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인 모순'과 동상이몽

(1) 우선 양진주의에 대해서는, 불교(사실 그레이엄 프리스트가 인용하는 불교논리학을 사용하는 방식을 보았는데, 제가 생각하는 양진주의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A = A라는 걸 부정하는 방식인데, 이게 과연 양진주의로 이어지나 좀 의문입니다. 사실 자이나교의 철학이 여기에는 더 정확한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언제나 합니다. 자이나교는 양진주의와 동일한 "참이면서 거짓인 진술이 있다."라는 주장을 자신들의 핵심으로 삼으니깐요.)에 관심이 있어서 생각을 했었는데,

여기에는 단순히 논리학이나 논리철학의 문제보다는, 보다 많은 걸 함축하는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필연적으로 이 문제는 '참'이나 '모순'이 무엇이냐, 하는 형이상학적 문제로 이어진다고 개인적으로 느낍니다. 짤막하게 나마 자이나교를 언급했지만, 자이나교가 저 주장을 하는 근거에는, 결국 모든 인간의 인지능력은 한정되어있고, (깨닫지 못한) 인간의 주장이란 곧 한계가 있다는 인식론적 주장입니다. (유명한 장님 코끼리 일화는 원래 자이나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레토릭입니다.) 어찌보면, 이 주장은 포퍼/과학철학류의 반증 가능성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참이라 생각하지만, 언제든 반례가 등장해 반증될 수도 있다.

(2) 그것과 별개로, 동상이몽 시나리오는 재미있다 여깁니다. 동상이몽이야 말로 학문의 발전으로 나아가는 핵심적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동서고금의 맥락에서 (동일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사례들과 논증들을 모으고, 그 과정에서 특이성들을 포괄할 수 있는 설명이 나온다면, 항상 이렇게 이론이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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