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정치는 왜 중요한가?: 토마스 렘케의 『생명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단상

@sophisten 님이 쓰신 글(렘케,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1-2장」)을 읽고서 저도 렘케의 책에 대해 예전에 쓴 단상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원글: 잡념과 공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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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마스 렘케의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푸코에서 생명자본까지 현대 정치의 수수께끼를 밝힌다』를 읽었다. '생명정치' 개념에 대해 소개하는 얇은 분량의 입문서이지만 꽤나 정보량이 많다. 저자는 푸코가 제시한 '생명정치'에 대한 논의가 아감벤, 하트, 네그리 같은 오늘날의 영향력 있는 철학자들을 통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명정치가 정치의 양식을 어떻게 뒤바꾸었는지, 생명의 본질에 대한 생각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경제의 영역을 어떻게 재편성하는지를 이야기하며 다양한 군소 연구들을 비판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주제인 '생명정치'라는 개념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재미있고 유익하였다.

(2) 다만, 이 책의 짜임새는 전체적으로 불만족스럽다. 크게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비판이 제기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이 책은 자신이 서론에서 지적한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저자는 푸코의 논의를 통해 생명정치에 대한 '자연주의적' 견해와 '정치주의적' 견해의 한계를 넘어서서 생명과 정치가 맺고 있는 상호관계를 드러내겠다고 강조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러한 주장은 책 속에서 단지 암시적으로만 혹은 파편적으로만 논증되고 있을 뿐이다. 둘째로, 이 책은 '생명정치'라는 용어 아래에 포괄될 수 있는 수많은 입장들을 지나치게 폭넓게 다루고자 한 나머지 내용의 통일성이 다소 떨어진다. 서로 다른 각각의 입장들이 맺고 있는 연관관계가 너무 느슨하게 소개되고 있다보니 저자가 '생명정치'라는 개념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큰 줄기가 무엇인지가 모호해지고 만다.

(3) 저자는 생명정치에 대한 자연주의적 견해와 정치주의적 견해가 모두 '생명'과 '정치'라는 두 축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자 한다. 자연주의적 견해는 '생명'을 고정불변하는 자연적 실재로 상정한 채 인간 사회의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준거점으로 삼는다. 반대로 정치주의적 견해는 '정치'를 다른 모든 문제를 포괄할 수 있는 영역으로 상정한 채 생명 또한 단지 우리가 보존 혹은 계발해야 할 여러 정치적 대상 중 하나 정도로만 취급한다. 둘은 결국 '정치'를 '생명'의 영역으로 환원시키거나, '생명'을 '정치'의 영역으로 환원시키려 한다. 저자는 두 입장에 반대하여 푸코의 '생명정치' 개념이 정치와 생명이 맺고 있는 역동적 관계를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4) 그러나 정작 푸코의 '생명정치' 개념을 다루는 저자의 논의에서는 이러한 점이 그리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저자가 푸코를 통해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세 가지이다. (a) 근대는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주권권력' 대신에 생명을 훈육하고 통제하여 경제적 생산력을 높이고자 하는 '생명권력'이 등장한 시기이다. (b) 생명권력의 등장은 살 가치가 있는 생명과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을 구분하여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라는 주장 아래에 비정상적인 인종을 말살하고자 하는 '역동적 인종주의'로 귀결되었다. (c)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소위 '제2의 자연'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회의 본성에 따라 경제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생명권력이 인구의 자연성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안전 테크놀로지'에 의존하게 되었다. 푸코가 지적하고 있는 이 세 가지 논제는 물론 매우 흥미롭기는 하다. 다만, 이 세 가지 논제의 결합이 어떻게 생명정치에 대한 자연주의적 견해와 정치주의적 견해를 비판하는지는 직접적으로 논증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5) 아마도 저자는 '생명'과 '정치'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가운데 성립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한 듯하다. '생명'이라는 개념은 근대의 여러 기술적, 과학적, 의학적 지식을 통해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지식들은 '정치'의 영역을 재조직하여 이전과는 다른 권력을 출현시켰다. 더 나아가 이렇게 출현한 권력은 생명을 훈육하고 통제하기 위해 또 다시 '생명' 개념의 성립에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정치와 분리된 독자적인 실재로서 '생명'은 존재하지 않으며, 생명과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독자적인 원리로서 '정치'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과 정치의 이분법은 이 점에서 무너진다. 그러나 저자는 의아스럽게도 이러한 논의를 책 여러 군데에 산만하게 제시할 뿐, 자신이 핵심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푸코의 철학을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지는 않는다.

