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짓;다 연례 강좌: 논리학 공구 상자 열어보기

틈을 내는 사유와 실천 짓;다의 의뢰를 받아 <논리학 공구 상자 열어보기>라는 강좌를 개설하였습니다. 논리학 입문자분들을 위해 아주 기초적인 명제논리와 1차 술어논리를 소개하는 강좌입니다. 사실, 이번 강좌는 저에게 꽤나 부담스럽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논리학이나 논리철학 전공이 아닙니다. 애초에 분석철학을 공부한다고 하기에도 애매합니다. 제 철학적 커리어는 하이데거, 가다머, 리쾨르, 데리다 같은 대륙철학에서 출발합니다. 대학원 입학 이후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계승하는 데이비슨, 셀라스, 로티, 브랜덤, 맥도웰 같은 인물들을 잡다하게 읽었지만, 지금도 제가 영어권 철학의 테크니컬한 논리학적 논의들에 다른 전공자들만큼 익숙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 논리학 입문 강좌 의뢰를 받았을 때 제가 과연 이 강좌를 진행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다만, 이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제가 결국 이 강좌를 맡기로 결심하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교육학적 이유

(1) 학부 시절에 처음 논리학을 공부하면서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때까지의 정규 교과과정에서 논리학을 가르치지 않을까?’하는 점이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학 교육에 대단히 열정적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아주 기초적인 명제논리조차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단히 이상하였습니다. 수학이 합리적 사고를 기르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과목이라면, 논리학이야말로 그 교육 목표를 실현시키기에 훨씬 더 적절한 수단이니 말입니다.

(2) 더군다나,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논술이 본격적으로 강조되는 데도, 정작 논리학은 전혀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은 저에게 그야말로 ‘역설’이라고 보였습니다.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능력을 가르치면서 무엇이 ‘논리적’인지를 다루는 학문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공교육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논술이 막 부흥하던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논술 세대’라 사교육에서 이루어지는 논술 강의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또, 짧은 경력이지만, 저 자신이 대치동의 꽤 유명한 논술 학원에서 견습 강사로 일을 해 본 경력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한 그 어떠한 논술 사교육에서도 논리학을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논술 교육이 국어 문법 교육, 작문 교육, 독해 교육, 사회탐구나 과학탐구 과목 관련 배경 지식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보고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3)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저는 종종 논술 수업이나 논술 과외를 맡을 때면 학생들에게 제일 먼저 명제논리부터 알려주었습니다. 실제로, 아주 기본적인 명제논리의 규칙들만 알아도, 학생들의 텍스트 독해 능력, 토론 능력, 작문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논리학을 재미있어 하였습니다. 저는 학부생 시절에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1년 동안 독서논술 수업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이때 학생들이 다른 내용보다도 명제논리를 배울 때 흥미를 느끼는 것을 보고 꽤나 신기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사족이지만,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이후에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철학과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그 학생의 부모님께서 연락을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몇 개월 간 독서논술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때도 학생들이 종종 저를 ‘명제논리 선생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논리학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매 주 2시간 분량의 수업에서 논리학 관련 소개는 기껏해야 20~30분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참고: 철학으로 밥 벌어먹기?
잡념과 공상 : 네이버 블로그

참고: 초등학생들과의 독서논술 수업 후기
잡념과 공상 : 네이버 블로그

(4) 이번 강좌를 맡은 것도 논리학이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 덜 강조되고 있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논리학이 지닌 위상에 대해 불만이 많다 보니, 이번 강좌를 통해서나마 이런 문제들을 수강생분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단순한 논리학적 지식 자체만이라면 저보다 다른 전공자분들이 훨씬 더 전문적으로 잘 강의하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논술 세대를 거치고 논술 강사로도 일해 본 사람으로서, 논리학이 어떻게 일상의 독서, 토론, 글쓰기 등에 실천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저 역시도 수강생분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철학적 이유

