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궁금했던 것들을 올려봅니다

(A)
저는 말씀해주신 1 -> 2 -> 3의 전개 과정이 반드시 옳다고는 생각 안해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거죠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어도 판단의 기초인 만큼 큰 문제가 되는게 아닌가 했죠

(B)
B에 대해서는 이런 예를 들고 싶은데요
지구는 평평하지 않다라는 사실 판단이 분명 있지만, 평평하다고 주장 하는 사람들도 있죠
이것은 그 사람들의 무지에서 비롯됬다고 볼 수 있고 정상적이 고등교육을 받는다면 평평하지 않다라는걸 알아내겠죠

가장 올바른 행위도 이런 모양인 것같습니다
가장 올바른 행위가 올바르다는건 객관적으로 참인 사실판단인데 사람들의 무지에(모든 사람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완전히 공감한다면 모든 사람의 의견은 하나로 좁혀질 것입니다) 의해서 서로 다르게 보이는게 아닌가싶습니다

(1) 수면 내시경 후라 두서가없네요.

사실 이 논증은 논증이라허기도 그래요. 아무리봐도 '정당한 추론인지 모르겠습니다. 비약도 심하고 요지가 뭐인지도 모르겠고....

그와 별개로 (i) 판단의 기초라 무오류가 중요하다는거 역시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인식론적으로도 어떤 합리적 추론을 위해 "토대"가 중요하다는 토대주의는 그저 한가지 입장일뿐입니다.

(2)

이는 헝이상학적 문제와 인식론적 문제를 뒤섞었습니다. 동전 던지기를 생각합시다. 던져서 아무도 안 보아도, 앞인지뒤인지 참은 형이상학적으로 정해저있습니다. 다만 거기에 접근할 수단이없어 모를뿐이죠.

가치가 형이상학적으로 참이라는 주장은 꽤 있어왔습니다. 다만 그 참에 접근하는 인식론적 수단으료 공감을 제시한다는게 좀 오묘하네요. 대체로 헝이상학적 가치를 제시하거든요.
감정이란 개개인이 다르게 느끼는 경우가 많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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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올바른 행위가 무엇인지 알려면 상대방의 마음(공감)말고도 다른 지식들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결국에 제가 말하고 싶은건 "가장 올바른 행위를 알기위한 필요한 정보들만큼은 모두 모은 상태".
크게 보자면 전지한 상태는 단 한가지라는 거죠
그 상태에 도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같은 생각을 할겁니다
어째서 사람들이 무지하지 않고 전지 해야하냐 묻는다면 그거까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현명할수록,알고 있는게 많을수록 더 올바른 선택을 할거라는 제 직관은 그리 신뢰도가 낮은게 아닐겁니다

감정이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공감해 마치 둘이서 하나인 상태가 된다면요?

어떤 점이 거슬리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위의 글들이 오류를 잡아주시고 엄밀한 정의를 해주셔서 그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사실 저도 비전공자의 입장으로써의 사견을 남깁니다. 전체적인 글을 봤을 때는 기독교적 색채가 묻어나는 느낌입니다.

  1. 인류라는 매우 큰 관점에서 그 종점이 어디인지 정해진 것이 없다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인 생각으론 영원불멸, 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인류의 "소망"이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저는 "모른다"가 맞는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2. 너무 많은 관점이 혼재해서 저도 딱 잘라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인간이 행복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한다면 저는 과학적 관점에서 도파민 회로 때문이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3.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맥락마다 항상 달라서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만 위의 답변과 같이 진리라는 단어 자체는 참입니다.

4-1. 인과관계를 논하는 문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5만원을 그대로 쓸 수도 있고 알바로 번 돈 5만원을 그대로 쓸 수도 있고 혹은 2만5천원씩 쓸 수도 있습니다. 수학적 관점에서는 그냥 비율로 답할 수 있다가 되겠네요.

4-2. 논리적 비약이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귀결인 것 같네요.

