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싸매고 있는 하이데거와 불트만, 둘은 각각 20세기 최고의 철학자와 신학자 중 하나로 손꼽힌다.
(1) 얼마 전에 하이데거를 전공하는 대학원생 J 씨에게 하이데거 철학의 현대적 의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J 씨는 아주 솔직하게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하이데거가 정말로 맞는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해 평가하지 않기로 했어요. 오히려 하이데거 철학을 어떻게 우리가 전유해야 하는지는 유석 씨가 더 많이 찾아보셨잖아요. 솔직히, 하이데거 연구하는 사람들은 하이데거 해석하기에도 바쁜 것 같아요. 다들 하이데거의 텍스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내적 논의만 하더라고요. 외적 논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2) J 씨와의 대화를 하이데거를 전공하는 다른 대학원생인 S 씨에게도 말해주었더니, S 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게 다 하이데거 이 인간이 오만해서 그런 거잖아요. 자기가 한 말을 풀어줘야 하는데, 오만한 놈이라서 ‘니들이 알아서 이해해라!’라는 태도로 글을 쓰잖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다른 철학하는 사람들이 하이데거를 굳이 주목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신학 하는 사람들은 하이데거를 여전히 많이 읽는 것 같지만 말이에요.”
(3) 이야기를 듣고 보니, S 씨가 말한 것처럼, 확실히 하이데거는 신학에서 아주 중요한 의의를 지닐 수 있는 철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가 하이데거를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라고 범주화하는 것과 달리, 하이데거는 사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딱히 비판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단순히 종교적 ‘소속’으로만 따지자면 평생 가톨릭 신자였다. 심지어 하이데거는 가톨릭 신학생으로 자신의 학문적 커리어를 시작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특별히, 그의 초기 사유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열정이 아주 강하게 표출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하이데거는 체계로서의 ‘가톨릭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또한 결혼할 무렵에는 개신교도였던 아내로 인해 가톨릭 신앙생활에도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에서 출교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죽을 때도 가톨릭 장례 절차에 따라 묻혔다.) 내가 최근에 읽은 파나지오티스 타나사스의 논문에서는 초기에 하이데거가 그리스도교 신학을 위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전통을 극복하고자 하였다는 설명이 있을 정도이다.
“그[하이데거]의 첫 번째 걸음은 본래적 ‘삶’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에 의해, 그리고 특별히, 초기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서 경험된 원래성을 향한 탐구에서, 종교성을 향한 현상학적 접근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이데거는 철학적 전통을, 특별히 아리스토텔레스적 (그리고 플라톤적) 형태의 철학적 전통을, ‘그리스적 요소로부터 자유로운, 원래의 기독교 신학을 향한 길’을 형성하기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장애물로 여겼다.”(Thanassas, 2012: 35)
(4) 게다가, 하이데거는 아주 명시적으로 자신의 작업이 갖는 신학적 의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하이데거의 친구이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개신교 성서신학자 중 한 명인 루돌프 불트만이 하이데거에게 기초존재론이 전제하고 있는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하이데거는 그 편지에 답하면서 자신이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키에르케고어 같은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업이 “학문으로서의 그리스도교 신학을 위한 존재론적 정초”를 제공하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키에르케고어는 현존에 대한 더욱 급진적 이해의 형성을 위해 철학적으로 본질적이다. […] 나의 작업은 세계관이나 신학을 향한 열망을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작업은 학문으로서의 그리스도교 신학의 존재론적 정초를 향한 접근과 의도를 당연히 포함한다(may well contain). 이것이 당신에게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Kisiel, 1995: 452 재인용)
(5) 어떤 사람들은 하이데거가 그리스도교 신학에 반대하였다는 근거로 “‘그리스도교 철학’이라는 것은 나무로 된 쇠와 같은 것이요, 하나의 오해일 뿐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한다. 이 구절은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입문』에 등장한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의 맥락을 살펴보면, 하이데거가 결코 그리스도교 신앙이나 그리스도교 신학을 폄하하는 의미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오히려 하이데거는 그리스도교 신학은 신학만의 고유한 의의와 가치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 말을 한다. 신학이 자신의 “위대한 참된 사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굳이 철학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지적이다. 