(1) 저는 대륙철학의 배경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논리학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논리학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편견을 몸소 경험하게 된 것도 저의 중요한 이야깃거리 중 하나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분석철학이 대개 논리학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요구하는 것과 달리, 대륙철학은 논리학을 거의 요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대륙철학 전공자분들 중에서는 종종 논리학을 ‘혐오’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깊이 있는 사유는 논리학 안에 갇히지 않는다면서 말입니다. 또, ‘분석철학’과 ‘논리실증주의’와 ‘논리학’을 막연하게 동일시하여서, 논리학의 몇몇 기호를 사용하는 논문들은 모조리 논리실증주의의 형이상학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염려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니면, 데리다의 용어대로, 논리학과 ‘로고스중심주의’가 모종의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2) 가령, 석사 시절에 어느 중국인 학자분이 저희 학교에 오셔서 강연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추론’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던 강연이었습니다. 그 중국인 학자분은 학부 1~2학년 정도에서 배울 수 있는 매우 기초적인 명제논리를 사용하셔서 자신의 논지를 풀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강연이 끝나고 나서 질의응답 시간에 대륙철학을 전공하신 한 교수님이 “논리는 모든 것을 검증될 수 있는 내용으로 환원시키려고만 한다.”라고 격양된 목소리로 강연의 내용에 대해 비판하셨습니다. ‘분석철학’과 ‘논리실증주의’와 ‘논리학’을 구분하시지 못하셔서, 논리 기호를 사용하는 모든 논의가 그 자체로 논리실증주의를 함의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참고: 논리를 거부한다?
잡념과 공상 : 네이버 블로그

(3) 저는 대륙철학 전공자들 사이에 퍼진 이런 오해와 편견을 꽤 많이 접하였습니다. 이런 오해와 편견을 가지신 분들을 단순히 비난하거나 비웃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서로 다른 철학적 전통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상대편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같은 철학적 전통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전공하는 분야, 주제, 철학자, 텍스트 등에 따라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학계의 현실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와 편견이 불필요한 갈등을 만든다는 점은 분명히 문제입니다. 특별히, 대륙철학도 얼마든지 논리학을 사용하여 논의를 더 명료하게 전개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그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4) 저는 대륙철학에 여전히 만연해 있는 이런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대륙철학에서 철학적 커리어를 시작한 제가 이번 논리학 강좌를 맡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깊이 있는 사유가 반드시 난해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학은 논리실증주의나 로고스중심주의에 개입하지 않고서도 대륙철학의 사유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가령, 적어도 제가 보기에, 현전의 형이상학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은 귀류법적 논증으로 얼마든지 요약될 수 있습니다. 또한, 프로이트의 오류추리에 대한 들뢰즈의 비판은 가설의 정당성에 대한 검토 작업이라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대륙철학의 고전적 텍스트 속에는 이미 수많은 논증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논리학은 논리학자, 수학자, 분석철학자만의 도구가 아니라 대륙철학자의 도구도 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강좌를 통해 수강생분들게 보여드리길 원합니다.

1. 강좌소개

제 유튜브 추천 동영상 목록에는 종종 여러 가지 공구 영상들이 올라오곤 합니다. 저 자신은 순수 ‘문돌이’이기 때문에 공구를 다루는 법을 잘 알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구를 능숙하게 사용하여 기계를 수리하거나 만들어내는 장면을 보면 저도 모르게 눈을 떼지 못하고 영상에 집중하게 됩니다. 반드시 공학자나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공구 사용법에 익숙한 사람은 일상에서 기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어서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논리학도 일종의 공구와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논리학자 수준의 전문 지식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철학과나 수학과에서 가르치는 전공 기초 수준의 논리학조차 일반인들에게는 난이도가 꽤 높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망치나 드라이버 같은 공구를 공학자나 기술자만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듯이, ‘논리학’이라는 공구도 반드시 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만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논리학을 익혀두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합니다. 논리학을 공부한 사람은 일상의 토론, 독서, 글쓰기 상황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조금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 강좌는 ‘논리학 공구 상자 열어보기’라는 제목대로 수강생분들이 논리학을 일상에서 공구처럼 다루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특별히, 논리학을 아직 한 번도 공부해 보지 못한 분들이 직접 논리학의 여러 가지 기호, 개념, 규칙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이끌어드리고자 합니다. 강좌의 내용은 주로 명제논리와 1차 술어논리에 대한 소개로 구성됩니다. 그 두 가지는 거의 대부분의 논리학 입문 강의와 교재에서 등장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논리 체계입니다.

수강생분들은 섹션마다 연습문제를 함께 풀어보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논리학을 체득하게 되실 것입니다. 따라서 논리학에 대해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으신 문과나 예과 출신 수강생분들이라도 아무런 부담 없이 이 강좌를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이 강좌를 통해 많은 분들이 논리학을 친숙하게 느끼게 되시기를 희망합니다.

2. 강좌일정

1주차: 논리학 공구 상자를 왜 열어 보아야 하는가?

