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탈 무페,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2장에서 4장까지

지난번 글에 이은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에 관한 글입니다. 각 장에 따른 소제목은 제가 작성한 글에 맞추어 부여한 것으로, 원전의 소제목과 불일치합니다. 이태릭채를 통한 강조표시도 제가 부여한 것입니다. 2장 요약과 3장 요약의 두 번째 파트가 긴밀히 연결됩니다.

2장 - 무페와 오쏘독스 사회주의자들의 차이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2장의 핵심 내용은 합리주의 좌파(하버마스, 롤스 베이스)를 비판하면서, 정동을 정치의 범위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로써 우리(좌파)가 신자유주의 운동이나 극우운 동이라는 상대방을 이길 수 있고, 민주주의를 급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초기작인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 오던 것이고, 『경합들』을 읽을 때 이미 요약한 사항이라 요약하지 않는다.

무페는 2장 말미에서 오쏘독스 사회주의자(이하 오·사)를 맹렬히 비판하며, 그들과 거리를 둔다. 이 부분이 그녀와 오·사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그녀가 보기에 오·사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자신들의 우월한 합리성을 통하여) 정책과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만드는데 온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즉, 이들은 "역사에 대한 자신들의 구상이 '과학적 근거'에 두고 있으며, 자신들의 적수들이 가진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능가한다는 진리에 접근하는 특권을 갖고 있고, 역사 과정이 결정하는 사회주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따르는 길을 설명하는 것을 자신들의 역할로 이해한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대중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그들은 "대중의 실제 열망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우리(좌파)의 "승리 조건은 분명하게 공언된 사회주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그러한 사회주의 프로그램, 즉 "참된 관념에 대한 고유한 힘" 따위는 없다고 여긴다. 나아가,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보기엔 과학적 사회주의 신봉자인 오·사들이 놓치고 있는 것, "정책들에 힘을 실어줄 정동을 어떻게 발생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합리적 토론이란 충분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투쟁하도록 하는 것은 사회주의로 인도하는 '역사 법칙'의 실재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정동과 정동이 새겨지는 동일화 과정"이다. 바꿔 말해, 오·사는 "사회 이론과 정치적 실천을 구분"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물론 그녀는 "사회주의 원리들이 평등주의적 사회에 대한 상을 구성하는 데 유효한 이론적 지침을 제공"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녀가 보기에 "정치 프로젝트는 대중의 현실적인 조건에서 생겨나야 하며, 대중이 파악할 수 있는 대적자를 지정해야 한다. 대중은 바로 구체적인 요구를 중심으로 정치화될 수 있지, 추상적인 반자본주의적 웅변술과 … 함께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진보적 투쟁은 오늘날 반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이름이 아니라 평등과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수행되고 있으며, 이 투쟁들은 종종 민주주의 투쟁으로 표현되곤 한다."


3장- 정동의 중요성과 좌파 세력의 무능력함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3장의 핵심 내용은 정치(동일화 과정)에서 정동이 갖는 무게감의 강조와 그것을 무시하곤 하는 좌파 세력에 대한 비판이다.

  1. 정치(동일화 과정)에서 정동의 중요성

이에 대한 샹탈 무페의 언급은 초기 저작에서부터 이어졌기 때문에 장황하게 요약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이번 작에서 자신이 말하는 "정동" 개념의 의미를 다른 철학에서 사용되는 정동의 의미와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것만 간단히 짚는다.

그녀는 "'정념'이라 부르는 정동의 특정한 유형"에 주목한다며, 들뢰즈·가타리, 구성주의 학파의 영향을 받은 자들의 것과 자신의 것을 구분한다. 여기서 "'정념'이란 우리/그들이라는 동일화의 형태를 구성하는 과정 속 정치 영역에서의 중요한 부분인 공통 정동을 의미한다." 또한 정념은 감정과도 구분된다. 전자는 정치 영역에서 항상 집단적 동일성을 이루는 우리의 상황을 잘 전달해주지만, 후자는 개인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에 그렇지 못하다.

그녀는 정동과 동일화에 관한 자신의 성찰이 프로이트, 라캉, 스타브라카키스의 작업에 힘입은 것이라며, 그 연결 관계를 설명한다. 핵심은 "정치적 동일화 과정이 관념과 정동, 이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화 실천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과 "관념이 권력을 얻게 되는 것은 관념과 정동이 결합할 때"라는 점이다. 즉, "사람들을 행동하도록 하는 것은 정동이며", 관념이 중요한 만큼, 이 관념이 가진 권력이 정동과 연결되지 못하면 처참한 결과를 맞게 된다. 그렇기에 동일성을 촉진하려는 여러 정치적 시도는 제도적인 준비(관념)뿐만 아니라 정동에 관련된 것에도 몰두해야 한다.