즉, 하이데거는 철학이 신학보다 더 근본적이거나 더 근원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에 반대한다. 그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에 선행하는 ‘그리스도교 철학’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문제의 구절의 전체 맥락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교 철학’이라는 것은 나무로 된 쇠와 같은 것이요, 하나의 오해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교적으로 경험된 세계, 다시 말해서 신앙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근본적인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학인 것이다. 철학의 도움으로 자칭 쇄신이라 일컫는 것을 통해서 어떤 신학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그래서 시대적 요구에 좀더 구미를 맞출 수 있으리라는, 아니면 아주 이것으로 대신해 버리자는 막연한 속견이 횡행하는 것은 다만 신학의 위대한 참된 사명을 더 이상 스스로 믿지 못하게 된 시대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본래의 그리스도교적 신앙에 대해서 철학은 다만 미치광이짓일 뿐이다.”(Heidegger, 1994: 32)
(6) 그러나 신학을 존재론적으로 ‘정초’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연구자들 중에서는 종종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Sein)’라는 개념을 의인화하여 그리스도교의 ‘신’과 동치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에티엔 질송과 존 맥쿼리가 하이데거의 ‘존재’를 그리스도교의 신으로 해석한다. 가령, 질송은 “하이데거의 존재는 유대-기독교의 신의 단지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Gilson, 1962: 402/Macquarrie, 2006: 39 재인용)라고 주장한다. 또한 맥쿼리는 “만약 신이 초인격적이고, 신이 실체 이상의 하나의 사건이고, 어떤 관점에서 적어도 시간 내적이라고 기꺼이 이야기한다면, 광의의 의미에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유신론적이다.”(Macquarrie, 2006: 183)라고 주장한다.
(7)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유신론적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이데거의 사유에서 ‘존재’는 전혀 그리스도교의 신에 대한 함의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란 일종의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존재는 주어지는 것(Gabe)으로서 줌(Geben)으로부터 밀쳐내어지지 않는다.”(Heidegger, 2008: 32) 즉, 대상이 나에게 주어지는 모습이 그 대상이 나에게 존재하는 모습이다. 가령, 똑같은 참나무가 예술가에게는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정물’로 주어지고, 목수에게는 책상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주어지고, 생물학자에게는 자신의 연구를 진행시키기 위한 ‘표본’으로 주어진다고 해보자. 이때 참나무는 ‘정물’로서, ‘재료’로서, ‘표본’으로서 존재한다. 주어짐의 방식이 다양해지면 존재함의 방식 역시 다양해진다. 따라서 ‘참나무’라는 존재자는 단순히 고정된 기성품처럼 우리 눈앞에 놓여 있지 않다. 누가 바라보는지에 따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무엇을 위해 바라보는지에 따라 존재자는 무한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8) 하이데거의 입장이 지닌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7세기 이후로 유럽을 지배한 실증주의 사조를 고려해야 한다. 근대 이후로 가속화된 학문의 ‘수학화’와 ‘자연화’ 경향은 그리스도교 신학을 학문의 영역으로부터 제거해 버리고자 하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수학적으로 측정될 수 있어야 하고, 실험과 관찰을 통해 검증될 수 있어야 하고, 물리학적으로 법칙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실증주의의 기본 입장이었다. 사실, 이와 같은 관점에서는 종교뿐만 아니라 예술이나 도덕 등 인문학 전반이 더 이상 ‘학문’이라고 여겨질 수 없었다. 시, 소설, 미술, 음악, 역사, 철학은 수학을 통해 객관화될 수 없는 모호한 영역이었다. 인문학이란 기껏해야 ‘취향’으로서의 의의만 지닐 뿐이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자연적’ 영역에 비교할 때,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영역에 대한 고민 따위는 근대인들에게 더 이상 ‘진리’의 자격을 지니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9) 그러나 하이데거는 실증주의가 제시하는 존재의 기준이 독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수리물리학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대상들만을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입장이 얼마나 허약한 가정 위에 성립하고 있는지를 폭로한다. 즉, 실증주의는 ‘존재망각(Seinsvergessenheit)’에 빠져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세운 자의적인 기준으로 무엇이 존재하는지와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지를 객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오늘날의 분석형이상학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실증주의가 받아들이고 있는 가정이란 ‘존재의 일의성(univocity of Being)’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의 일의성: ‘있다’ 혹은 ‘존재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단일하게 규정된다.
