터 '어떻게' 결과값이 도출되는지 밝혀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학습자료-결과' 사이의 불명확성은 '학습 모델'에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방식의 학습 모델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아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어렵네요..) 학습 방식에 대해 찾아보니 1대1 대응 뿐만 아니라 자료에서 직접 패턴을 찾아내는 방식도 있고 어려 '층'과 '노드'가 있고 각 노드에 대한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도 있다고 하네요. 저로서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복잡한 '학습 모델'이 인공지능의 내부를 '블랙박스'로 만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인공지능은 내부의 '블랙박스'같은 성격 때문에 존 설의 논의의 맥락에 따라 '이해'하는지 '계산'하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블랙 박스'와 같은 성격을 고려하여 새롭게 인공지능에 대해 사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과 같이 존 설의 모델을 가지고 인공지능의 '이해' 문제를 다루 수 있다고 하더라도 존 설의 주장을 오늘날의 인공지능의 '학습 모델'의 요소들을 반영한 형태로 수정해야하지 않나 생각되어요.

이제 말장난의 논의로 넘어가서, 이렇게 인공지능 '이해'의 문제를 저는 잠정적으로 '판단 불가'한 문제로 두었습니다. '말장난(의 번역)'에 대해서도 인공지능의 '이해'는 부차적인 문제로 일단 여기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요. 즉 인공지능이 말장낭을 다루는 데 있어 '계산이 아닌 이해'를 수반하는지는 부가적인 것으로 제쳐두고 '말장난'을 올바르게 다루고 있는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습니다. '이해'여부는 제쳐두고서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미래에 말장난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될지에 대한 검토는 지금 인공지능이 실제로 '말장난'을 얼마나 다룰 수 있는지가 첫 번째 작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말장난을 어느 정도까지 다룰 수 있는지를 확인하여 시간이 지나면 이를 보완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를 따져볼 수 있다고 보았어요. 그런 점에서 제가 말장난과 관련하여 생성형 인공지능을 다루어보았을 때 지금도 말장난을 잘 '다룰 수' 있어 보이고 학습량이 늘어날 경우 더 보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장난의 번역은 시간이 지난수록 발전하고 인간 번역자의 수준에 까지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데이터가 아직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말장난을 인공지능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가 원 댓글에서 언급한 것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말장난이었지만 새롭게 대화하여 다른 말장난을 번역하라고 명령해 보았습니다. '영어의 말장난의 사례를 제시하고 언어의 어떠한 특성을 이용한 말장난인지 상세히 설명하라.'고 명령하였을 때 동음이의어, 다의어, 발음 유사성, 철자 유사성에 따른 말장난이 가능하다고 언급하며 각각을 활용한 영어의 말장난 예문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중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말장난으로 "I'm reading a book about anti-gravity. It's impossible to put down." ('put down'이 '책을 내려놓다'와 '흥미를 잃다'라는 두 가지 의미로 쓰임)"라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에 대해 한국어 번역을 명령하였습니다.

1번 말장난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반중력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

하지만 이 말장난은 영어 'put down'이라는 표현이 '책을 내려놓다'와 '흥미를 잃다'라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 언어적 특성을 활용한 것입니다. 한국어에는 이와 정확히 대응되는 표현이 없기 때문에, 직역하면 말장난의 재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 말장난을 한국어로 옮길 때는 언어적 특성을 고려하여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습니다.

"나는 중력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 책의 내용이 너무 무거워서 들 수가 없어."

여기서는 '무거운 내용'과 '책이 무거워서 들기 힘듦'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이용하여 말장난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언어 간 차이를 고려하여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말장난을 번역할 때 중요합니다.

이 예시는 '반중력'을 '중력'으로 바꾸어 번역하여 원문의 의미 자체를 바꾸어버린다는 점에서 좋은 번역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번역 작업에서 있어 언어간의 차이를 고려할 줄 알며 말장난의 번역에 있어서도 언어간의 차이를 고려할 줄 안다는 것이예요. 저는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인공지능의 '말장난 번역'이 학습량을 늘려갈수록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번역 자체의 한계는 인공지능조차도 뛰어넘기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인공지능 또한 번역을 할 때 '각주'를 넣어 언어의 차이에 따른 번역의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표시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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