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주제네요. 들뢰즈가 비트겐슈타인을 혐오한 것처럼, 비트겐슈타인주의 전통에 있는 로티도 들뢰즈에 대해 다소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린 적이 있죠. 들뢰즈가 "니체의 더 멍청한 면"을 장려하고 모방한다면서요. "니체가 지닌 형이상학적 체계 건설의 경향"을 들뢰즈가 뒤따르고 있다고 비판한 거죠.
At an early stage in his engagement with French “postmodern” philosophers he wrote a brief review of Deleuze’s Nietzsche and Philosophy together with Richard schacht’s Nietzsche, in which he painted a rather unflattering picture of a Parisian silliness that was supposed to have cultivated and imitated “the more fatuous side of Nietzsche” (Rorty 1983, 620). Deleuze’s crime was to have taken seriously Nietzsche’s metaphysical system-building tendency and to have elaborated the theory of will to power in a manner that ultimately “dissolves everything into a mush of reactive forces in order to bring out their underlying nastiness” (Rorty 1983, 619). (Paul Patton, Deleuzian Concepts: Philosophy, Colonization, Politics,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0, p. 60.)
그렇지만 저는 비트겐슈타인과 들뢰즈가 반드시 서로 상극인 철학자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대립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더 많은 철학자들이죠. 특별히, 비트겐슈타인은 '차이의 철학자'라고 불릴 수도 있어요. 비트겐슈타인인 본인이 '차이'라는 주제를 굉장히 강조했거든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내가 너희에게 차이를 가르치겠다."라는 구절을 『철학적 탐구』의 모토로 삼으려 했을 정도로요.
위의 <철학의 길> 강의 5-2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자연주의, 데리다의 해체주의, 들뢰즈의 차이의 형이상학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승종 교수님과 제가 토론한 내용이 있어요. 간략하게만 요약하자면, 비트겐슈타인과 들뢰즈는 모두 동일성보다는 차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차이'라는 현상을 형이상학적 지평에서 다루고자 하는 시도를 거부했다는 점에서는 들뢰즈와 구별된다는 내용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