  1. 첫 번째 문장이 이미 타의에 의해 생겨난다라고 결론짓고 가버려서 자의는 없다라는 문장과 동치가 됩니다. 다만 자의의 존재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학계에서 논의중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개인적 관점에선 자의가 없다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은 부정적인 극단주의에 빠지기 쉬워서 좋진 않은 것 같습니다.

4-1.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비율로 여기냐에 따라 알바로 돈을 번 덕분에 샀다고 생각할수도있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은 덕분에 살수있었다고도 생각할수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모은 돈으로 살수있었는지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거죠

인류의 마지막 종착점이 어떤건지 모르더라도 그 종착점을 찾을 수단인 지성을 목표로 삼으면 어떻냐는 말이었습니다

3번은 제가 진리라는 단어를 막써서...죄송요

4-1은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는 순간부터 해소될 수 있는 고민으로 보입니다.

학적으로 방향잡히지 않은 물음은 잘못된 언어사용을 포함하곤 합니다. 예를들어 4-1의 경우에는 "어떤 돈으로 산 것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불명료합니다. 애초에 "어떤 돈으로 사다"가 충분히 명확한 의미로 고정되면 이런 엣지케이스에 대한 물음이 발생하지 않겠죠.

물론, 기분 내키는대로 해당 물음을 한 방향으로 독해하여 하나의 답변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그런 답변을 제시하는 순간 "그러면 ~~한 거 아닌가요?"와 같은 질문이 계속해서 제기될 겁니다. 그리고 이 질문들에 답하는 논의는 유의미하기 보다는 소모적일 것 같습니다. 모든 질문은 허용될 수 있지만 모든 질문이 정당한 혹은 실용적인 철학적 물음인 것은 아닙니다.

철학은 개인의 가치관이나 기분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며, 개념/추상화/논증 등을 도구삼아 학적 대상에 대해 통합적이고 명확한 인식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입니다. 던져주신 질문들은 엄밀하게는 철학적 주제가 될 수 있는 질문이라기보다는 개념의 불명료한 사용에서 오는 애매성에 기인한 혼란스러움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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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을 계속 받을 경우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가 궁금한거였습니다

저 또한 아직 학부생 수준이지만, 위에 New hegel님을 비롯한 분들이 답변해주신 것만을 잘 읽고 이해해보려고 시도하신다면 이하 궁금하신 점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해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진리>가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철학사적 맥락에서 사용된 바로 그 맥락 위에서 토론해야 모두에게 유의미한 토론이 되겠지요. 저도 여전히 저지르고 있는 실수이고, 철학을 막 시작했을 때 위의 답변들과 같은 이야기를 더빨리 들었다면 더 괜찮은 공부를 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에 댓글을 남깁니다. 처음에는 어떤 의견에 대해서든 반증 반례 가능한 반박을 찾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지금 남겨주신 다른 분들의 댓글에 조금 더 머물러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 그리고 반복해서 보이는 부분인데, A가 무엇이냐 물었을 때 ‘만약’,‘어쩌면’을 비롯하여, 현상에서의 예시나 가정을 드는 것을 반복하면 토론과 생각이 나아가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건 무한하게 생성할 수 있는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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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정교하게 써보겠습니다

1.인류의 목적(종착점)은 있거나,모르거나,없거나
셋중 하나일 것이다

1-1.있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것대로 하면 될 것이다

1-2.종착점을 모르겠다면 찾으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찾을 것인가

1-2-1.무지<->전지 우매<->현명 서로 상반된 개념이다 종착점에 대해 무지하다면 알기 위해서는 우매하지않고 현명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까지는 몰라도 현명해짐으로써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현명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한다

1-3.목적이 없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뭐든지" 해도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왜냐하면

1-3-1.이래서/저래서 하면 안된다,이래서/저래서 해야한다라는 것은 어떤 목적,바램을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1-3.종착점이 설령 없더라도 지성을 쫒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없다고 잘못알고 있을 경우를 대비하는 보험이 될 것이다

