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연재글]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가 (2)

오랜만에 번역하니 재밌어서 조금 더 해봤습니다!


콰인의 예시는 분석철학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처럼 형이상학으로부터 자유로운 지대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기시켜주는 예다. 콰인 이전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있었고 그는 분석적 전통에서 명시적으로 형이상학적 이론화에 개입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형이상학의 비판자들은 그들 스스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형이상학적 가정에 의존한다고 지적한 브래들리(F.H. Bradley)가 어쩌면 옳았을 지도 모른다. 여하건 간에, 분석적 전통의 역사에서 형이상학의 역할과 지위는 상당히 바뀌었고 우리의 관심사는 바로 이 바뀐 형이상학에 있다.
양상 실재론에 대한 루이스의 옹호는 시간이 갈수록 발전했다. 1968년의 논문에서는 양상 언어와 비양상 언어의 관계와 루이스의 상대역 이론이 갖는 비양상 언어로 양상 언어를 번역함으로써 양상 논리를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상대역 이론의 공준들(postulates)은 양상 논리의 기초 원리들을 타당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지만 나아가 형이상학적 그림을 명료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했다. 예컨대 루이스에 따르면 두 세계에 존재하는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준은 가능세계들 간의 개체 동일성 문제에 대해 그런 동일성은 없다고 단번에 대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 이는 또한 통세계적 개별화(trans-world individuation)의 불분명성에 대한 콰인의 비판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가 이제는 양상 실재론의 고전 격이 된 그의 저서 『세계의 다수성에 관하여』(On the Plurality of the World; 1984년 존 로크 강연을 기반으로 저술됨)를 쓸 시기에 그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었다. 그는 언어적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적게 다루는 한편 대부분은 언어적인 것이 아닌 많은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이론적 틀로서의 양상 실재론에 대해 귀추적 장점(abductive advantage; 역자-쉽게 말하면, 이러저러한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최선의 이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에 대해 더 많이 다루었다. (결과적으로는 일상적인 양상 언어의 형식화인) 양화 양상 논리의 언어와 상대역 이론의 언어 사이의 구체적인 번역 도식에 대한 반론에 대해 그는 세부적인 것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대신 양화 양상 논리의 언어를 포기하고 더 명료한 언어인 상대역 이론의 언어를 가지고 직접적인 형이상학적 이론화를 하자고 말했다. 1968년부터 1986년까지 루이스의 작업에서 힘의 균형은 언어 철학에서 멀어져 형이상학으로 향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1981년의 글에서 루이스는 “철학자의 합리적 목표”를 우리의 의견(opinion)을 안정적인 균형 상태(stable equilibrium)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상식적 믿음들”을 잃어가는 것의 문제는 상식이 오류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안정적인 균형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우리의 일상적 믿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는 균형 상태가 이론적 성찰 아래에서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원칙적으로 이는 철학과 과학이 함께 믿음의 거미줄에 걸리는 긴장을 조정해야 한다는 콰인의 방법론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루이스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른 믿음들이 주어져있다고 할 때, 양상 실재론이 다른 양상 형이상학의 이론들보다 이러한 이론적 성찰 하에서의 안정성 측면에서 더 나은 이론이다. 물론 많은 철학자들은 양상 실재론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우리의 상식적인 믿음들을 잃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루이스는 일상적인 상식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를 양상 실재론과 일관되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 능했고 종종 그러한 발화들이 암묵적으로 깔고 있는 상당히 많은 맥락적인 제약들을 상정함으로써 그런 해석이 가능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말하는 당나귀가 존재하느냐와 같은 문제처럼 양상 실재론과 상식 사이에 불일치가 있다는 것을 그도 인정하긴 했지만, 그는 그러한 불일치를 상식보다 낮은 우선순위를 갖는다고 그럴듯하게 간주할 수 있을만한 난해한 영역으로 이끌어 내리는 데 어렵사리 성공했다. 비판자들은 루이스가 상식으로부터 과하게 벗어나버렸다고 비난하는 반면 루이스는 그의 양상 실재론을 상식에 대한 방어의 한 부분으로 보았다. 마치 버클리(George Berkeley)가 자신의 주관적 관념론을 보는 방식으로 말이다.
