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클라우·무페 이론의 전략적 빈곤 - 지주형 2020

지주형은 자신의 논문 『사회운동 전략으로서의 포퓰리즘?:라클라우·무페 이론의 전략적 빈곤』에서 한상원과 마찬가지로 (1) 라클라우·무페의 이론을 요약 및 정리 (2) 그것의 한계를 짚고 있다. 나는 한상원의 글보다 지주형의 글이 더 좋은 논문이라 생각한다. (1)에 집중한 나머지 (2)를 거의 결여한 한상원과 달리 지주형은 (2)에 많은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1) 그렇다면 지주형은 라클라우·무페의 무엇을 지적하고 있는가?

  1. 물질적, 제도적 분석의 빈곤

주지하다시피 라클라우·무페는 담론 분석이라는 렌즈를 통해 정치사회를 분석한다. 즉, 물질적, 제도적 분석을 담론 분석으로 환원한다. 하지만 이 경우 현실 차원의 정치 운동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가? 지주형은 "물질적, 제도적 분석 없이 담론분석만으로는 실재하는 포퓰리즘을 충분히 분석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는 라클라우·무페가 담론 분석을 통해 "상이한 요구들이 하나의 특수한 요구나 '비어있는 기표'를 중심으로 하나의 등가 사슬로 접합되고 사회 내부적인 정치적 경계를 만들어 정치 사회운동이 발생하는지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론적 탁월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 이론은 모든 것을 담론으로 환원시켜버려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데 필요한 개념적 도구나 그것을 작동시키는 기제들을 분별하는 방법을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기존 질서에 대한 단절적 계기나 대항헤게모니, 이를 실현하는 새로운 집합의지나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 내는 방식"과 같은 운동의 구체적인 모습을 포착해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특정 등가사슬에 더 잘 접합되는 요소들과 그렇지 못하는 요소들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 이유를 '우연성' 차원으로 애써 변호할 뿐이다. 하지만 좋은 설명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처럼 담론 분석을 도입할 필요가 있지만, 구체적인 물질적·제도적 요인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만 한다.

  1. 전략적 실행의 빈곤

지주형에 따르면 포퓰리즘 전략을 포함하여 모든 정치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계산과 분석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사회경제적 세력 관계, 다양한 전략적 선택지들이 갖는 효과, 헤게모니의 물질적 기반을 창출하고 동원하는 전략에 대한 정교한 분석과 이론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라클라우·무페 이론은 그러한 물질적·제도적 요인에 대한 분석을 결여했기 때문에, 그들 전략은 빈곤한 전략이고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이유로 그들의 전략 실행 또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어떻게 "세력의 조직화와 자원의 동원" 등에 대해서 논할 수 있겠는가?

  1. 전략적 주체의 빈곤

지주형은 라클라우·무페 이론이 갖는 문제 중에서 전략적 주체의 빈곤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주형이 말하는 전략적 주체의 빈곤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라클라우·무페 이론에 따르면 ①모든 정치적 실천은 어느 정도 포퓰리즘적이고 ②포퓰리즘 전략은 우연한 역사적 맥락에 달려 있다. 그러니 그들 이론은 "포퓰리즘의 질적 다양성을 분석하거나, 포퓰리즘과 다른 정치적 실천들 및 전략들 사이의 차이를 분석하는데 적합하지 않다. 그들 이론에서 포퓰리즘 전략이란 단순히 정도의 문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2) 또한 그들 이론은 정치적 실천(포퓰리즘)에 대한 전략적 개입과 조정의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따라서 우리같이 외부에서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이론가(전략가)는 "효과적인 전략적 계산과 개입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외부의 사정이 이렇다면 내부의 사정은 어떤가? 지주형은 이 내부적 주체도 효과적인 전략적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라클라우·무페의 이론에 입각하면 '인민의 요구를 접합하는 주체' 자체가 성립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설령 그것이 성립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포퓰리즘을 전략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이 있는 주체인지는 의문이라는 게 주지형의 생각이다. 이는 라클라우·무페 이론이 취하는 '비어있는 기표'의 광범위함과 유동성(모호함)이라는 강점의 이면이다. 즉, 그들 이론에 입각한 '비어있는 기표'인 인민의 요구는 그 자체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에 운동을 전략적으로 계산하고 조정하는 역량이 없고, 지도력을 갖춘 정당이나 인물 또한 배제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라클라우·무페의 이론 자체 내에 좌파 포퓰리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잠재한다.

