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 질문

실제로는 그른것을 옳다고 믿는일이 선천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지, 있다면 예시로는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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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이 상당히 모호합니다.

특히 (i) 선천적 과 (ii) 정당화가 정확히 무얼 가리키시고자 하는지 모르겠네요. (선천적이라 함은 예컨대 세뇌와 같은 것이 없는, natural한 상태를 가리키시는 건가요? 하지만 이런 백지상태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죠. 정당화도 어느정도 요건을 원하시는건가요? 논리학 정도의 견고성? 아니면 어느정도의 타당성?)

(2)

아주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런 일을 자주 일어났습니다. 과학철학에서 매번 나오는 이야기지만, 천동설이라던가 플라지스톤 이론이라던가...여러 (지금은 폐기된) 과학 이론들은 당시 꽤 지지를 받았고 상당히 믿을만하다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지금도 과학철학자들은 이런 예시를 고려해, 지금의 과학이 반증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아주 강한 주장은 대체로 하지 않는 편입니다.
미래에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사실들로 인해 언제든 뒤집힐 수 있으니깐요.)

이것 말고도 (현실에서 일어날) 확률이 아주 낮지만, 인식론에서 자주 활용되는 게티어 사례 (혹은 이에 대한 확장이) 예시가 될 수 있겠네요.

아니면 비당사자가 검증하기 어려운 증언 같은 지식/사실도 예시가 될 수도 있겠죠.

아니면 (보다 복잡한 형이상학/심리철학적 문제가 내포되어있긴 하지만) 감각 경험의 이상 문제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죠.
제가 안경을 쓰는데, 안경을 벗었을 때의 시각 경험은 (입장에 따라선) 참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겠죠.

선천적 정당화를 '필연적으로 옳다는 것을 파악한다' 고 정의 할 때는 어떻게 되나요?
아직 현대 인식론 입문을 읽고 있는 초보라 질문이 모호했던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ㅜㅜ

(1)

여전히 질문자님이 무얼 의도한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제 생각에는 질문에 두 가지 측면이 섞여있는듯합니다.

(2)

이 예시를 상세히 풀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외계인은 있다." 이 사실에 대해, 우리는 참(truth)/거짓을 정할 수 있을겁니다. 이는 형이상학적 차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이 명제에 대해 참/거짓을 판단내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명제의 참/거짓을 판단할 적절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식론적 차원의 문제입니다.

(2-1)

이 질문을 인식론적 차원으로 생각해보면

"형이상학적으로 [참이 아닌] 거짓인 것을, 필연성이 성립할 정도의 정당화의 강도로, 참이라 믿는 것이 가능한가?"

일겁니다. 흠. 이런 사례가 가능하긴 하지만, 대부분 이걸 지식이라 생각하지 않을겁니다. 인지자가 불합리한 것을 믿는다거나, 세뇌를 당했다거나...뭐 그런 인지적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겠죠.

인지적 능력에 문제가 없는 통상적 인지자에게 특정 인식론적 대상/수단에 의해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도 있을겁니다. 이런 경우는 위에 언급한 감각 지각-게티어 문제가 대표적이죠.
(다만 이게 필연성이라 말할 정도의 강도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감각 지각이 논리학만큼의 필연성을 가진다 말하긴 어려우니깐요.)

(2-2)

한편 이 질문을 형이상학적으로/논리철학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어보입니다.

"형이상학적으로 [참이 아닌] 거짓인 것을, 필연성이 성립할 정도의 정당화의 강도로, 참이라 말할 수 있는가?"

초일관논리 등 몇몇 케이스에서는 참이면서 거짓인 명제가 성립 가능하니 "예"라고도 말할 수 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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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이렇게 이해하면 어떨까요?

다음 세 명제가 일관적인가(동시에 참일 수 있는가)?
(1) S는 p를 믿는다.
(2) p에 대한 S의 믿음은 선험적으로 정당화되어있다(혹은 선험적 근거에 의해 정당화된다).
(3) p는 거짓이다.

질문이 이렇다면, 제 생각에는 일관되는 것 같습니다.
'선험적'은 크립키 이후 현대적인 의미로는 보통 지식 혹은 정당화의 속성으로 여겨지며
'p를 선험적으로 안다' 혹은 '믿음 p는 선험적으로 정당화된다'라는 말은 대략적으로

p를 경험적 근거에 의존하지 않고 아는 것 혹은 p에 대한 믿음이 경험적 근거에 의존하지 않고 정당화되는 것

을 말합니다.

그리고 인식적 정당화는 대략적으로 말해 믿음의 올바른 상태라고 할까요, 뭐 여튼 합리성을 확보한 상태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한) 정당화가 개념적으로 참을 함축한다고 보는 견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게티어 문제가 믿음의 정당화가 참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제기된다는 걸 보면요)

그렇다면 얼마든지 선험적으로 정당화되더라도 거짓인 경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예를 들어, 수학적 추론을 통해 어떤 수학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은 경우 그것이 답이라는 믿음은 선험적으로 정당화된 믿음이지만 사실은 틀린 것일 수도 있지요. 혹은 적어도 그 믿음이 다른 경험적 증거(예컨대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든가) 같은 것에 의해 약화될 수 있습니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항목 중 "A Priori Justification and Knowledge"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여기서 목차 3번에 선험적 정당화의 오류가능성과 파기가능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참조하세요!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pri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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