의견을 안정적인 균형에 이르게 하는 것은 실제로 어떤 의견들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포괄적인 성찰의 과정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일반적인 믿음들은 통상 문장들에 의해 표현되는 것으로서 그 사람에게 제시되는데, 그 저변의 의미론적 구조가 그 사람 본인에게도 완벽하게 투명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가 성찰을 통해 자신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때 그는 자기 자신의 언어에 대한 의미론적 성찰로 이끌려간다고 여기거나 혹은 자기 자신의 개념적 체계에 대한 성찰로 이끌려 간다고 여긴다.
루이스의 콰인적 혹은 적어도 포스트-콰인적 방법론과 자연스럽게 견주어지는 것은 일상 언어 철학의 전통에 있었던 철학자이자 콰인의 대표적인 적수였던 피터 스트로슨(Peter Strawson)의 방법론이다. 그러나 1950년대 말엽 “일상 언어 철학”은 더 이상 스트로슨의 작업에는 걸맞지 않는 문구였다. 그는 그 문구가 암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추상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관심사는 일상적 언어의 세부적인 용법에 관한 것이라기 보단 주어와 술어의 구분과 같은 일상적인 사고와 말의 아주 일반적인 구조와 관련된 것이었다. 1959년에 그는 “기술적 형이상학에 대한 논고”(An Essay in Descriptive Metaphysics)라는 부제가 달린 저서 『개체들』(Individuals)을 출간했다. 이는 그 당시에 분석철학 안에서 형이상학의 복원이라는 전환점을 찍는 것으로 여겨진 주요 저작이었다. 스트로슨은 기술적 형이상학과 그보다 조금 더 과감한 교정적 형이상학(revisionary metaphysics)을 대조했다. 이런 대조는 비록 “부분적인 관점”이긴 했지만 어쨌든 “기술적 형이상학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에는”유용한 것이었다. 교정적 형이상학은 우리 사고의 주변부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역사를 갖지 않는 인간 사고의 거대한 핵심부”를 수정하고자 할 때는 잘못된 길로 빠진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성격 상 전혀 바뀌지 않는 범주와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 형이상학이 의도하는 것은 바로 그 핵심부를 구성하는 개념적 연관관계를 기술하는 것이다. 순환적이지 않은 필요충분조건을 통한 정의와 그것을 통한 개념 분석의 기획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스트로슨의 관점에서 그러한 구조는 위계적이지 않다. 오히려 기술적 형이상학자는 복잡한 폐곡선 위를 돌아다니듯 동등한 층위에 있는 개념적 상호연관관계를 추적한다. 이러한 탐구는 수직적이라기보다 수평적이다.
주변부를 교정하긴 하겠지만 일상적 사고의 핵심부를 기술하기만 해야 하는 스트로슨의 형이상학이 우리의 의견을 균형에 이르게 하면서 상식적인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루이스의 형이상학이 어떤 측면에서 본질적으로(in kind) 다른가? 이 지점에서 루이스가 스트로슨의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루이스는 1959년에서 60년까지 스왓스모어 대학(Swarthsmore College)에서 옥스포드 대학에 방문학생으로 와있었고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은 그의 튜터였다(역자-옥스포드 대학의 각 칼리지에 속한 학부생들은 강사 혹은 교수가 배정되어 1주일에 한 번씩 개인 수업을 합니다). 그 해에 그는 이전에 전공하던 화학 대신 철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고, 결과적으로 기념비적인 한 해가 되었다. 물론 스트로슨이 개념적 연결을 추적하는 것으로서 기술적 형이상학을 특징지을 때 그는 모종의 분석-종합의 구별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분석-종합의 구분은 콰인의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비판에 맞서 그의 스승이었던 폴 그라이스(H.P. Grice)와 함께 방어하고자 했던 구분이었다. 콰인은 복잡한 폐곡선을 그리는 정의들(definitions)이 결국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럽게 설명되지 못한다는 점을 보이고자 “분석적”으로부터 추적을 시작하여 다른 의미론적 용어를 거쳐 다시 그것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콰인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본 바로 그 설명이 기술적 형이상학자들이 추구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 루이스는 그의 나중 스승(콰인)이 아니라 이전 스승(스트로슨)의 편에 섰다. 