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철학 책을 읽는 게 삶의 큰 재미가 되어버렸습니다.
문제는 번역본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데요.
번역의 과정 자체에 번역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보니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직접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어떻게 공부를 시작해야할지 조금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움을 청하고 싶습니다.
일단 단어와, 문법을 죽어라 공부하는 게 맞는건지
아니면 영어로 된 컨텐츠에 익숙해지는 게 맞는건지 궁금합니다.
사실 영어로 된 컨텐츠에 익숙해진다고 해도, 일상적 영어에 익숙해지는 것과
철학적 내용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제 목적이 핀트가 어긋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도, 한국어로 된 철학책을 펴면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것처럼요.
언어라는 게 삶과 딱 붙어있는 영역이다 보니,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게 참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도움을 청해봅니다!
저는 결코 영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니고, 오히려 영어 울렁증이 매우매우 강한 편이지만, 그래도 영어로 철학 텍스트를 읽는 데는 큰 문제를 느끼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a) 논문 형식의 글들이 일상적인 글들이나 문학적인 글들보다 표현이 정형화되어 있어서 훨씬 읽기 쉬운 데다, (b) 글을 전공 지식과 연결할 수 있어서 내용이 훨씬 친숙하게 다가오거든요.
그래서 수능 영어 지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철학 텍스트를 자유롭게 읽는 수준의 영어는 2달 정도의 시간 투자로도 얼마든지 기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 등급을 맞을 수 있을 정도'라고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등급 자체보다는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지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문법 지식이라면 철학 텍스트를 곧바로 집어드셔도 충분할 거예요. (굳이 제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10년 전 모의고사들 기준으로 1등급이기는 했습니다만, 영어 등급 평가 기준 자체가 현재에는 많이 바뀐 것으로 압니다.)
@YOUN 님도 말씀하셨지만, 수능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뀐 이후의 수준은 제가 잘 몰라서… 역시나 말씀하신 것처럼, 수능 영어 지문들을 전부 이해는 할 정도면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물론 많은 대학생들이 수능 지문을 읽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상태로 대학에 들어와서 (서울 주요 대학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느낍니다) 전공서와 부딪혀보며 읽는 실력을 길러요. 배가 배꼽보다 크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만 공부하면 되지 않을지...
정성스런 답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실 남겨주신 글도 봤었는데 그 분과 제 시작점이 다른 것 같아 고민이었거든요! 일단 영어라는 체계에 몸을 담그고 스스로 그 매커니즘에 젖게 만드는 게 첫번째 같네요. 10년전 기준이라도 1등급이셨다니.. 전 노력을 훨씬 더 많이 해야할 것 같네요! ㅎㅎ 남겨주신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철학 텍스트에 대한 독해도 결국 영어 실력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기 보다도 언어 자체를 접근하고 추론하는 방식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결국 문맥을 통해 큰 그림을 파악하고, 기술된 언어들 간의 관계를 추론해 디테일하게 세워가는 능력이 더 요구되는 건가? 이런 생각이요. 원어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언어 자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고 능력이 결국은 더 필요한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ㅎㅎ 정성스런 답변에 힘입어 일단 뭐라도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철학 논문/책 같은 경우는 철학 용어를 제외한 단어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어를 주구장창 외우는 것보단 일단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때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문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쓰이는 문법은 한정돼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그때그때 모르는 문법을 찾아보는 것이 효율적인 것 같네요.
전 철학 논문을 읽을 때 가장 도움 받았던 스킬은 단락의 topic sentence를 찾고, 그 topic sentence 의 어순을 보면서 그 단락의 정보를 뽑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관련 내용은 Williams Chapter 3: Cohesion 1 에 간략하게 적어놨습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1. topic sentence 찾기 2. 어순으로부터 뭘 말하고자 하는지 찾기 3. 2에서 찾은 내용을 기반으로 단락을 읽기가 되겠네요. 이 스킬을 익혔을 때 전 저자의 의도를 훨씬 파악하기 쉬웠습니다.
pdf는 여기 있습니다.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현 시장에 나와있는 라이팅 책 중에 가장 권위있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 작가가 시카고 대학교 라이팅 교수셨는데, 이 책을 교과서로 쓰신 수업이 시카고 대학교 간판 수업이라고도 여겨졌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하버드의 마이클 샌델, 예일의 쉘리 케이건 같은 위치 아니었을까 싶네요.
기본적으로 앞선 댓글들에 다 공감하면서 추가로 도움이 될만한 부분이 생각나서 끄적여 봅니다.
영어는 기본적으로 input(읽기, 듣기)과 output(쓰기, 말하기)이 있어서,
양방향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데요, 듣기나 말하기는 제가 잘 하지도 않는 부분이라 건너 띄겠습니다. ^^
읽기나 듣기에 관해서 짧게 말씀 드리자면,
먼저 읽기는, 위에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관련된 텍스트들을 많이 읽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긴 텍스트를 다 읽는 것도 좋지만, 관심 있는 철학 관련된 주제로 wikipedia 영어 자료들을 찾아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쓰기는, chatGPT를 이용해서 대화 형식으로 철학적 주제에 대해 논의해 보는 방식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wikipedia나 chatGPT의 내용에 대해서는 물론 100%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다 아시겠지만,
적어도 영어 연습에 있어서는 꽤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