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신학책 읽다보면 종종 벌어지는 일

지하철에서 막스 터너의 「성령과 권능」을 읽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내 책을 뚫어져라 쳐다보셨다. 시선이 상당히 부담스러워서 책을 덮어야 하나 생각했는데,

할아버지: 학생, 이거 성경 말씀이야?

나: 네…….

할아버지: 아이구! Excuse me (책 앞 표지에 '성령과 권능'이라는 제목을 확인하시더니) 학생, 대학생이야? 신학 전공해?

나: 아니요……, 대학 졸업했고요……, 철학 전공했어요.

할아버지: 그럼 지금 뭐 하는 거야?

나: (속으로 '병원 야간 당직이요…….'라고 말하며) 유학 가고 싶어서 공부해요…….

할아버지: 철학? 철학을 하려면 기독교라든가 다방면으로 다 알아야 해요! 세상에 유혹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이겨내려면 중심을 잘 잡아야 해! 내가 다국적 기업 사장도 해봤고……. (블라블라)

나: (마침 목적지에 도착해서) 제가 여기서 내려야 해서요…….

할아버지: 그래그래, 얼른 가봐. (엄청 큰 목소리로) 학생, 화이팅!!

그렇게 그 칸에 있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가운데, 나는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러고 나서 방금 서현역 알라딘에서 「죽은 신을 위하여」라는 (예수님이 무덤에 누워서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지젝의 불경한 책을 구매해서 집에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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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학문을 공부하는 것,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이전 세대의 어떤 기독교에 대한 장엄한(?)경험이 한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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