  1. 정동을 무시하는 좌파 세력에 대한 비판

무페는 동일화 과정에 있어서 핵심 요소인 정념에 관련된 고민을 하지 않는 집단으로 좌파 세력을 지목한다. 즉, 헤게모니 투쟁에서 좌파가 항상 어려움을 마주하는 이유는 그들이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만들고, 집권 후 수행할 좋은 정책을 나열하는데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어떻게 집권할 것인지, 어떻게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책을 갈망하게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좌파 세력은 이러한 합리주의적 접근법을 취하기 때문에, 정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반면 그 상대방인 우익 세력은 대중을 동원하는 강력한 정동을 발산하는 기표를 제공하는 방법 등의 정치적 선동 기술에 능하기 때문에, 좌파는 항상 무능력하게 지고 만다. 무페는 2019년 영국 선거를 예시로 든다. 영국 보수당은 "통제권을 되찾자. 브렉시트를 완수하자" 와 같은 슬로건을 통해 대중에게 스스로가 권한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반면, 영국 노동당은 대부분 '우리에게 투표하면,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것, 이것, 이것을 줄 것'과 같은 방식을 택한 탓에, 대중에게 스스로가 전문가가 계획한 정책의 수동적 고객뿐이라는 느낌을 받게 했다. 그 결과 선거는 보수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렇게 합리주의적인 방식으로만 정치를 구상하는 자들은 정동을 개인적인 심리적 기질로 여기고선, 다른 정동을 발생시켜 개인들을 바꾸려는 노력은 부질없다고 여기는 '본질주의적' 접근법을 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극우 정당에 투표하는 대중과 말하기를 거부"하거나, "외면하거나 도덕적 비난을 통해 맞대응한다." 그러니 이러한 세력은 대중이 우익 정당에 이끌리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채, 우익 운동을 단순히 병적인 것으로만 여기는 데서 그친다. 하지만 우익 정당을 지지하게 하는 정동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피하고선 승리할 수 없다. 우리는 좌파 세력의 합리주의적 접근법을 철회해야만 한다.


4장 -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한 급진 민주주의 전략

샹탈 무페는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4장에서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옹호하며 좌파 포퓰리즘 전략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1장에서 본 것처럼, 신자유주의자들은 팬데믹에 의해 대중 사이에 형성된 사회·경제·기후 위기에 관한 안보 및 보호 취약성의 감각을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각이 불러일으킨 위험한 역할을 수행하는 정동을 좌파가 다른 방식으로 성공적으로 다룰 수도 있다. 현재 불러일으켜진 사회복지, 환경 보호 등 다양한 안보와 보호에 관한 감각을 계기로 민주적인 사회 구성이 가능하다. 즉, 사회 투쟁과 생태주의 투쟁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잘 보이는 지금을 분기로 하여 두 투쟁을 접합하는 좌파 포퓰리즘 전략을 전개해야 할 기회가 왔다. 좌파는 이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이러한 구상 아래에서 그녀는 생태주의 정당이나 투쟁들이 취하는 기존의 접근법을 점검한 후 좌파 포퓰리즘 전략 내에서 그것을 재사유한다.

  1. 생태적 요구에 관한 기존 접근법

무페에 따르면 대부분의 생태주의자는 생태적 요구에 관한 정책들이 합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그러한 요구가 만인을 위한 것이기에, 사리 분별이 가능한 모든 시민은 그에 관한 조치들에 동의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고서는 기후 이슈를 정치화하려는 시도를 조심하라고, 좌우 대립으로 편 가르기를 피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1. 기존 접근법에 대한 비판

무페가 파악하는 위와 같은 운동이 갖는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많은 운동이 금융 자본주의와의 대결 없이 진정한 생태적 전환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 둘째, 그들이 제안하는 정책이나 제안들이 생태적 전환을 실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공통 정동을 불러일으킬 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두 문제점이 아주 별개의 것은 아니다.

첫째, 단순히 생태 문제만을 다루는 운동으로는 민주적 권리와 사회 정의를 보장하는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중국처럼 권위주의적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생태 문제를 다룰 수 있다. 금융 및 경제 분야와 생태계 사이에는 밀접한 연결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핵심은 생태적 자원과 사회적 자원 모두를 지배하려는 자본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사회경제 조건들 전체로부터 민주주의 이상을 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좌파는 생태주의 투쟁을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러 유형 투쟁의 한 가지로 이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생태주의 운동은 정치적 경계를 세우고 대적자를 정의함으로써 정치화된다. 생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①금융 시스템을 규제하기 위한 국가의 급진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과 ②글로벌화된 금융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의존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둘째, 제대된 생태적 분기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막으려는 강력한 경제 세력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신자유주의 질서와 단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첫째 비판의 핵심이지만, 정동을 통한 등가 사슬 수립이 없다면 우리/그들이라는 경합 관계가 만들어질 수 없다. 따라서 정동을 불러일으켜 대중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녹색 민주주의 혁명'과 같은 헤게모니 기표를 제시해야만 한다. 이러한 기표 아래에서 각각의 참여자들이 다양한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공통의 대적자를 갖고 '우리'를 구성하며 좌파적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들 각각의 요구는 서로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요구들이며, 독재에 대한 반대를 공유하기 때문에, 녹색 민주주의 혁명이 제시하는 비전과 동일화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운동만으로 생태적 분기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목표가 자본 권력에 맞서는 것이므로, 그것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승리하고 국가 권력에 도달해야만 한다. 따라서 다양한 생태주의 투쟁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선거 정치를 회피하면 안 된다.


출처: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pp. 36-110.

2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