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반인을 위한 철학은 잘 없나요?

상아탑 밖을 벗어난 철학, '일반인을 위한 철학'은 왜 찾기 힘들까요? 이를테면 과학의 경우 예전이건 유튜브 시대인 지금이건 소위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많은데, 왜 '철학 커뮤니케이터'는 상대적으로 찾기 힘든걸까요? 철학자란 놈들은 죄다 지 주제도 모르고 콧대만 높아서 일반인들을 무시하는걸까요?

'대중 철학'이 점점 각광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철학의 대중화, 일반인을 위한 철학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과학이랑 비교하면 더더욱이요. /r/askphilosophy 서브레딧에 올라온 이 질문에 대한 TychoCelchuuu의 대답이 저는 참 빡세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을 번역하여 나눠보고자 합니다.

사실 대중 철학은 이미 정말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래도 왜 더 없냐, 왜 대중 과학만큼 많지 않냐, 라고 물으신다면, 제 생각에 그 원인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몇 가지만 들어보자면:

  1. 사람들은 철학자들을 과학자들에 비해 덜 신뢰합니다. 그러니 철학자들이 사람들을 설득하는데는 (그게 가능하다 치더라도) 훨씬 더 힘이 많이 듭니다.

  2. 철학자들은 독단주의,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결론을 내리는 것 그 자체보다는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이유를 찾는데 더 관심을 가집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들을 갖고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과학자들이 실험 방법론을 갖고 대중과 소통하는게 쉽지 않은 것처럼요.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과학에선 그 결론이 중요한 것이지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부차적임이죠. 그렇기에 대중과 소통할만한 거리가 철학에선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3. 철학적 견해는 사람들이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것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너무나 관심을 많이 갖기에 반론을 마주하면 기분이 나빠하는 것이고는 합니다. 과학은 딱 그 중간에 잘 놓인 것 같습니다: 과학적 소재들은 사람들이 상당히 관심을 많이 갖는 주제입니다만, 또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에 맞서서 '아니야, 그건 틀렸다고!'라고 강하게 반응할만큼 특정 과학적 주제에 대해 강렬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4. 철학자들은 과학자들에 비해 합의된 중론에 이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만큼 '새로운 과학적 발견!'처럼 대중들한테 보일 명백한 '정답'을 제시하는게 곤란합니다.

  5. 사실 꽤 많은 철학이 이미 대중들이 소비하는 매체에서 이루어지고는 합니다. 소설, 드라마, 영화 등등요. (이를테면 최근 미니시리즈인 Devs는 완전 자유의지 관련 내용이었죠.) 뭐 전문 철학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철학이긴 하고, 철학에 흥미를 갖는 대중은 그런 매체를 소비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느끼곤 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드라마나 책만 읽어서는 그런 과학적 만족을 얻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외는 있지만, 상대적으로는 적은듯요.)

  6. 많은 대중 과학적 소통은 전문적 (혹은 준-전문적)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과학자들 본인보다도요. 이건 사실 과학계에 어쨌든 예산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반면에 전문 철학 커뮤니케이터는 그렇게 밥벌이가 잘 안됩니다.

  7. 과학자들의 연구엔 납세자들의 세금이 빨려들어갑니다. 그러니 아마 연구를 정당화할 의무가 있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반면에 철학자들 연구엔 돈이 안 듭니다. 그러니 철학자들은 그만큼 '돈값을 한다는걸 보여줘야한다'고 덜 느낄지도요.

  8. 과학적 결과가 반체제적이거나, 논란이 되거나, 이야기한다고 위험에 처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일부 철학 분야 같은 경우에는 의견을 피력하는 것 자체가 논란에 논란을 낳고 골치아픈 문제를 낳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피터 싱어는 살해 협박을 엄청 받습니다 (최소한 그랬던 시기가 있습니다.) 살해 협박을 받는 과학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네요.

뭐 더할려면 더할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이쯤해둘까요.

개인적으로는 많은 부분 동감이 갑니다만, 현실은 어쨌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철학은 더 대중을 향해 더 나아가야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난제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여러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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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2번이 굉장히 마음에 드네요. 철학에서 필요로 하는 것 중 하나가 charitability죠. 제가 누군가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으면, 그 사람의 입장을 꽤 설득력 있게 만든 후 반박을 해야합니다. 결국 제 주장에 더 강한 반박을 찾고, 그 반박에 대한 반박을 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이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철학 논문 한 편을 써내도 결국은 결론이 같을 수 있다는거죠 (물론 그 과정에서 바뀔 순 있겠지만요).

