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이 아이디어에 대한 각론만을 달고자 합니다.
아마 이 연구를 성립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2) 언어 장애란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제 임의대로 구분하면 대략 세 가지 입니다. (a) 함묵증처럼 어떠한 심리적 원인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경우, (b) 청각 장애나 조음 장애처럼 언어를 담당하는 뇌 기능에는 문제가 없으나, 실제 언어를 구사하는데는 문제가 있는 경우 (상술하자면, 청각 장애 자체는 언어를 구사하는데 아무런 문제를 주지 않습니다. 수어도 단순한 제스처가 아닌 언어니깐요. 다만 발성 언어를 구사하는데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는 발성 언어 습득에 필요한 정보가 청각 장애로 인해 당사자에게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c) 발달 장애나 조현병(정신분열증) 등으로 언어를 담당하는 뇌 기능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경우.
이 중에서 (c)의 케이스와 (b)의 케이스는 이론적으로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경우라 여겨집니다. 과격한 발언일 수 있지만, (c)의 케이스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그 언어의 규칙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거나 화자의 복잡한 의도를 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온전한 '언어'로 칭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사피어-워프 가설의 대상이 될 수 없겠죠.)
우리는 (언어 중추에 문제가 없는 이상) 어떠한 형태로든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언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하죠. 대표적으로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내는 크레올언어라던가, 발성 언어가 불가능한 사람이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수화 등이 존재하죠.
가장 드라마틱한 예시라면 (b)에 해당하는 "니카라과 수어"가 있습니다. 니카라과 사회주의 정부 주도로 1970년대에 생긴 청각장애 학교에서, 기존에는 아무런 '수어' 같은 체계적인 언어가 없었던 아이들이 학교에 모여 서로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낸 언어이지요.
(3) 한편 (c) 케이스에 해당하는 분들의 "언어"는 [발달장애의 케이스는] 제스처에 가깝거나 (제스처에 가까워도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화행과 타인의 의도를 이해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의 경우] 저희가 멋대로 해석하는 내용일 뿐이지요. (시를 해석하듯 말입니다.) 이를 언어라 규정하기에는 어려워보일듯 합니다.
(4) 사피어-워프 가설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i) 하나는 강한 해석으로, 언어가 다를 경우, 화자가 이해하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ii) 다른 하나는 약한 해석으로, 언어가 다를 경우, 화자가 "먼저 인지하는 정보"가 다르다.
대체로 학자들은 (ii) 약화된 해석을 옹호하는 편입니다.
예컨대, 존비어가 문법 구조 상에 존재하는 한국어 화자의 경우, 문법 구조 상에 존비어가 없는 영어 화자에 비해서 상대방과 나의 사회적 서열 차이에 대한 정보를 쉽게 인지하는 편입니다. (다만 영어 화자가 사회적 서열을 '모르거나' '한국어를 배우기 전까지 알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직관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요. 물론 한국어 화자 사이에도 이러한 인지는 차이가 있으며, 점점 한국어 존비어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화자는 과거 화자보다 서열에 대한 인지 능력이 약하겠지요.)
한편 태국어에는 시제 표현이 문법 구조상에 필수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시제 표현을 직관적으로 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예컨대, 태국어 화자는 영어 표현에서 시제 표현을 누락하거나 틀리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태국어 화자가 과거/현재/미래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사건이 복잡해지고 사건들의 시제가 복잡해질수록, 시제 표현이 없는 태국어 화자는 시제 구분에 어려움을 느끼고, 이에 반해 시제 표현이 문법상 강제되고 복잡한 언어의 화자는 보다 수월하게 사건의 시제를 구분한다는 의미입니다.)
보다 깊은 정보는 니컬러스 에번스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4부 8장을 추천드립니다. (교양서로 세계의 여러 언어에 대한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