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 분의 의견 교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드릴까합니다.
언어(language)와 개념(concept)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처음 @cottoncandy 님이 수학을 '비언어적'인 사유의 예시로 가져온 것을 보았을 때, 이는 '자연 언어'가 아니라는 의미로 가져오신 듯합니다. 자연 언어, 즉 인간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언어와 수학을 확실히 구분되죠.
다만 @TheNewHegel 님이 지적하시듯, 수학은 '자연 언어'는 아니지만 일종의 '언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명제 - 의미 - 진리값 - 규칙 같은 요구 사항은 제가 볼 때 조금 '언어'를 엄격하게 보는 듯하지만, 여하튼 수학 역시 작은 단위들을 가지고, 그 단위들을 합해서 어떠한 의미가 만들어지고,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언어라 볼 수 있을 듯합니다.
(2)
이러면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일단 이 사례는 언어 장애의 종류가 다양하고 논의가 깔끔해지지 않으니, 동물의 예시를 들어볼까합니다.
일단 인간과 같은 형태의 자연 언어를 동물이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은 명확한 듯합니다. (적어도 인간이 아직 번역하진 못하고 있죠.)
하지만 이 동물들이 '개념'(concept)을 가지지 않는다 하긴 좀 뭐한 듯합니다. 개념, 즉 생각/사고를 구성하는 단위가 없다고 하기에, 이 동물들은 나름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에 맞는 판단을 내리고 있긴 하거든요.
그렇다하면, 우리는 동물을 통해 비-언어적 개념의 가능성을 찾은 겁니다.
(물론 비 언어적 개념에 대해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고, 정확히 이게 무엇이며 언어적 개념과 어느정도 일치/환원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들이 있습니다.)
SEP에는 비개념적 심적 내용이라는 항목으로 (제가 설명한 비-언어적 개념이) 올라와있습니다. ( Nonconceptual Mental Content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이 아티클을 참고하시면 될 듯합니다.
(다만 이 아티클 역시 언어/개념의 차이에 대해서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 있긴합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논쟁이 가끔 헛돌고 허수아비 공격에 가까워지는 지점이 있는 듯합니다.)
(3)
내용을 추가하는 차원에서, 예전에 적은 인간의 언어 장애에 대한 간략한 개괄을 부록으로 남깁니다.
(2) 언어 장애란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제 임의대로 구분하면 대략 세 가지 입니다. (a) 함묵증처럼 어떠한 심리적 원인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경우, (b) 청각 장애나 조음 장애처럼 언어를 담당하는 뇌 기능에는 문제가 없으나, 실제 언어를 구사하는데는 문제가 있는 경우 (상술하자면, 청각 장애 자체는 언어를 구사하는데 아무런 문제를 주지 않습니다. 수어도 단순한 제스처가 아닌 언어니깐요. 다만 발성 언어를 구사하는데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는 발성 언어 습득에 필요한 정보가 청각 장애로 인해 당사자에게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c) 발달 장애나 조현병(정신분열증) 등으로 언어를 담당하는 뇌 기능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경우.
이 중에서 (c)의 케이스와 (b)의 케이스는 이론적으로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경우라 여겨집니다. 과격한 발언일 수 있지만, (c)의 케이스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그 언어의 규칙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거나 화자의 복잡한 의도를 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온전한 '언어'로 칭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사피어-워프 가설의 대상이 될 수 없겠죠.)
우리는 (언어 중추에 문제가 없는 이상) 어떠한 형태로든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언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하죠. 대표적으로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내는 크레올언어라던가, 발성 언어가 불가능한 사람이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수화 등이 존재하죠.
가장 드라마틱한 예시라면 (b)에 해당하는 "니카라과 수어"가 있습니다. 니카라과 사회주의 정부 주도로 1970년대에 생긴 청각장애 학교에서, 기존에는 아무런 '수어' 같은 체계적인 언어가 없었던 아이들이 학교에 모여 서로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낸 언어이지요.(3) 한편 (c) 케이스에 해당하는 분들의 "언어"는 [발달장애의 케이스는] 제스처에 가깝거나 (제스처에 가까워도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화행과 타인의 의도를 이해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의 경우] 저희가 멋대로 해석하는 내용일 뿐이지요. (시를 해석하듯 말입니다.) 이를 언어라 규정하기에는 어려워보일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