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 분의 집에 갔더니 『New Philosopher』라는 철학 잡지가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단순히 '철학 맛' 에세이 모음집인 줄 알았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꽤 수준이 높아서 놀랐습니다. 제가 읽은 건 자기 정체성에 관한 특집호였거든요. 테세우스의 배 같은 고전적인 정체성 문제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해서 데렉 파핏의 사고실험들까지, 꽤나 전문적인 내용들을 깔끔한 이미지와 함께 설명하고 있더라고요. 기고자들도 대부분 현직 철학 교수들이라, '잡지'라고 해서 마냥 가볍게만 읽을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경상국립대 철학과에서 보내주신 『NOWHERE』 제8호가 도착했네요. 지난 번 한국철학자연합대회에 대해 제가 기고한 글이 들어 있는데다, 무엇보다 저의 발표문을 논평하신 경상국립대 이주희 선생님의 후기도 있어서 더욱 기대가 되었던 잡지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철학과 내에서 이런 잡지를 만들 만한 역량이 있다는 게 조금 부럽더라고요. 서강대나 연세대 철학과도 꽤 규모가 있는 편이고, 특히 서강대 철학과는 정말 학내 활동이 활발한 편이지만, 학과의 여러 가지 소식이나 학내 구성원들의 글을 담은 이런 깔끔한 잡지는 없어서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도 이런 철학 잡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해 보고 싶네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잡지 읽는 걸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중학생 시절에는 『위즈키즈』라는 논술 잡지와 『과학소년』이라는 과학 잡지를 매 달마다 구독해서 읽었어요. (특히, 『과학소년』에서는 과학 논술상도 받은 적이 있는데, 이건 제 인생 업적 중 하나입니다.) 또 고등학생 시절에는 학교에서 반마다 배포한 『생글생글』이라는 논술 신문과 『유레카 논술』이라는 인문 잡지를 정말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때 그 잡지들을 읽고 정리한 글들이 아직도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 스크랩한 자료들도 집에 남아 있고요.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저는 잡지에 실리는 글들이 어떤 의미에서 참 '모범적'이라고 생각해요. 잡지의 글들은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분량에,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주제와 내용을 적절하게 선별해서, 눈길을 사로잡는 이미지와 함께 핵심만 적절히 제시하잖아요. 사실, 고등학생 시절 처음 철학에 입문했을 때는 제가 읽었던 논술 잡지에 올라온 글들을 모범으로 삼아 글쓰기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는 저도 잡지를 만드는 일들을 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