  1. 이론적 모호함

첫째, 지주형은 라클라우·무페의 정치 기획이 "전략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는 온갖 요건들을 덕지덕지 붙였다"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인민적 주체와 포퓰리즘 운동을 … 자유민주주의, 다원적 대의민주주의 … 등의 틀에 가두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 조건들을 수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

둘째, 지주형은 무젤리스의 비판을 통해 그들 이론이 가진 또 다른 이론적 모호함을 소개한다. 무젤리스에 따르면 그들 이론과는 달리 "포퓰리즘이 혁명적 잠재세력의 욕구불만을 적절한 수준에서 정치권에 흡수하여 오히려 체제 보위에 기여할 수 있다"며, "포퓰리즘에 좌파를 접목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수동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3)

셋째, 지주형에 따르면 그들 이론은 적대적 관계를 어떻게 경합 관계로 바꿀 것이냐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있다. 애초에 포퓰리즘이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렵고, 경합 관계가 적대적 관계로 바뀌는 것이 그 역보다 쉽기 때문에 그들 이론이 현실적으로 적실성을 띠는지 의문이다.

넷째, 지주형은 그람시를 받아들여 "국민적 인민적·집합의지의 형성과 헤게모니의 구축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물질적·제도적 분석, 전략적 비전과 지도력을 갖춘 정당, 유기적 지식인, 그리고 물질적 양보"인데 반해, 라클라우·무페의 이론은 그것들 대부분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이렇게 마땅히 설명해야 할 것을 몽땅 삭제해놓고 "등가 사슬에서 인민적 주체와 포퓰리즘적 단절로 너무나 쉽게 비약한다."4)

결론부에 이르러 지주형은 (1) 자신 논의를 정리하고 (2) 자신 논의가 갖는 한계를 짚으며 글을 마친다. 그 스스로가 짚는 한계는 다음과 같다.5) ①라클라우·무페의 저작 일부만을 읽고 비판했다. ②그들과 자신의 입장이 너무 달라 내재적 비판에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담론 분석 내에 물질적, 제도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③"본 연구는 라클라우·무페의 포퓰리즘 이론과 전략만을 다뤘기 때문에 그들이 이론적으로 구성한 포퓰리즘이 아닌,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포퓰리즘 일반에 대한 평가에 한계가 있다."6) ④자신은 그람시적 입장에 입각해 라클라우·무페를 비판했지만, 그 둘을 접목했을 경우를 충분히 다루지는 못했다.


  1. 약 35페이지로 구성된 한상원의 논문은 마지막 3페이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라클라우·무페의 이론을 톺아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경우에는 이런 글이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또 어느 경우에는 아니다. 만일 (1) 라클라우·무페의 글이 번역되어 있지 않거나 (2) 번역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논문 등을 통해 한국 학계에서 잘 다뤄지지 않으며, 요약 및 정리되지 않았거나 (3) 요약 및 정리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관점을 통해 재해석 및 요약하는 경우 중 하나에 속할 경우에 의미가 있는 글이다. 하지만 한상원의 글은 그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반면 약 50페이지로 구성된 지주형의 논문 중 17페이지가량이 요약하는 부분이고, 자신 논의를 정리하는 결론을 제외한 모든 페이지가 비판하는 부분이다.

  2. 이 부분에서 지주형은 논리적 비약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라클라우·무페가 "모든 정치적 실천을 어느 정도 포퓰리즘적"이라고 이해한다는 것으로부터, 그들이 "포퓰리즘의 질적 다양성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도출되지는 않는다. '모든 정치적 실천들을 포퓰리즘 운동으로 이해하고 그것들의 포퓰리즘적임의 양적인 정도를 기반으로 순위 매길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그것들의 포퓰리즘적 요소의 이질성 따위를 판별할 수 없다'를 연역해낼 수 없다.

  3. 내가 보기엔 지주형이 인용하는 무젤리스의 비판은 허수아비 때리기 비판이다. 라클라우·무페(최소한 무페)는 그것을 인정한다. 즉, 그것은 유효한 비판이 아니다.

  4. 지주형의 이 부분(pp.37-44)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것이 비판 초반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이제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그들의 이론에 빠진 요소들이 무엇인지 정리"한다며 이전 논의를 반복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렇게 길게까지 해야 했었나 싶다.

  5. 나는 이렇게 자신 논문을 자체적으로 비판하고 한계를 정확히 제시하는 글 형식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글(특히 사회 철학 관련 글들)이 결론부에서 자신의(혹은 자신이 소개하는 철학자 A의) 논의가 현대 사회 문제 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는 식으로 허풍을 쳐댄다. 총 4개로 이루어진 자체적 비판은 그의 연구를 잇는 후속 연구에도 도움을 준다기에 학문적 가치가 있다.

  6. 지주형의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 이것이 이 논문의 한계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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