이와 같은 입장에 반대하여 하이데거가 내세우는 테제는 ‘존재의 다의성(plurality of Being)’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하이데거는 젊은 시절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존재자의 다양한 의미에 관하여」라는 브랜타노의 논문을 읽고서 철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이란 우리가 어떠한 태도, 관점, 맥락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무엇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가 무한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유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실제로, 오늘날 분석형이상학에서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크리스 맥다니엘은 ‘존재론적 다원주의(ontological pluralism)’를 내세우기도 한다.
존재의 다의성: ‘있다’ 혹은 ‘존재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다원적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규정된다.
(10) ‘존재’의 문제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점은 ‘진리’의 문제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점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전통적 철학에서 진리란 사유와 존재 사이의 대응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눈은 희다.”라는 사유는 눈의 실제로 흴 경우, 그리고 그 경우에만 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는 무엇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지가 우리 자신의 태도, 관점,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는 무엇이 ‘참이다’라고 할 수 있는지 역시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가령, 오늘날 한국인은 무지개가 빨, 주, 노, 초, 파, 남, 보라는 7가지 색깔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 동양에서는 무지개가 흑, 백, 청, 홍, 황이라는 5가지 색깔을 갖는다고 말했다. 영어권에서는 무지개 색깔을 6가지(빨, 주, 노, 초, 파, 보)로 분류하고 있고, 독일과 네덜란드 등에서는 5가지(빨, 주, 노, 초, 파)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슬람권에서는 4가지 색(빨, 노, 초, 파)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 중 무엇이 ‘실제로’ 무지개 색깔인지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지개 색깔은 단지 서로 다른 문화권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주어질 뿐이다. 다양한 분류법 중에서 어느 하나만 진리이고 나머지는 거짓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분류법들은 무지개가 우리에게 ‘탈은폐(Entbergung)’되는 각각의 방식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진리’이다.
(11) 하이데거의 사유가 그리스도교 신학을 존재론적으로 ‘정초’한다는 말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명되어야 한다. 이 말은 하이데거의 사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그리스도교 신학이 성립할 수 없다는 토대주의적 주장이 아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교 신학이 종교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실존의 구조를 하이데거의 사유가 철학적 언어로 해설하고 있다는 비신화론적 주장도 아니다. 이 말은 단지 그리스도교 신학이 근대의 수리물리학이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평가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하이데거의 사유를 통해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즉,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하였다.” “예수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라는 신학적 진술의 참/거짓을 실증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그 진술이 거짓이라거나 무의미하다고 여겨져서는 안 된다. 수리물리학을 기준으로 신학적 진술을 판단하려는 태도는 ‘존재’가 무엇이고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매우 피상적인 가정에 의존하고 있다. 신학적 진술은 신학적 진술의 맥락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누군가가 정말 예수를 통해 자신의 삶이 구원받는 경험을 하였다면, 그의 믿음에 대해 “너의 믿음은 수리물리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허구적인 것이야.”라고 비난할 권한이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그런 비난이 ‘도덕적으로’ 다소 무례하기 때문에 자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비난 자체가 ‘존재론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2) 덧붙이는 이야기이지만, 하이데거의 수제자인 가다머도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관심을 꽤 깊게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학부시절에 서강대 종교학과의 K 교수님께 과제를 제출하러 연구실에 방문했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K 교수님이 나에게 철학 중에서 어떤 분야를 공부하고 싶냐고 물어보셔서, 해석학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가다머를 만난 일화를 말해주셨다. 가다머가 살아 있었을 당시에 K 교수님이 가다머와 직접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
“당신은 왜 해석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나?”
라고 가다머에게 물어보았더니,
”나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의미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하다가 해석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라고 가다머가 대답하였다고 했다. 가다머가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렇게까지 말했다고 들어서 좀 놀랐다. 아쉽게도, 가다머 관련 다른 자료들에서는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찾을 수가 없어서,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전적으로 그날 K 교수님의 증언과 나의 기억에만 달려 있다.
참고
Heidegger, M., 『형이상학 입문』, 박휘근 옮김, 문예출판사, 1994.
Heidegger, M., 『사유의 사태로』, 문동규·신상희 옮김, 길, 2008.
Kisiel, T., The Genesis of Heidegger’s Being and Tim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3.
Macquarrie, J., 『하이데거와 기독교』, 강학순 옮김, 한들출판사, 2006.
Thanassas, P., “Phronesis vs. Sophia: On Heidegger‘s Ambivalent Aristotelianism”, The Review of Metaphysics, Vol. 66(1), 2012, pp. 3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