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장벽이 분석철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영어는 분석철학의 언어이다. 명망 있는 분석철학 저널에서 97%의 인용이 영어로 쓰인 작업이며, 96%의 저널 위원회 구성원들이 영어권 국가에 거주한다. 단순히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이러한 사실은 분석철학 자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른 언어로 쓰인 철학적 전통의 관점이 박탈되고, 영어나 문체가 저널 관리자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철학자들이 배제됨에 따라, 분석철학은 쇠락 상태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부터 흄과 칸트에 이르기까지, 아렌트에서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분석철학의 현재 스테레오타입에 맞지 않을 것이다. 필리포 콘테시(Filippo Contesi), 루이즈 채프먼(Louise Chapman), 콘스탄틴 샌디즈(Constantine Sandis)는 이러한 현재의 침체 상태에 몇 가지 해결책을 제공한다.

English is the language of analytic philosophy. 97% of citations in prestigious analytic philosophy journals are of works written in English, and 96% of the journals’ board members reside in English-speaking countries. That might be simply because of English being the world’s common language, but it’s having a detrimental effect on analytic philosophy itself. Deprived of the perspectives of philosophical traditions written in other languages and excluding those philosophers whose English or type of prose doesn’t pass the test of the journals’ gatekeepers, analytic philosophy has found itself in a state of decadence. From Socrates and Plato to Hume and Kant, and from Arendt to Wittgenstein, none would fit the current stereotypes of analytic philosophy. Filippo Contesi, Louise Chapman and Constantine Sandis offer some solutions to this contemporary malaise.

재미있는 기사네요. 저는 사실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분석철학의 '쇠락 상태'가 초래되었다는 주장은 다소 과장이라고 생각해요. (기사에서도 이미 나오지만) 오히려 우리 시대의 철학 연구들이 '영어'라는 공용어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국제화되고 상호연결된 세계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회"라고 봐요. 게다가, 저로서는 현재의 분석철학이 정말로 '쇠락'이나 '침체' 상태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기사 내용 중에 몇 가지 흥미로운 것들이 있네요. 가령,

(1)

최근의 연구에서, 명망 있는 영미권 철학 저널에서 출판된 논문 샘플에서 인용된 자료의 97%가 오직 영어로 쓰인 작업에 대한 인용으로 밝혀졌다. 반면, 명망 있는 비-영미권 철학 출판물은 훨씬더 폭넓은 종류의 자료를 인용하였다. 한 샘플은 44%의 동일-언어 자료, 30%의 영어권 자료, 그리고 타언어를 모두 합친 26%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었다.

In a recent study, 97% of material cited in a sample of articles published in prestigious Anglophone philosophy journals were found to be citations of work originally written in English. By contrast, prestigious non-Anglophone philosophy publications cited a much wider variety of sources: one sample was made up of 44% same-language sources, 30% Anglophone sources, and 26% all other languages combined.

비영어권 연구가 영어권 연구에 비해 좀 더 다양한 철학적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참고하는 전통이 다양할수록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지니까요. 다만, 저는 이게 언어의 문제라기보다는 철학하는 스타일의 문제가 아닐까 해요. 분석철학이 오늘날 다소 경직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 이유는 분석철학자들이 '영어'라는 단일 언어만 써서가 아니라, 분석철학의 학술 스타일이 때로는 지나치게 까다로워서라고 생각해요. 아주 정형화된 교과서적 참고문헌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하고, 아주 제한된 분량의 글을 써야 하고, 아주 좁은 주제만 다루어야 하는 스타일들 말이에요.

(2)

즉, 우리는 플라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의 변호 첫 단락에 나오는, 아테네인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탄원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계속해야 한다. 즉, 그는 "마치 내가 정말로, 자신의 모국어를 말하고 자기 나라의 방식대로 말하더라도 당신들이 용납해 줄 이방인인 것처럼" 경청되어야 한다고 탄원한다.

In other words, we should continue heeding Socrates’ plea to the Athenians in the first paragraph of his defence in Plato’s Apology: that he be heard “as if I were really a stranger, whom you would excuse if he spoke in his native tongue, and after the fashion of his country.”