결국 철학을 즐길려면 이런 "과정"을 중요시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결론이 바뀌지 않고, 결국 새롭게 얻는 것이 없더라도 똑같은 말에 무게감을 담을 수 있고, 그 지적인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만이 철학을 공부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끝나지않죠. 2번이 더 참혹해보이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철학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생각하면서 즐기는 학문입니다. 결국, 자신의 주장에 "맞춤형" 반박에 대해 생각해야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반박들에 대해 생각하려면 그런 반박들을 생각해내야합니다. 훈련된 철학자들이라면 이런 반박들을 생각해내기 쉽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러기가 어렵죠. 하지만 결국 "맞춤형" 반박을 생각해내야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가이드가 없으면 더 힘들어집니다. 대중을 위한 철학이 단순히 책과 강의 영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이유죠. 결국, 안 그래도 즐기는 사람이 없는데,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어도 전공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것이 이런 현실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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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부분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철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서도 일종의 '철학적' 입장들을 자주 접할 수는 있죠. 그 입장들이 때로는 정치적 활동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때로는 인터넷 상의 난삽한 댓글 논쟁에서 표현되기도 하고, 신앙 생활로 나타나기도 하잖아요. (니시 아마네가 19세기에 만든 '철학'이라는 신조어가 전통적 무속 신앙을 다루는 '철학관'에서도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속 신앙인들조차 학술적 의미의 '철학'과 자신들의 활동 사이에서 어떤 연속성을 발견한 거죠.)

다만, 이렇듯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갖가지 방식들로 철학적 입장들을 지니고 있다 보니, 그리고 그 입장들이 그 사람들의 가치관을 이루고 있을 때가 많다 보니, 대학의 철학 전공자가 일상인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다 자신의 철학에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하더라도 자신의 철학에 대해서만큼은 타협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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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아이러니네요. 사실 전 막연하게나마 이런 아이러니를 극복하는게 불가능하지는 않을거라는 희망사항을 품고 있기는 합니다. 저도 제가 잘 모르는 세부 분야 발표 같은걸 들을 때는 약간 관중 느낌으로 '오오, 신기하구만'하긴 하거든요.

물론 전공자가 타 세부 분야 내용을 접하는 것과 비전공자가 철학 내용을 처음으로 접하는 것은 다르기는 하지만, 그 격차는 어떻게든 커뮤니케이터의 노력으로 극복을 ... :face_with_spiral_eyes:

매우 흥미로운 가설이네요. 말씀해주신것처럼 그만큼 '철학'이 삶에 뿌리 박혀 있음을 방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면에서 전통적인 교실의 경우, 어쨌든 쌍방소통이 가능하다보니 사실 슬금슬금 토론을 통해 그 가치관에 대한 사고의 폭을 넓히게끔 유도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게 그냥 대중강연이나 유튜브 같은데서는 쉽지 않지요.

반면에 지난번 올려주셨던 그 메타버스(?) 강의는 역설적이게도 보다 전통적인 철학 교수 방식에 잘 맞는 것 같아서 흥미롭습니다. 철학의 미래는 어쩌면 버튜버에 달렸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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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생각한 정도로는 이공계 사람들이 철학을 시작할 때 품는 의문들이 꽤 정해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공대생이었거든요). 그래서 대중 철학을 할 때 이런 겹치는 의문들에 대한 반박들을 정리해놓으면 그래도 좀 괜찮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이공계를 위한 FAQ 같은 형식으로요. 물론 누가 할 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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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같은 커뮤니케이터는 높은 확률로 20-30대일텐데, 그 나이 대부분의 연구자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이죠. 그래도 과학 분야의 경우(특히 공대)는 교수가 아니더라도 랩실에서 (거의) 따박따박 나오는 봉급을 받고 생활하기 때문에, 공부=일/일상생활/유튜버 겸임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철학은 공부를 한다고 해서 봉급이 안나오는 경우가 (최소한 한국에서는) 대부분이기 때문에, 공부 외에 밥벌이를 따로해야만 하죠. 이런 이유에서 공부/일/일상생활을 하는 철학연구자가 유튜버 겸임까지 하기에는 벅찬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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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원래 일반인을 위한 건데 일반인이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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