3."가장 올바른 행위는 올바르다"
는 객관적인 참을 의미하는 사실판단일까
혹은 사람의 주관이 개입된 가치판단일까

(무교지만가장 올바른 행위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특정하기 위해)
가장 올바른 행위가 무엇인지 알고있는 신이 이세상에 정말 있다고 해본다면
윗 문장은 이렇게도 바꿔볼 수 있을것이다
"신의 말씀은 올바르다"
("가장 올바른 행위"가 "신의 말씀"으로 특정되었다)
과연 저렇게 짜여진 세상에서 "신의 말씀은 올바르다는" 올바름이라는 주관이 개입된 가치판단일까? 아니면 객관적으로 참인 사실판단일까?

나의 주장은 저것이 사실판단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80억명의 인구가 서로를 완전히 공감하여 하나가 된다면 단 한가지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을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올바름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은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무지에서(공감의 부재) 비롯됬다고 볼 수 있고,이말은 모두가 하나가 된다면 올바름을 객관적으로 참/거짓을 가릴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분명 객관적으로 가릴 수 있지만, 주관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마치 지구는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은 것이다(무지로 인해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못함=무지(타인에 대한 공감의 부재 등등)로 인해 객관적으로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함)

2.흉악범은 자신이 잘못된 일을 했다는 것을 모르는게 허다하고 뻔뻔하고, 범죄에 일반인보다 관대하다
그렇기에 교도서에 들어갔을때 흉악범들은 일반인 만큼 서로를 혐오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의심이 드는 부분은... 이 지구 그자체가 교도소라고는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어째서 이름 모를 타인보다 자신을 더 생각하는게 당연한걸까?
공감능력이 정말 높다면 이름모를 타인조차도 자신보다 더 아끼고 존중해야하지는 않을까?
사실은 모두가 벌을 받아야 하는 마땅한 악인일 수도 있는게 아닐까

4-2.
빅뱅이후부터 지금까지,일어난 모든 사건들중 현재의 사건과 관련되있는 단 한 사건이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빅뱅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지구가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생명체가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99%이상을 자연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 그 주체를 탓하는 것일까

2번에 관한 답변에 추가할 내용
선과 악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공감능력이 그 잣대라고도 볼수있겠죠

선과 악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더라도(사람의 직관으로는)대체로 두가지로 나눠지긴 할 것입니다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악마와 천사는 상상해볼 수 있듯이요

한마디로 우리가 보는 악마가 곧 천사가 보는 우리가 아닐까싶었습니다

3번에 관해서도 의문을 가져주셨는데,

의문을 가지신 이유는 제가 올바른 행위를 특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특정만 한다면 말씀하시는 경험적 사실을 기술하는 판단이 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의 말씀이라는것을 끄집어 낸겁니다
가장 올바른 행위가 "선행"으로 정해져있는 세상에서 그 세상 사람들은 분명 선행이 올바르다는 것이 경험적 사실을 기술하는 사실판단으로 여겨질거라는거죠
지금 이 세상에서는 단지 올바름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올바름이 가치판단의 영역에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때로는 혼자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비슷한 주제에 관해 남들이 무엇이라 말했는지를 참조할 때 비로소 생각에 진전이 이루어집니다. 위의 수많은 답변들이 지적했듯이 본 질문의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그런 이유에서 더 이상 이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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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건가요... 다 읽고 어느정도 보태고 수정했는데..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가다듬는 시도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는 족족 다른 분들이 비판적 코멘트를 남기니 당황스럽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도 계속 다른 글들을 보라고만 하니 답답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장을 남기실 때마다 비판적 코멘트가, 그것도 "질문과 주장의 모호함"에 대해 달리는 상황은, 질문자 님이 소위 말해서 "철학적 감수성"이 부족하신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 스스로 보기에는 명확하고 정교해보이는 표현과 주장들이 남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모호하고 혼동된 것들이라면, 질문자님이 가지고 계신 철학적 사고의 틀이 정교하게 가다듬어지지 못한 상태라서, 이러한 사고의 틀에서 그 어떤 주장이 새롭게 나와도 똑같이 모호하고 혼동된 것들만 나오게 되는 것이죠. 믹서기의 날이 무뎌지면, 아무리 새로운 재료를 넣어봤자 잘 안갈아지는 것처럼요. (맞나? ㅡ.ㅡ)

