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데모스, 급진민주주의 - 한상원 2020

저번 글에서 언급한 논문 중 하나인 한상원 선생님의 『포퓰리즘, 데모스, 급진민주주의』를 읽었다. 그의 논문은 (1) 초기·후기 라클라우의 이론을 정리, (2) 그의 논의와 보조를 맞추는 무페의 이론을 정리, (3) 마지막으로 라클라우·무페(이하 무페)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은 (3)이다. (3)은 다음의 두 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한상원은 무페 이론이 좌·우파 포퓰리즘의 차이는 인식하고 있으나, 포퓰리즘이 구성되는 방식의 차이를 정확히 짚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포퓰리즘은 좌/우 이념을 기준으로 구분될 수 있지만, 구성되는 방식으로도 구분되는데, 무페의 이론에는 후자에 관해 미숙한 지점이 있다. 한상원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인민) 자신이 주권자임을 주장함으로써 기존 정치 질서를 변화시키는" 포퓰리즘과, "(인민을) '폭민'으로 호명하는" 포퓰리즘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무페는 항상 전자에만 집중했을 뿐, 후자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한다.1) 다시 말해, 무페의 이론은 인민이 폭민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둘째, 첫째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한상원은 무페의 이론의 한계를 보완 혹은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서를 극복하는 합리성"이 아닌 "집합적으로 형성된 인민적 공통감각이 어떤 방향을 취할 것인가를 '설득'할 수 있는 … '정치적 합리성'"이 요구된다고 지적한다.2)


나는 한상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한상원이 지적한 두 번째 문제인 '정동과 짝을 맞출 정치적 합리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적절한 주장이다. 하지만 그녀가 '폭민 호명 포퓰리즘'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첫째 지적은 틀렸다.

우선 후자부터 짚자면, 한상원의 주장과 내가 이전 글에서 밝힌 주장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나는 이전 글을 통해 "정동에만 수동적으로 감응되지 않고 합리적으로도 사고하는 자율적 판단 주체 형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것의 반대급부가 한상원의 논문에서 '타협주의적', '순응적', '저항 능력이 소멸한 대중'이라는 표현을 통해 나타난다.3) 그러면서 내가 "무페의 이론에는 주체 형성(교육)에 관한 문제가 없다"고 지적한 것은 '정치적 합리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상원 모습과 겹친다. 이렇게 무페 이론을 더욱 강력한 좌파 이론으로 만들기 위한 개선책의 측면에서는 생각이 일치한다.

그런데 한상원의 또다른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 그가 주장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포퓰리즘은 "불안과 공포의 정념으로 인한 혐오정서" 혹은 "반지성주의, 탈정치화, 원한 감정"를 통해 인민을 정치적 주체로 형성하는 포퓰리즘이다.4) 나아가 그는 우익 포퓰리즘의 일부가 혐오 정서를 통해 인민을 폭민으로 조직하는 방식으로 대중운동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시대 분석과 동시에, 이러한 관점은 "라클라우와 무페가 제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5) 과연 그런가? 아니다. 무페는 한상원이 언급하는 사례 중 하나인 트럼프를 똑같이 예시로 들며 우익 포퓰리즘이 원한 감정을 부추겨 그것으로 대중운동을 구성한다고 지적한다. 5) 이러한 주장은 최근에 전개된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약 20년 전에도 그녀는 동일한 논의를 펼쳤다. 그녀는 FPÖ의 사례를 언급하며, 공포와 원한 감정을 절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우리/그들 대립을 만들어내는 우익 포퓰리스트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한다.6) 심지어 그녀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불러일으킨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형태의 르상티망은 지속되고, 더욱 폭력적인 표현 방식이 취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7) 그러니 한상원이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인민의 폭민으로의 전환 가능성의 편재"는 무페 또한 잊지 않고 있기에, 그의 비판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1. 포퓰리즘, 데모스, 급진민주주의-라클라우와 무페에게서 '인민'의 담론적 구성에 관하여, p.129.

  2. 같은 책, p. 130.

  3. 같은 책, p. 129.

  4. 같은 책, pp. 128-129.

  5. 같은 책, 같은 곳.

  6. Towards A Green Democratic Revolution: Left Populism and the Power of Affects, p. 34.

  7. The "end of politics" and the challenge of right-wing populism, p. 62.

  8. 같은 책, p. 70.

3개의 좋아요

(1)

혹시 이게 요즘 신유물론과 함께 핫한 그 정동(affection?) 개념인건가요? 혹시 그 개념이라면, 약간의 설명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이쪽 글들은 정의가 모호한 채 사용되다보니 기존 감정이나 여러 유사한 개념어와 어떻게 다른지 확 와닿지가 않더라고요.

제가 예전에 쓴 글의 일부입니다. (샹탈 무페,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2장에서 4장까지)

그런데 그녀의 설명을 봐도 정동과 정념이 정확히 무엇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런 모호함도 무페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녀는 정동과 정념을 논할 때 스피노자, 니체, 정신분석학 등을 참고했다고 말해요. 그런데 그것들을 다 짬뽕시키는게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가능하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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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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