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투고하려는 논문 작성 때문에 올빼미에 글을 영 올리지 못했네요.
논문 초안이 완성되어 짬이 나서 오랜만에 다른 주제 책도 읽고, 비록 짧지만 요약하여 올립니다.
기존의 생명정치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연주의와 정치주의가 그것이다. 자연주의 해석은 생명을 정치의 토대로 여기고, 반대로 정치주의 해석은 생명을 정치의 대상으로 여긴다.
1.
자연주의는 인간 본성과 정치 행위를 모두 생명에 기반하여 설명하려 한다. 이들은 인종이나 민족 그리고 진화론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나치다. 혹은 이들은 정치 행위의 원인과 형태를 조사할 때 생물학의 개념과 연구 방법을 활용한다. 간략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1)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생물학적 요인이 정치 행위를 실질적으로 결정한다.
(2) 생물학적 요건에 부합하는 정치가 합리적인 정치이고, 그것을 위해 관찰 가능한 행위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 목표이다. 상징 구조 해석이나 규범적 비판 제공은 목표가 아니다.
(3) 행동과 제도를 외부 관찰자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딱 봐도 헛소리임을 알 수 있지만, 자연주의의 더 큰 문제는 사회·정치적 행위와 생물학적 요인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합당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생물학적 요인과 문화적·사회적 요인이 어떻게 구분되고 또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로 인해 그들은 인간 존재를 생명문화적 발전 과정의 산물로 간주할 뿐 이 과정의 생산자로 이해하지 못하고 만다.
2.
정치주의는 생명 과정을 정치적 성찰과 행동의 대상으로 설정한다. 초기에 정치주의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논해졌으나 기술발전과 맞물려 생명과 인공의 영역이 모호해지고 생명의 자연적 토대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자연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집중하게 되며 정치주의는 기술 중심적 관점에서 논해졌다. 즉, 생태학적 관점이 생명의 자연적인 토대를 보호한다는 목표를 추구하는 생명정치를 의미한다면, 기술 중심적 관점은 보다 역동적이고 생산적으로 환경과 사회의 관계를 설정하는 생명정치를 의미한다.
일견 정치주의 해석은 받아들여질만한 것으로 보이나, 이들 또한 심각한 문제를 담지하고 있다. 이들은 생명이 정치적 담론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주체 자신을 구성하는 것임을 간과했다. 즉, 생명 자체가 정치의 대상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정치적 행동의 토대, 도구, 목적 또한 변화를 겪게 됐고 여기서 인간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주의는 이를 캐치하지 못했다. 결국 정치주의도 자연주의와 마찬가지로 생명·자연 영역과 정치·문화 행위 영역 중 어느 한곳에 너무 큰 가중치를 부여한 것이다.
3.
반면 푸코는 (1)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는 자연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경계가 정치적 행동의 원인이 아니라 실은 결과라는 사실과 (2) 생명 자체가 정치의 대상으로 등장하며 정치적 행동의 토대, 도구, 목적이 변화하게 됐다는 것을 포착했다. 그렇기에 푸코가 생명정치 연구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출처: 렘케, 2022: 2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