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의 현재에 대한 (내가 생각하는) 간략한 지도들

생물학의 철학이 점차 분과 학문으로서의 ‘철학’보다 ‘생물학’에 더 깊이 섞여 들어가는 것은 특정 개념의 도입과 그 개념의 조작이 중요한 방법론으로 작용하는 생물학(특히 분류계통학이나 진화생물학)의 특징이 하나의 원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물리학, 화학 등 또한 개념의 도입과 조작은 중요한 방법이지만 생물학에서 그것은 보다 잦은 빈도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더욱 주요하게 이루어지지 않나 합니다.

토마슨의 Ontology Made Easy는 이전에 메타존재론 수업에서 본 적이 있네요! 흥미로운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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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러 과학철학 조류들이 철학과에서 떨어져나와 경험적 분과학문에 가까워지는 현상은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경험적 현상들에 대한 클레임을 하면서 오로지 머릿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험적인 논의만으로 유의미한 설명을 할 수 있다는 접근방식에서 철학자들의 오만함까지 느껴지거든요. 가령 과거 과학철학자들이 경험과학적 evidence 없이도 논리적이고 형식적인 분석만으로 가령 시/공간에 대해 규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요. 자연과학 혹은 인문/사회과학적인 분과학문들의 경험적 성과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진행될수록 철학무용론과 자연주의/환원주의에 대한 경향도 짙어지겠지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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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 감이 잡히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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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는 또다른 원인은 생물학이 가지는 일종의 '팽창주의적?' 야망입니다. 과거 (혹은 몇몇은 현재에도) 철학이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여긴 적이 있습니다. 도킨스나 여러 진화 생물학자들의 시도 이후, (진화) 생물학 역시 과거 철학과 같은 '팽창주의적' 야망을 의식적이든/무의식적이든 가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잘못되었다 여기든 맞다고 여기든 앞으로의 철학자들/사상가들은 여기에 대응할 수 밖에 없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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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 있어서는 동의합니다. 비록 철학자들이 안락의자 방법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에 대한 (최대한의) 자료를 모아야 한다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날 자연과학/사회과학의 발전으로, 이전보다 사례에 대한 정보가 디테일하고 풍부해진만큼, (철학이 스스로 보편의 학문이라 자임한다면) 단순히 과거 알려진 사례 - 거기서 나온 이론만을 참고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생각합니다.

(예컨대, 인지라던가 심리를 다루려면, 이제 인간은 물론 동물과 같은 비-인간 생물 인지와 AI 같은 인공적 인지의 사례를 모두 다루고, 이걸 디테일하게 분류/분석할 개념틀을 만들어야 하겠죠. 단순히 '동물은 마음이 없다!', 'AI는 마음이 없다!.'라는 주장은, 결국 마음의 정의에 대한 [검증 불가능한] 철학 집단[의 한 부류가 가진] 직관에 의존하는 셈이니깐요.
스테판 스티치가 하듯, 이 직관을 '실험'을 통해 경험과학적으로 검증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X가 마음이라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라면, (그게 자신의 정의와 다르더라도) 차이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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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문제로 이러한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하긴 합니다.

이와 반대로, 사실상 철학이 자신만의 분야도 없고, 자신만의 방법론도 없다면 사실상 (모든 개별 학문의) 기초론으로서만 남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가끔합니다.

기실, 철학이 결국 개념에 대한 작업이라면, 철학자가 하는 일이란 (개별 학문이든 학문[들]이든) 여러 다양한 사례들을 모으고, 사례들을 설명할 여러 개념들을 구분하고 만들고 정교화하는 것일텐데, 결국 이게 학문 기초론과 무슨 차이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예컨대, 요근래 형이상학에서 자주 쓰이는 수반, 환원, 포함, building 등의 관계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란, 결국 이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툴을 고안/탐구하는 과정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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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의 이론 구성에서 개념은 법칙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한다. 생명과학에서 새로운 이론에 기여하는 주된 방법은 새로운 사실(관찰)의 발견과 새로운 개념의 개발이다. 사전에서 ‘개념(concept)'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찾아 본다면 매우 넓은 정의를 발견하게 된다. 어떤 정신적 이미지도 개념일 수 있다. 그 정의에 따르면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만 하면 숫자 3도 개념이다. 그에 대해서 정신적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은 개념이다. 그러나 인문학도가 개념에 대해 말할 때는 훨씬 좁은 정의를 적용하는데, 이 좁은 의미의 ’개념‘에 대해서도 마땅히 좋은 정의를 찾을 수 없다. 생물학자들은 자기 분야의 중요한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의심을 갖지 않는다. 예컨대 진화생물학에서는 선택, 배우자 선택, 세력권, 경쟁, 이타주의, 생물 개체군 등이 그런 것이다.
물론 개념은 생물학에만 한정되지는 않으며, 물리과학에서도 나타난다. 제럴드 홀턴이 주제도식이라고 부른 것이 아마도 생물학자들의 개념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새운 사실의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한 물리과학이나, 생리학과 같은 기능생물학 분야에서는 개념의 숫자가 대단히 제한적인 듯하다. 실제로 그 분야의 선도자들은 그들 분야의 진보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명과학에서는 개념이 큰 역할을 한다. 모든 개념이 진화생물학의 자연선택처럼 혁명적인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복잡한 생명과학 분야들(생태학, 행동생물학, 진화생물학)의 최근 발전은 새로운 개념의 제안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상하게도 전통적 과학철학에서는 이론 구성에서 개념이 갖는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론 구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볼수록 물리과학은 법칙에 기반을 두는 반면, 생물학은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 뚜렷해진다. 누군가는 개념이 법칙으로 정식화될 수 있다고, 또는 법칙은 개념으로 진술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 대비를 완화시키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법칙‘과 ’개념‘이라는 용어를 엄밀하게 정의해본다면 그러한 변형이 쉽지 않음이 드러난다. 이는 분명 물리학에 집중된 과학철학이 소홀히 해왔던 문제 영역이다.

이렇게 긴 문장을 댓글로 달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일단 이 주장은 염두에 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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