서양 철학의 실질적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외국어 사용자에 비유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참 흥미롭더라고요. 비영어권 화자로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제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도 괜찮은 이유에 대한 변명거리가 한 가지 더 생긴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3)

The alternative direction is to maintain a common mainstream research language and tradition whilst increasing access and integration for those from different linguistic and educational backgrounds. Some routes to travel in this direction were identified in a set of principles recently supported by more than 700 philosophers from across 35 countries. These involve relaxing those current cultural norms that are irrelevant to producing good philosophy (recall Socrates’ reference to speaking “after the fashion of [one’s own] country”). Such norms often determine what counts as a good philosophical contribution: a non-fiction essay written in prose, articulated in self-contained paragraphs, and published in a prestigious journal, etc. Think of how few, if any, of the writings of philosophical greats would be recognized by the current mainstream. From Socrates and Plato to Hume and Kant, and from Arendt to Wittgenstein, none would fit those current mainstream stereotypes.

저도 영어를 주류 연구 언어로 유지하면서 그 이외의 다양한 언어적-교육적 배경을 가진 학자들이 더 활발하게 영어권 학술 담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의 폭을 넓히는 방안이 지향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이런 방안은 당연히 기존 분석철학의 글쓰기 규범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포함해야 한다고 보고요. (그런데 이런 방안을 제시한다는 건, 결국 애초에 문제의 본질이 언어가 아니라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기사 자체가 인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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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좀 의문인게, 영어로 쓴 분석철학 논문이라도 국가별로 학풍이 다르고 특이한 주제가 있다는걸 저자들이 지나치게 간과한거 아닌가...싶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분석미학이 굉장히 비주류적인 접근이고 학계 대부분이 프랑스 이론으로 굴러가지만 의외로 영국에서는 분석미학이 꽤 비등비등한 비중까지 올라갑니다.
한편 네덜란드나 북유럽쪽에서는 수학적 방법론과 경제학을 통합해서, 선택 이론이나 형식 인식론 같은 독특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죠.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도 의외로 괴상한 연구들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비형식 논리학과 화용론을 기반으로 한 담론의 철학이라던가 말이죠.

미국 내에서도 북동부 기독교계 사립학교의 분석철학자들은 기존 학풍과 다르게 종교적인 내용을 다루었죠. 플랑틴가라던가 올빈(?)이라던다.
이 접근이 그때는 걍 별거아니였지만, 이제 인식론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주제가 되었죠. 덕 인식론이나 믿음의 문제, 종교적 경험으로 예화되는 경험의 문제도 있고요.

생각해보면 미국 학계가 특정 주제에 편향되는건, 언어도 학풍도 아닌 펀딩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학계는 언제나 보면 유행에 민감하고 교수 자리를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흐름에 언제나 합류해야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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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사실 영어로 쓰인 글들도, 분야나 학풍에 따라 정말 내용부터 문체까지 천차만별인데, 굳이 문제를 영어의 장벽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네요. 최근에 저도 암스트롱 같은 분석 형이상학자가 보편자 논쟁에 대해 쓴 글을 읽다가 카푸토 같은 대륙철학 계열의 종교철학자가 해체주의에 대해 쓴 글을 읽었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이 같은 '철학자'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글의 갭이 컸던 게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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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된 글에 대해 하고픈 말은 많습니다만 ...

철학 이상으로 '서구 중심주의'적인 이공계 학문에서 역설적으로 '비-서구' 학자들의 위상이 철학에서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큰 점, 그리고 (사실 정확한건 데이터를 봐야겠지만) 철학 중에서도 논리학/논리철학/형식 인식론 등의 분야에서 저자들의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이 타 분야보다 더 두드러져 보이는 점은 의미심장한 함축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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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약간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저는 철학 연구가 이공계 학문처럼 진행되는 게 꽤나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20세기처럼 아주 다양한 글쓰기 스타일과 논의가 자유롭게 용인되고, 그 속에서 대가들이 지속적으로 출현할 수 있다면야 가장 좋겠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다면, 차라리 이공계 학문처럼 평가 기준이라도 명확하게 합의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다양성을 허용한다는 명목으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자의적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철학 연구의 누적이나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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