논리학이란 무엇인가? / 논리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 논증이란 무엇인가? / 연역논증이란 무엇인가? / 타당성과 건전성이란 무엇인가? / 모순, 반대, 소반대란 무엇인가? / 대립 사각형이란 무엇인가?
(부교재: A. C. 그렐링, 『철학적 논리학』, 이윤일 옮김, 북코리아, 2005. / 에른스트 투겐트하트 & 우슬라 볼프, 『논리-의미론적 예비학』, 하병학 옮김, 철학과현실사, 1999, 제4장.)

2주차: 논리학 공구 상자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명제논리(1)

명제논리란 무엇인가? / 논리적 연결사란 무엇인가? / 진리표란 무엇인가? / 연역규칙이란 무엇인가? / 논리적 동치란 무엇인가?
(부교재: Peter Suber, “Paradoxes of Material Implication”, URL https://legacy.earlham.edu/~peters/courses/log/mat-imp.htm, 1997.)

3주차: 논리학 공구 상자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명제논리(2)

타당성 증명이란 무엇인가? / 조건증명법이란 무엇인가? / 간접증명법이란 무엇인가? / 보조증명법이란 무엇인가? / 진리나무의 방법이란 무엇인가?
(부교재: 최원배, 『논리적 사고의 기초』, 서광사, 2019, 제4장.)

4주차: 논리학 공구 상자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술어논리

술어논리란 무엇인가? / 양화사와 변항이란 무엇인가? / 다중 양화 문장이란 무엇인가? / 보편의 예화와 보편적 일반화란 무엇인가? / 존재의 예화와 존재적 일반화란 무엇인가?

5주차: 논리학 공구 상자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비형식 논리

가설이란 무엇인가? / 설명력이란 무엇인가? / 정합성이란 무엇인가? / 검증가능성과 반증가능성이란 무엇인가? / 증거력이란 무엇인가? / 보완가설이란 무엇인가? / 단순성이란 무엇인가?

6주차: 논리학 공구 상자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논리학 기호가 사용된 철학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부교재: 버트런드 러셀, 「지칭에 관하여」, 김혜연 외 6명 옮김, 전기가오리, 2018.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이영철 옮김, 책세상, 2006. / 칼 포퍼, 『과학적 발견의 논리』, 박우석 옮김, 고려원, 1994.)

3. 주교재

  • 김광수, 『논리와 비판적 사고』, 철학과현실사, 2007.
  • 이병덕, 『코어 논리학: 논리적 추론과 증명 테크닉』,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9.
  • 교재를 반드시 준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강의자가 주교재와 부교재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발췌하여 슬라이드 형식으로 정리해 드릴 예정입니다. 다만, 더 깊은 공부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주교재 중 한 권을 구매하여 직접 연습문제들을 풀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4. 수강대상

  • 논리학을 한 번도 공부한 적 없는 분
  • 논리학 입문서를 한 번도 제대로 완독한 적 없는 분
  • 논리학에 관심은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공부하기가 부담스러운 분

5. 강의: 윤유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에서 철학적 해석학을 공부 중이다. 대륙철학과 분석철학 사이에 가교를 놓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부정신학 없는 해체주의를 향하여: 해체를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 「사용 이론과 회의주의를 넘어서: 비트겐슈타인의 정적주의」, 「매개된 직접성: 지각적 경험의 개념적 성격에 대한 맥도웰과 브랜덤 사이의 논쟁」 등의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였다. 애니메이션을 매우 좋아하여 「대속은 어떻게 우리를 냉혹한 현실에서 구원하는가?: 대속의 이야기로서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라는 논문과 「그래도 우리는 진실된 것을 원한다: 진실된 것에 대한 성찰로서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라는 비평문을 쓰기도 하였다. ‘오징어의 철학 노트’라는 유튜브 채널에 종종 철학 관련 영상을 업로드한다.

짓;다 홈페이지: https://jidda.org/
블로그: https://blog.naver.com/1019milk/223040692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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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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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킹대학교 킹킹킹 교수가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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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 안에 연역논리를 술어논리까지 나가는 스케줄 자체가 빡세보이긴 합니다만, 본인께도 만족스러운 강의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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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강의가 있었다는걸 올해초에 알았으면 좋았을텐데요. 최근에 기초적인 논리학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서 입문서를 조금 찾아보고 있는데요. 여기서 사용하신 주교재를 혼자 공부하는데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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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 끈기가 있으시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공부해 볼 수 있을 만한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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