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대중에게 해야 하는 철학적 접근?

옛날에 플라톤은 "좋음에 관하여"라는 대중 강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Konrad Gaiser, "Plato's Enigmatic Lecture 'On the Good'", Phronesis Vol. 25, No. 1 (1980), pp. 5-37 )
여기에서 청중들은 "좋음은 일자이다"라는 결론을 내는 강연을 보았다고 합니다. 청중들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얘기를 읽다보면, 철학적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해야 할 때, 어떤 점을 유념해야 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일반 대중에게 어떤 철학 강연을 한다고 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잘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했을 때, 일반적인 어려움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1. 문제 자체가 터무니없어 보일 때: 위의 플라톤 같은 예시가 그런 거겠죠. 아마 청중은 좋음에 대한 좋은 말을 들으러 갔을 텐데, 이상한 형이상학적 얘기나 하는 것처럼 들었을 것입니다.
  2. 위험성이 있을 때: 당연히 정치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받을 수 있는 어려움입니다. 독재 시절에 마르크스주의 얘기하기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현대중국철학 책을 읽었는데, 마오쩌둥의 파트는 건너뛰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를 끌어들여서 민주주의가 인민의 의지를 반영한다는 것은 원리적으로 환상이라는 주장을 한다던가... 정치철학이나 법철학 정도까지는 아니더라고, 많은 실천윤리학 문제들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겠습니다.
  3. 부여하는 중요성이 다를 때: 예를 들면, 유명한 회의주의적 논변들이 있겠습니다. 흄의 귀납 문제를 진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기본적인 과학적 명제도 전혀 합리성을 보장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보통 반응이 '원래 과학은 얼마간 불확실성이 있는 것이지. 뭐가 문제야?' 같은 반응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실 문제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비과학적 명제에 대한 과학적 명제의 인식론적 우월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 위의 1), 2), 3)의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입니까? (특히 현대중국정치철학이나 페미니즘 관련 주제의 경우, 많은 혐오적 반응이 있을 것 같습니다.)
  •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나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으나, 대중들에게는 터무니없어 보이거나 위험한 철학적 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반대로, 대중들 사이에서는 인기 있지만, 철학자들에게는 터무니없어 보이거나 위험한 철학적 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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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강연 일반에 맞는 말이겠지만, TPO에 맞춰야겠지요?

사실 이 문제는, 플라톤이 대중들이 원하던 "좋음"에 관한 논의에서 "좋음"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의로 넘어갈 당위성을 납득시키면서 청중 중 일부는 그 논의를 따라갔을거라 전 생각합니다. (물론 그저 좋은 말만 들으러 오신 분은 안 그러실 것이고, 그게 나쁜 것이라 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문제로 연결되는 듯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건 강연자의 잘못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원래 강연자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흄의 귀납 문제? 아니면 과학적 지식이 인식론적 우월성이 없다?
전자였다면 당연히 대중이 별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걸 가정하고 강연을 꾸렸어야한다 생각합니다. 귀납은 굉장히 형이상학적 토픽이고 철학과일지라도 이해하기 쉬운 문제가 아니라 느껴집니다. 만약 대중 강연에서 이 토픽을 골랐다면, 양념처럼 썰풀이가 들어갔어야 대중의 흥미를 유지할 수 있겠죠. 흄에 관한 여러 일화라던가, 귀납 논쟁이 발생한 맥락이라던가.
후자였다면 굳이 흄을 끌어드려야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다 직접적이고 재미있는 예시들이 많을테니깐요.

(2)

이 부분은 강연자의 각오에 달린 것이라 봅니다. 본인이 자신이 여러 세파에 휩쓸릴 걸 각오하던지 아니던지. 분명 논쟁적인 주제라는 것을 본인이 알고 있으면서 대중이 중립적이길 기대하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애당초 그런 생각이였으면 중립적 청자가 있는 학회에 갔어야하죠.)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기 어렵다면 익명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여러 방법이 있을듯합니다.

(3)
몇 번, 정말 철학과 무관하며 심지어 고등교육과도 무관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 결과,

로는 모든 형이상학과 인식론적 논의가 있었습니다. 애당초 이런 영역에 "해명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여기는 사람은 드문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는 (나이브한) 윤리적 문제나 실천 철학적 주제, 사회적 문제에 관한 토픽이 있죠. 예컨대 누군가는 현 사회의 만연한 (속칭) "갈라치기"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죠. 이들 문제에 철학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만, 일견 보기에는 그런 내용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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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논제'는 아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실정치에 대한 비평에 철학자들의 논의가 마구잡이식으로 사용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가령, 칸트를 배우고 푸코를 아는 사람이라면 특정 정당의 구호와 행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글들을 위험하게 생각합니다. (a) 철학적으로도 엄밀하지 않고, (b) 정치적으로도 일종의 선동이라고 생각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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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 하나를 끌올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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