그러면 철학적 감수성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일반적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예술작품을 직접 만들기 보다는, 거장들의 좋은 예술작품들을 많이 보라고 합니다. 언어적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도, 좋은 글들과 좋은 연설 등등을 많이 접해보라고 하죠. 철학적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 역시, 다른 철학자들의 좋은 글들을 많이 봐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다른 분들이, 철학자들이 쓴 해당 주제의 책들을 보라고 권하시는 것입니다.

즉 질문자님께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주장과 논변을 읽어나가면서 그 세밀한 철학적 감수성을 느껴보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비교해보면서 나의 사고틀을 가다듬는 과정, 소위 "다른 사람의 주장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거 그냥 철학 좀 안다는 놈들이 지들끼리 카르텔 만들려고 짝짝쿵 하는 거 아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어 화자로서, 한국어를 배우는 어떤 외국인의 한국어 작문을 첨삭해준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외국인은 한글 이라는 기초 글자체계만을 알 뿐, 한국어 문법을 전혀 모릅니다. 이 상태에서 이 외국인이 한국어 작문이랍시고 써온 글을 우리가 첨삭해주는 것이 가능할까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한국어 문법을 배우고 오세요".

마찬가지로 철학에서도 "문법"과 같은 기능을 하는 어느 정도의 규칙이 있습니다. 최소한 철학적/논리적 증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특정한 개념(행복, 자의 등)이 철학연구에서 통용되는 의미 등을 알아야겠죠. 단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을 뿐인데 이러한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니냐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모든 "학문"은 학문적 담론과 엄밀성을 재생산하기 위해서 이것들을 initiation process로서 정당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학 수준의 학습을 하기 위해서 "수학능력시험"이 요구되듯이, 철학적 담론을 생산하기 위해서도 그에 걸맞는 노력들이 요구됩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물리적 사건(유리병이 떨어져서 깨짐)을 내가 머릿 속에서 고찰한다고 해서 물리학적 연구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철학적 개념들에 대해 생각한다고 해서 곧바로 철학적 주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에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초보자일수록 소위 "첨삭"이나 "비평", "코멘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제한됩니다. 오히려 기초적인 부분이 탄탄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코멘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아집니다. 아까 외국인의 사례를 생각해보세요. 첨삭자의 입장에서, 한국어 문법을 30분 배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보다 ( 이 경우 "포괄적"인 조언만이 가능하겠지요; "문법 책 ~ 떼고 오세요"), 한국어를 2년 배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훨씬 "구체적"이고 "실질적"이게 됩니다 (ex "~~에는 수동태를 쓰지 않습니다").

요약: 자신의 생각으로 소위 "이론"을 만드려는 데에 조급해하지 마시고, 다른 철학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의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한 번 탐독하고 점검하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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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뜻하는 바는 분명있는 것같은데...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점이 많이 아쉽네요...

아래는 그냥 저 스스로 더 정리해보는 겁니다

1.인류의 목적(종착점)은 있거나,없거나
//있다고 생각하거나,모르겠거나,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추려본다면 총 (추론할 수 있는 가짓수)3×2(존재여부)=6가지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1-1.있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것대로 하면 될 것이다

1-2.종착점을 모르겠다면 찾으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찾을 것인가

1-2-1.무지<->전지 우매<->현명 서로 상반된 개념이다 우매는 무지를 지지하고 현명은 전지를 지지한다 종착점에 대해 무지하지않고 전지하기위해서는 우매하지않고 현명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까지는 몰라도 현명해짐으로써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현명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한다

1-3.목적이 없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뭐든지" 해도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왜냐하면