(6) 저자가 푸코 이후에 '생명정치' 개념을 발전시킨 여러 학자들을 소개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아감벤, 하트, 네그리는 생명정치가 어떠한 역사적 과정에서 출현 및 발전했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푸코와 차별점을 보인다. 아감벤은 푸코와 달리 생명정치를 근대 이전의 주권권력으로부터 도출된 결과로 이해한다. 반면 하트와 네그리는 푸코가 근대 생명정치와 탈근대 생명정치를 구분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이러한 '큰 줄기'는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다만, 아감벤과 하트, 네그리를 논의하는 장들은 저자가 서론에서 제시한 '큰 줄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도 각 학자들에 대한 일반론적 소개나 주변적인 비판에 대부분의 내용이 할애되고 있는 듯하다. 세 학자가 푸코와 맺고 있는 관계는 서론에 등장하는 몇 줄의 내용을 제외하고 나면 다소 두서 없이 서술되고 있을 뿐이라 상당히 아쉽다.

(7) 그 이후에 제시되는 생명정치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에 대한 소개도 산만하다. 저자는 푸코를 따라 '생명정치'가 단순히 생명의 원리에 따라 정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정치의 한 대상으로서 생명과 관련된 분야를 다루는 문제도 아니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그러나 정작 저자가 "푸코의 생명정치 작업을 수용한 두 가지 주요 노선"이라고 일컬은 제6장과 제7장의 논의들은 대부분 정작 푸코의 지적을 충실히 따르지 않거나, 더 나아가 푸코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생명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다루는 제8장도 마찬가지다. 각 논의들은 단지 "생명에 대한 지식의 발전이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생명에 대한 지식의 발전이 생명의 본질에 대한 논의에 영향을 주었다.", "생명에 대한 지식의 발전이 경제 문제에 영향을 주었다."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 일반론에서 머무르고 있다. '생명정치'라는 명칭을 제외하고 나면 각 입장이 왜 하나로 모일 수 있는 것인지조차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8) 가장 문제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래서 '생명정치'라는 주제가 왜 중요한가?"에 대한 대답이 책 끝부분에 너무 미약하게만 제시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생명정치에 대한 논의가 (a) '생명' 개념이 정치 영역에서 부각된 이유를 역사적으로 조명해 준다는 점에서, (b) 다양한 학제간의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c) 오늘날의 정치적 담론과 제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 이 세 가지 주장 중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c)이다. (a)와 (b)는 단지 생명정치에 대한 논의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하지만, (c)는 이 논의가 요구되는 진정한 이유를 지적하고 있다. 애초에 현실의 비판한 필요가 없다면 '생명' 개념에 대해 역사적으로 탐구해야 할 이유도, 다양한 학제간의 연구를 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저자는 생명정치 개념의 비판적 측면을 단지 그 개념이 줄 수 있는 다른 유익한 점들과 병렬적으로만 놓고 있을 뿐이다. 이 개념이 정치적 사유의 틀을 깨부수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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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읽어본지 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렘케의 이 책은 생명정치에 대한 개론적 서적에 가까운 듯 하다는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2. 참고로 책 내용에서 직접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생명정치론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들어 트랜스휴머니즘 등이 제기하는 문제들과 관련해서, 새롭게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러 매체에서 언급되는 뉴럴링크, 사이보그 페미니즘, 인간의 불멸 연구 등등...우리가 사는 시대는 생명정치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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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다만 제가 아직 3장(푸코)까지 밖에 읽지 못해 좀 더 깊은 얘기는 후로 미뤄야할 것 같습니다.

언급하신 말씀 염두에 두고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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