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윤리학 이후에 대해 여쭤보고싶습니다

칸트 실천이성비판 읽고있는 비전공자입니다.

칸트의 윤리학이 아주 매력적으로 저에게 다가오고있습니다.

다만, 영혼불멸, 신, 자유를 “요청”할 수 없다면 도덕법칙을 지킬 이유도 없다는 것으로 제게 이해되어서 아쉽더라구요.

칸트 윤리학 이후, 도덕법칙의 기본 전제는 받아들이면서 “요청”을 배제한 철학자, 철학의 논의들이 있을까요?

무신론자로서 보편적 도덕을 추구하고싶어서, 여쭤보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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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 (영미권) 윤리학에서 도덕성(morality) 자체는 더 이상 신/영혼 등과 같은 초자연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는 채 설명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견해인듯 합니다.

예컨대, (좀 모호하고 설명의 편의를 위해 간략화하자면) 도덕성이 (숫자처럼 추상적이지만) 인간이 직관적으로 아는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고, 아니면 '건강함'처럼 (과학적으로 관찰 가능한 혹은 정의 가능한) 어떤 자연적 속성이라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아니면 애당초 그냥 인간의 관습적 규범 중 하나라 보는 학자들도 있고요.

(자세한 논의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면 될듯합니다.)

(2)

다만 대체로 이런 담론은 "왜" 도덕적이여야 하는지에선 딱히 답을 주진 않습니다. 도덕적인게 (신과 구별되어서) 진짜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그걸 따라야하는 이유가 되진 않아 보입니다. (물론 이를 부정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은 담배가 몸에 좋지 않다는걸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죠. 비슷한 유비로, 저희는 도덕적인 것을 아는 것과 하는 것은 꽤 다릅니다. 알아도 안 할 수 있죠.

오늘날 영미권 윤리학에서 이 문제는 보통 행위철학이나 선택 이론, 심리철학 등에서 다루어지는 문제이긴합니다.

(3)

이에 비해 자유와 도덕은 훨씬 복잡한 관계처럼 보입니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통상 그에 대한 도덕적 책임도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도 쉽게 답해드리기 어렵네요.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 도덕적 운에 관한 문제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복잡합니다.

지나치게 소략한 답이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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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사합니다!
숙독해보겠습니다.

(2) 제가 가장 공부하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제 일상어를 명확히 표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려주신 철학 분과들을 제가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3)
제 짧은 이해로는 자유는 도덕을 논하기 위해 “전제”되어야하는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에 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에도 답변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관심 갖고 계시는 것이 단적으로 종교적 색채가 빠진 칸트주의 윤리학이라면, 아마 현대 도덕철학의 논의영역에서 대부분의 칸트주의자들에서 그런 입장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메타윤리학이나 행위철학에서 칸트주의 입장을 취하는 철학자들은 거의 대다수가 요청 논제 없이 도덕에 관한 칸트의 입장을 받아들입니다. (대표적으로 롤스나 코스가드가 있겠습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하버마스의 토의윤리(Diskursethik)도 종교적 색채 없는 칸트주의 전통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청에 관해 덧붙이자면, 한편 도덕법칙과 요청 사이의 관계는 생각보다 미묘한 사안입니다. 먼저, 신과 영혼불멸이 요청되는 것은 도덕법칙 자체가 아니라 도덕적 선과 행복의 완전한 합치 상태인 최고선을 위해서이기 때문에, 신과 영혼불멸이 그 자체 도덕법칙을 지킬 이유가 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칸트 도덕철학은 신정론의 변종이 되겠지요.) 한편, 칸트의 여러 언급으로 미루어봤을 때 최고선은 도덕법칙의 필연적인 귀결이므로, 저 두 요청이 칸트 도덕철학에 한낱 부차적인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예외적으로 세 가지 요청 중 자유는 도덕의 영역이 가능하기 위해 단적으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합니다. 자유가 불가능하다면 도덕법칙은 단적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영혼 불멸과 신을 요청하지 않는 칸트주의자는 현대에 많겠으나, 자유를 '요청'하지 않는 숙명론자 칸트주의자라는 것이 있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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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윤리학에서 도덕법칙을 지킬 이유와 영혼불멸, 신, 자유의 요청은 별개입니다. 그 요청은 도덕법칙을 지키며 사는 삶과 행복한 삶이 긍극적으로 일치하기 위한 조건이 영혼불멸, 신, 자유라는 것입니다. 칸트는 자신이 '최고선'이라고 부르는 이 일치를 도덕적 의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기는 해도 도덕적 의지의 규정근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따라서 무신론자로서 칸트적 의미의 보편적 도덕을 추구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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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선택 이론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설명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1)

선택 이론/결정 이론은 decision theory에 대한 제 임의의 역어였습니다.
아직 한국 학계나 한국어로는 합의된 번역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2)

decision theory는 흔히 경제학에서 하는 것처럼, 여러 가능한 선택지의 효용과 확률을 분석해 무엇이 '합리적인' 선택인지에 관해 논의하는 학문입니다. (나아가, '합리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라는 보다 메타적인 문제도 다루기도 합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이게 왜 (분석) 철학의 일부인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일단 이 학문은 (부분적으로는) 게임 이론에서 기원했고, 철학과에 편입된 과정은 '귀납 논리' (혹은 확률론/베이지안 확률론 등)에 대한 과학철학적 논의가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나온 도구들 (카르납의 후반기 작업과 그와 함께한 리처드 제프리[Richard Jeffery] 등)을 보다 넓은 심리철학적/도덕심리학적/인지과학적 논의와 결합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따라서 사용하는 (형식적) 도구는 경제학과 유사한 게임 이론/확률 분석이지만, 논의의 범위는 통상 이보다 넓습니다. 효용, 선택지, 불확실성에 대한 메타적인 논의들(이건 이제 그동안은 통상 윤리학/도덕심리학/행위철학/심리철학 등에서 다루어졌죠)도 다양하고, 그에 따라 형식적 도구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견도 꽤 다양한 편입니다.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내용은 Decision Theor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3)

보론하자면, 둘 이상의 행위자가 상호 작용하는 게임(game)을 분석하는 형식적 도구인 논리(logic) 자체도 게임 이론뿐 아니라, 여러 방식으로 요근래 발전하고 있습니다. 통상 이는 아직은 결정 이론/선택 이론의 일부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점차 그러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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