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은 생각이다.
새로 이사온 아파트 옆에 바나나부터 선풍기, 옷에서 음료수나 술 등등 수많은 것을 파는 상점이 있다. 나는 주인 아저씨에게 묻는다.
"이 가게는 정말 많은 것을 파네요. 여기에 없는 것도 있나요?"
그러자 아저씨는 웃으며 잠시 가게 뒤로 간 뒤 무언가를 끙끙 들고오는 연기를 하였다. 물론 아저씨는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다. 아저씨는 웃으며 말한다.
"이것 맞지?"
과연 이 가게는 '없는 것이 없는' 가게인가, '없는 것도 있는' 가게인가? 전자라면 없는 것이 있게 되고, 후자라면 없는 것이 없게 된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들으셨거나 혹은 이런 사례가 이미 논의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에 대해 들은 바가 없어서, 제 체험을 바탕으로 여기에 남겨봅니다. 날씨가 더운데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꺼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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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다음 대목이 떠오르네요.
"I see nobody on the road," said Alice.
"I only wish I had such eyes," the King remarked in a fretful tone. "To be able to see Nobody! [...]"
사실 이 대목은 A.J. 에이어의 장 폴 사르트르에 대한 비판을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래 링크된 글에서 해당 논문을 가볍게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1951년 1월, 전후의 혼란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프랑스 파리의 어느 한 술집, 학자들 몇몇이 모여 조그마한 모임을 하나 가졌습니다. 그 주연으로는 A. J 에이어, 모리스 메를로퐁티, 조르주 바타유, 장 발 등이 있었으며, 은막 바깥의 조연으로는 마르틴 하이데거, 루돌프 카르납, 장 폴 사르트르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 철학자들이 술을 곁들이며 토의한 주제로는
인류가 존재하기 전에도 해가 있었는가?
같은 질문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바타유는
어제 나눈 대화는 실로 충격적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프랑스와 영국 철학자 사이에는 모종의 심연이 존재한다. 프랑스와 독일 철학자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심연 말이다.
라고 논평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저는 '분석철학-대륙철학 분기'라는 역사적 주제가 상당한 대중적 관심을 받는 현상이 좀 신기합니다. 이를테면 프리드먼의 『다보스에서의 결별』 같은 빡센 책이 번역 출간된 것은 사실 아직도 좀 긍정적인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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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토막, 인용하신 부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제가 이 역설울 논리학적 용어와 방식으로 명백하게 해명하는 글을 쓸만한 여력이 아직은 없어서 그냥 사례 소개정도만 했어요.
그리고 "다보스에서의 결별"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인데,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답글도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잠깐동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진지한 생각은 아닙니다.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꺼리이길 바랍니다).
이 아저씨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였죠. 마치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을 하며 없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은 규정된 부정성 (determinate negation)을 보여준 거겠죠. 아마 그 상점에는 헤겔의 대논리학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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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yhk9297님.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서 여기에 영어로 쓰신 article에 대해 답글을 단 적이 있었죠.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규정된 부정성'의 performance 라는 설명, 흥미롭게 들려요. 역시 헤겔의 대논리학도 있는 가게일 거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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