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상가들의 이불킥

(1) 신학이나 기독교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칼 바르트'라는 이름을 모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을 막론하고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니까요. 심지어 가다머, 타우베스, 아감벤 같은 철학자들조차 바르트의 신학을 높이 평가하면서 자신들의 철학적 작업에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바르트가, 자신의 대표 저서인 『교회교의학』에서, 심지어 『교회교의학』의 백미라고 꼽히는 Ⅳ/1권에서, 자신이 이전에 남긴 오기와 오타에 대해 이불킥(?)을 합니다. 다음은 『교회교의학』 Ⅳ/1권 서문 말미에 있는 내용입니다.

여전히 나는 이러한 계기를 통하여, 필자를 오랫동안 괴롭힌 몇 가지 잘못된 것(오타)을 교정하고자 한다. 이것들은 이전에 분권들에서 필자의 실수로 아직도 남아 있는 것들이다. 즉, Ⅲ/2, 338쪽 상반부에서 필자는 티치안(Tizians)의 그림을 라팰(Raffael)의 그림으로 잘못 기술하였다. 어떻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Ⅲ/4, 398쪽에서 나는 슈바이처 박사(Dr. Albert Schweitzer)를 동부아프리카 삼베시(Sambesi)에서 누(Nu)의 옥고베(Ogowe, 서부 아프리카)로 대치하였다. 이러한 일은 필자에게는 실제로 중ˑ고등학교 시절에도 범하지 않았던 실수였다. 오ˑ탈자를 발견하지 못한 자로서 모든 책임은 필자에게 있다. 예컨대 Ⅲ/3, 417쪽 4줄, 여기서는 "아니요"(nicht)라는 것이 모든 의미를 파괴하는 "온전한" 것으로 오기(誤記)되었다. 누구든지 이 분권들(Bänden)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부탁하건대, 이러한 모든 무의미한 것을 교정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 지젝도 비슷한 이불킥을 합니다. 지젝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까다로운 주체』, 『시차적 관점』 네 권이 흔히 손꼽히는데, 이 중에서 『까다로운 주체』라는 책 서문에 재미있는 고백이 있습니다.

버소 출판사에 보낸 내 원고를 신중하게 교정한 질리언 보먼트는 정기적으로 내 (지적인) 팬츠를 내려버리곤 했다. 그녀의 응시는 사유의 노선의 반복들, 엉터리 같은 논변상의 모순들, 교양 교육의 결핍을 드러내는 잘못된 저자 표시와 참고 문헌 표시들을 틀림없이 식별해냈다. 문체의 어색함은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어떻게 내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며, 따라서 그녀를 증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른 한편으로 그녀에게는 나를 증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나는 뒤늦은 삽입이나 원고 수정으로 그녀를 끊임없이 포격했으며, 따라서 나는 그녀가 나의 부두교 인형을 갖고 있으면서 저녁이 되면 거대한 바늘로 찌르고 있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3) 최근에는 '프랭크 잭슨'이라는 유명한 분석적 형이상학자의 논문을 읽다가 약간 이상한 참고문헌 표기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올빼미에도 번역본과 요약본을 올린 적이 있는 "Statements about Universals"라는 논문입니다. 저자가 직접 이불킥을 한 것은 아니고, 편집상의 사소한 문제이긴 하지만, 영어권의 명망 있는 분석철학자도 논문 편집을 그리 꼼꼼하게 하지는 못한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그것도 단 3쪽밖에 안 되는 논문인데 말입니다!) Mind (Vol. 86(343), 1977, 427-429.)에서 출판된 이 논문의 초판본에서 잭슨은 프라이어와 팝의 논문을 각각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여기서 잭슨은 Encyclopedia of Philosophy의 편집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표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잭슨의 인용 표기대로라면, Encyclopedia of Philosophy는 프라이어의 단독 저서가 되어버립니다.) 게다가, 잘 비교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프라이어의 논문을 인용할 때는 괄호 없이 출판년도를 '1967'라고 표기하고, 팝의 논문을 인용할 때는 괄호를 사용하여 '(1959)'라고 표기합니다. 그 외에도, 팝의 논문이 수록된 학술지의 쪽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일반적인 표기와는 다릅니다.

흥미롭게도, 재출판된 잭슨의 논문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교정되어 있었습니다. 다음은 Properties (D. H. Mellor and Alex Oliver (eds.), Oxford an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라는 논문집 89-92쪽에 수록된 "Statements about Universals"에서 등장하는 각주들입니다.

위와 비교해 보시면, 이번에는 초판본에서 빠져 있던 Encyclopedia of Philosophy의 편집자 이름이 '폴 에드워드(Paul Edwards)'라고 기입되어 있고, 출판년도가 모두 괄호 안에 들어가 있고, 팝의 논문 쪽수가 '330-40'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프라이어 논문을 표기할 때는 'p. 146.'라고 'p.' 표기를 썼으면서도 팝 논문을 표기할 때는 'pp. 330-40.'라고 하지 건 여전히 제 눈에 걸리네요.)

(4)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어제 제 석사 시절 논문들을 읽다가 출판지와 출판년도가 잘못 표기된 것들을 너무 많이 발견해서 그렇습니다. 지젝이 말한 것처럼, 저는 석사 시절에 교양이 부족해서 미국의 도시(city) 이름과 주(state) 이름을 구분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가령, 'Cambridge, Massachusetts'가 영국 케임브리지(Cambridge)와 구별되는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케임브리지인 줄을 몰랐습니다.), 단행본을 인용할 때 쇄(print)가 아니라 판(edition)을 기준으로 출판년도를 인용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 논문들 중에는 출판지와 출판년도가 부정확하게 인용된 게 너무 많네요. 몇 년 전에서야 이런 사항들을 알게 된 이후로는, 제 논문에서 잘못된 표기들이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밤새 이불킥을 합니다. 바르트처럼, "누구든지 이 논문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부탁하건대, 이러한 모든 무의미한 것을 교정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라고 외치고 싶네요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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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양반아닌가요
저는 제 논문들 그냥 없애버리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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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정말 지젝스럽게 글을 쓰는군요ㅎ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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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단행본 하나 편집을 한 적이 있었는데, 출처표기에 상당한 오타가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충격받은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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