1-3-1.이래서/저래서 하면 안된다,이래서/저래서 해야한다라는 것은 어떤 목적,바램을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1-3-2.종착점이 설령 없더라도 지성을 쫒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없다고 잘못알고 있을 경우를 대비하는 보험이 될 것이다

결론:인류의 목적(종착점)이 무엇인지 모른다거나,없다고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바래야하는 것은 현명해지는 것,곧 지성을 바래야하고 목적으로 삼아야한다

3."가장 올바른 행위는 올바르다"
는 객관적인 참을 의미하는 사실판단일까
혹은 사람의 주관이 개입된 가치판단일까
내가 알고있는 가치판단,사실판단의 의미
(일단은 인터넷에서 끌고옴)
사실판단=관찰이나 과학적 탐구와 같이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다
가치판단=좋고 나쁨,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고귀함과 저속함 등 가치에 근거한 판단

내가 이 고민을 시작할때 첫번째에 든 의문은 올바름에 한해서 올바름에 관한 가치판단이면서 사실판단일 수는 없을까? 였다
요켠대 객관적으로 참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인 올바름"이 혹시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올바른 행위"라고 하나로 특정짓지 않고 추상적이게 미지수로 상정한것이었다
그야 뭐가 올바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올바른 행위라고 가정이라도 하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고 여겨질줄 알았다
하지만 동어반복이라는 말을 들었고,헷갈리기 시작했다
이쯤 든 생각은 실제로는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못하더라도 특정된 하나의 가상세계를 상상해보면 풀릴 수 있는 의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래처럼 시도해봤다

(무교지만 가장 올바른 행위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특정하기 위해)
가장 올바른 행위가 무엇인지 알고있는 신이 이 세상에 정말 있다고 해본다면
윗 문장은 이렇게도 바꿔볼 수 있을것이다
"신의 말씀은 올바르다"
("가장 올바른 행위"가 "신의 말씀"으로 특정되었다)
과연 저렇게 짜여진 세상에서 "신의 말씀은 올바르다"는 올바름이라는 주관이 개입된 가치판단일까? 아니면 객관적으로 참인 사실판단일까?

나의 주장은 저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인 올바름"이라는 것이다

신이 있는 세상에서 신의 판단은 절대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얘기해보자면
80억명의 인구가 서로를 완전히 공감하여 하나가 된다면 단 한가지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을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올바름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은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무지에서(공감의 부재) 비롯됬다고 볼 수 있고,이말은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과 동시에 올바름을 판단하기 위한 정보들을 다 알고있을때 올바름은 사실로써 참/거짓을 가릴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분명 객관적으로 가릴 수 있지만, 주관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마치 지구는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은 것이다(무지로 인해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못함=무지(타인에 대한 공감의 부재 등등)로 인해 객관적으로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함)

여기서 더 해본 것은"있는 그대로의 사실인 올바름"이 정말로 있다면 ("올바른 행위"라는 말에 저는 이뤄져야한다라는 뜻도 따라 붙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것이 이뤄져야한다까지도 이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저것이 이뤄지는 것을 바래야한다까지도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인 올바름"이 있다면 올바름의 의미상 자동적으로 그것은 이뤄져야하며 이뤄지길 모두가 바래야한다는 의미인줄 알았다는거죠

2.흉악범은 자신이 잘못된 일을 했다는 것을 모르는게 허다하고 뻔뻔하고, 범죄에 일반인보다 관대하다
그렇기에 교도소에 들어갔을때 흉악범들은 일반인들 만큼 자신과 서로를 혐오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의심이 드는 부분은... 이 지구 그자체가 교도소라고는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어째서 이름 모를 타인보다 자신을 더 생각하는게 당연한걸까?
공감능력이 정말 높다면 이름모를 타인조차도 자신보다 더 아끼고 존중해야하지는 않을까?
왜 착취당하는 가축들을 보고도 멀쩡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왜 타인의 고통에 한없이 혹은 그 이상으로 공감하고
슬퍼하지 못하는 것인가?
사실은 모두가 벌을 받아야 하는 마땅한 악인일 수도 있는게 아닐까?

