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데딕토 정확히 무엇이 다른가요?

데 레(de re:대물)적인 것과
데 딕토(de dicto:대언)적인 것 사이의 차이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솔 크립키의 <이름과 필연>을 읽는 중인데, 두 가지 개념이 자꾸 헷갈리네요.

3개의 좋아요

형식적으로 구분하자면, 양상 연산자가 이름이나 자유변항을 포함하는 적형식에 붙은 꼴이 문장에 포함된 경우 이를 de re 문장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Fa', '□Fx' 이런 식이 문장에 하나라도 포함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그렇지 않고 양상 연산자가 문장, 즉 자유변항을 포함하지 않는 적형식에 붙은 식만 문장에 포함된 경우 de dicto 문장이라고 합니다. '□(x)Fx' 이런 문장은 de dicto 문장입니다.

두 문장의 의미 차이는 다음과 같은 예시로 보여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 필연적으로, 모든 총각은 결혼하지 않았다.
  2. 모든 총각은, 필연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1을 번역하면, '□(x)(Bx->Ux)'가 됩니다. 이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총각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2를 번역하면 '(x)(Bx->□Ux)'가 됩니다. 이는 우리 세계에서 총각인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가 참이고 우리 세계에서 결혼하지 않은 민수가 있다면 민수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이 따라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거짓일 것입니다. 총각이 민수의 본질적 속성은 아닐테니까요. 민수가 결혼하지 않은 가능세계가 있다면 2는 거짓이지만, 1은 여전히 참이 될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11개의 좋아요

de dicto 는 직역하면 "말해진 것에 대하여"라는 뜻이고, de re 는 "사물에 대하여" 라는 뜻입니다. de dicto는 "어떤 사물이 지시되는가"가 아닌 사물이 "어떻게 기술되는가"가 중요합니다. de re는 반대로 "어떤 사물이 지시되는가"가 중요합니다.

de dicto/re는 비단 양상논리 뿐만 아니라 일상언어에 대한 해석에서도 상이한 해석을 가져옵니다. 예컨대 "서울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은 de dicto로 해석하면 "그것이 누구이든 간에 상관 없이 서울에서 키가 가장 크다고 서술되는 사람"정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de re로 해석하게 되면 "실제 서울에서 가장 키가 큰 (예컨대) 민수"가 특정될 수 있죠.

"모든 총각은 필연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다"를 일상언어적으로 각각 de dicto/re로 해석하게 되면,
de dicto: 총각이라고 서술되는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민수가 만약 총각이라면 결혼하지 않았다; 민수가 만약 총각이 아니라면 이 명제와 무관하다)
de re: 지금 이 세계의 실제 모든 총각들 (민수, 철수, 영수 ...)이 결혼하지 않은 것은 필연적이다.

이렇게 구별할 수 있을 듯 합니다.

10개의 좋아요

두 분이 빠른 속도로 공을 들여 설명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두 구별이 어떤 의미상의 차이를 일으키는지의 대표적인 예시만 제시하고 가겠습니다.

A가 다음을 믿는다고 해봅시다.

(1) 그는 브루스 웨인이 백만장자라고 믿는다.

그러면 다음 문장은 참일까요?

(2) A는 배트맨이 백만장자라고 믿는다.

다들 알다시피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이기 때문에 (2)는 얼핏 참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A가 둘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A는 (2)를 승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배트맨이 백만장자이다"가 참이더라도 A가 이 믿음을 믿지 않기 때문에 (2)는 참이 될 수 없어 보입니다. 이것은 (2)가 대언귀속을 포함한 문장이라는 점에 기인합니다.

반면

(3) A는 배트맨에 대해 그가 백만장자라고 믿는다.

(3)은 (2)와 달리 대상 자체에 대한 (대물적) 귀속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A가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과 같다는 점을 모르더라도, (3)은 (2)와 달리 참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시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11개의 좋아요

라쿤 님이 이미 잘 설명해주셨지만, 내용을 좀 더 확장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대언적/대물적'이라는 구분은 허브님이 지적해 주신 것처럼 일상 언어의 애매성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거든요. 가령, 라쿤 님의 예시를 응용하자면, 우리 일상 언어에서

(1) 총각이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라는 문장이 사용된다고 했을 때, 이 문장은 사실 맥락에 따라 두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죠. 즉,

(2) "총각은 결혼하지 않았다."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참이다.
(3) 총각이라면 필연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1)이라는 일상 언어를 (2)처럼 "총각은 결혼하지 않았다."라는 언어에 대한 논의로 해석할 수도 있고, (3)처럼 총각이라는 사물에 대한 논의로 해석할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2)의 경우는 '대언적(de dicto)' 문장이고, (3)의 경우는 '대물적(de re)' 문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런 애매성의 문제에 주목한다면, 이 논의는 연산자 이외에도 여러 가지 맥락에 적용될 수 있어요. 가령, 브랜덤은 경관과 수사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맥락에 '대언적/대물적'이라는 구분을 적용시켜요. 어떤 경관이 밤 중에 수상한 사람을 보았는데, 자신이 본 그 인물이 탈주범이라고 생각여서 수사관에게 보고를 했다고 해봐요. 그러나 수사관은 경관이 본 인물이 사실 그 마을의 선량한 목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수사관의 입장에서 경관이 믿고 있는 내용이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층위를 지닐 수 있어요.

(4) 경관은 어젯밤 어두운 정원에서 목격한 사람이 극악무도한 탈주범이라고 믿는다.
(5) 경관은 그 목사에 대해서 그가 탈주범이라고 믿는다.

여기서 (4)는 경관이 말한 내용대로 경관에게 특정한 믿음을 귀속시키고 있고, (5)는 경관이 목격한 사람이 실제로 누구였는지를 평가해서 경관에게 믿음을 귀속시키고 있어요. 그래서 브랜덤은 (4)를 '대언적 믿음 귀속(de re ascription)'이라고 부르고, (5)를 '대물적 믿음 귀속(de dicto ascription)'이라고 불러요. "...을 믿는다."라는 술어를 경관의 언어에 근거하여 설명할 것인지, 경관이 실제로 목격한 사물에 근거하여 설명할 것인지에 따라 믿음 귀속의 종류가 달라지는 거죠.

뉴헤겔 님의 츤데레 판별법도 마찬가지의 맥락이죠. 일상 애니에서

(6) 따...딱히, 널 위해 산 건 아니야!

라는 문장이 쓰였다고 할 때, 이 문장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어요.

(7) "널 위해 샀어."라는 말이 아니야!
(8) 널 위해 산 물건이 아니야!

(7)은 "널 위해 샀어."라는 언어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대언적'이고, (8)은 물건에 주목한다는 의미에서 '대물적'이죠.

또, 아이사카 타이가의 말도

(9) "나는 너를 좋아해!"라는 건 아니야... 바카!
(10) 내가 좋아하는 건 너가 아니야... 바카!

라고 구분될 수 있고, (9)가 언어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대언적'인 반면, (10)은 '너'라는 사물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대물적'이죠.

정리하자면, 일상 언어에서는 특정한 문장이 '언어'에 대한 것인지 '사물'에 대한 것인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애매한 상황들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에, 철학에서는 그 의미들을 각각 명료화시키기 위해 '대언적' 문장과 '대물적' 문장을 구분한다는 거죠.

9개의 좋아요

이... 이게 뭐죠...

4개의 좋아요

네, 그것은 erschlossen입니다.

1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