또한 근거를 들기 위해 처음에 말한 것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굉장히 선한 소년 입장에서는 인류 모두가 악인으로 보이지 않을까라는 의문으로 출발하여,
(끝없이 선한 소년을 생각하다보면 분명 그런 지점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사람들 모두 악인이기에 벌을 받아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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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굉장히 심오한 생각을 가지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Whynot님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떤 것에 반대하는가?
    Whynot 님이 반대하는 주장이 뭔지 명확하게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저로써는 어떤 것에 반대를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2.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어떻게 뒷받침될 수 있는가?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주장은 반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Whynot님의 주장은 어느 정도 지지가 되는 주장에 반박을 해야합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떤 논리를 써가며 지지할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철학 교육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반대하는 주장을 말이 되게 reconstruct하고, 그 주장에 반박을 하는 연습이죠. 그 과정도 거치면 더 힘있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3. 비슷한 질문을 던진 철학자들이 있었나?
    여태 나온 논문들/책들을 찾아보며 자신과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는지 보고, 자신의 주장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게 되면, Whynot님의 생각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읽는 사람들도 "아! 이것에 대해 얘기하는구나! 난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어떤 말을 하는지 볼까?" 와 같은 태도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절차를 거치시면 조금 더 재밌는 토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S.

이 부분은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악인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좀 더 명료하게 하면 재밌는 얘깃거리가 나올 것 같네요. 예를 들어, 악인이란 악한 행동으로 정의가 돼야할까요? 그렇다면 악한 행동을 항상 해야 악인인 걸까요? 만일 이렇다면 "모두가 악인이다"란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가 없겠죠. 아무리 악한 사람도 좋은 행동을 한 번은 할 수 있으니깐요. 그렇다면 악한 행동을 조금이라도 했으면 악인이라고 해야될까요? 그렇다면, Whynot님의 주장에 반대할 사람들이 있을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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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악한 행동을 항상한다는 주장도 가능하긴 합니다
악하냐 선하냐에는 두가지 관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1.일반적으로(대체로 여기는) 선함과 악함의 관점
2.자신을 선과 악의 경계선이라 보는 관점

제가 보기에 원래는 2번을 하는 사람밖에 없었지만 점차 모여살게 되면서 2번을 하는 사람들 중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서(필연적으로 소수의 의견보다 다수의 의견이 더 잘 모였을 것입니다)일반적인 기준인 1번이 생긴게 아닌가 합니다

하여튼 저는 2번의 관점으로,그것도 아주 선한 소년을 상상해보겠습니다
그 소년이 이 세상을 어떻게 볼지 예측해본다면,
이런 식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기부를 하고 있지 않지?
=기부를 하지 않는 것이 그럴 수 있다가 아닌 끔찍한 방관이라 여길 것입니다
악행을 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악하다고 여기는거죠
yhk님이 말하시는 1번의 관점에서의 선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소년은 "어째서 더 도와주지 않지?" "저정도 도와주는건 기본아닌가?"라는 의문을 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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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하지만 제가 말했듯이, 악인의 정의를 먼저 해주셔야 토론이 원활할 듯 보입니다.

이게 악인의 정의에 가장 가까워보이지만, 이것도 정의라고 보긴 힘든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필요충분조건으로써의 악인이 뭔지 먼저 생각해본다면 조금 더 원활해질 것 같네요.

바로 대답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철학을 공부할 때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주를 이루고, 다른 사람과 그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시간은 극히 적습니다. 그래서 철학을 고독의 학문이라고도 하더라고요. 충분히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시고, 또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한 책, 논문 등을 찾아보시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고요. 그렇게 이런 저런 방법으로 철학을 하시다보면 더 원활할 토론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철학을 하신지 얼마 안 되신 것 같은데, 힘든 길에 들어오셨으니 여러모로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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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으로 정의할 능력이 있을리가 없지만
한번 해본다면 공감능력의 수치와 연관이 있을것같아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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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가 됐든 몇 달이 됐든 천천히 한 번 생각해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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