루이스의 첫 저서는 분석적 참을 모든 가능세계에서 참인 것으로 복원시키는 시도와 함께 서문에 쓰인 콰인의 유감으로 결론 맺는다. 스트로슨과 루이스 모두 분석-종합 구분을 받아들였지만 철학적 작업에서는 그들 중 누구도 입버릇처럼 그것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런 것은 종종 재주가 좀 떨어지는 사람의 몫이곤 한다. 한 가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루이스보다 스트로슨이 더 철학적 문제를 그 문제가 다루는 주제 자체가 아니라 단어나 개념에 관한 문제로, 혹은 우리가 그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how we must think about a subject matter)의 문제로 특징짓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의 논의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도 보았듯이 자주 메타 언어적이었고 스트로슨은 “사람은 신체를 가진 자아(embodied ego)가 아니지만 자아는 신체가 없는 사람(disembodied person)일 수도 있다”처럼 평이한(ground-level) 형이상학적 표현 양식으로 말하려 했다. 두 사람 모두 그때그때 논증 상의 필요성에 따라 대상 언어와 메타 언어 사이를 쉽게 옮겨 다녔다. 콰인은 철학과 자연 과학 사이의 연속성을 역설했지만 스트로슨은 그러지 않았다. 이 점에서 루이스는 스트로슨보다는 콰인에 가까웠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의 작업에서 자연 과학은 매우 작은 역할을 할 뿐이었다. 한 가지 좋은 테스트가 있는데, (대상의 시간지속성에 관하여) 대상이 시간적 부분을 갖지 않고 그것 자체로 시간 속에서 지속된다고 주장하는 3차원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과 대상의 시간적 지속은 연속되는 시편(time-slices)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보는 4차원 형이상학 사이의 논쟁을 그들이 어떻게 다루는지 보는 것이다(종종 후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도 연관된다). 예상할 수 있듯이 스트로슨은 3차원주의자이고 콰인과 루이스는 4차원주의자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콰인과 루이스가 4차원주의를 지지하는 논증을 펴면서 상대성 이론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어와 대상』(Word and Object)에서 콰인은 시간과 공간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매끄럽다는 장점을 강조한다. 그는 그저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을 발견한 것은 “시간을 공간처럼 다룸에 있어서 그것 외에 합리적인 다른 대안을 남겨두지 않았다”고 언급하면서 몇 마디 덧붙일 뿐이고 그 뒤에 바로 붙여 4차원주의의 논리적 이점은 “아인슈타인의 원리와는 독립적이”라고 지적하며 “시제를 포함하는 문장을 시간과 대상에 관한 영속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용어로 재기술하는 아이디어는 아인슈타인보다 훨씬 먼저 있었다”라고 덧붙인다. 『세계의 다수성에 관하여』에서 루이스는 4차원주의를 옹호하면서 아인슈타인을 언급하거나 현대 과학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의 논증은 그저 일시적인 내재적 속성, 예컨대 모양(shapes)과 같은 것에 대한 불안정하고 낡은 순수한 형이상학적 논증에 의존해있다. 아마도 루이스는 특수상대성 이론이 정말로 시간을 공간처럼 다루는 다른 대안을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결론을 지지하는 그 놀라운 결과를 언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루이스의 논증을 구성하는 세부적인 것들이 시간 연산자를 설명적으로 기초적인 것(explanatorily basic)으로 다루고자 하는 접근을 진지하게 다루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진짜로 결정적이었던 것은 형이상학을 하기에 적합한 언어는 수학의 언어와 비슷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콰인적인 선입견이었다는 인상을 피하기는 어렵다. 물론 『세계의 다수성에 관하여』를 훑어 넘기다 보면 『개체들』의 지면처럼 논리식이 없는 영어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가 목표로 삼았던 체계성은 수학적 언어로 정교화된 과학적 이론을 본으로 삼은 것이었다. 반면 스트로슨이 추구했던 체계성은 다른 것이었다. 이는 영어 혹은 다른 자연 언어 안에서의 일반적 설명(account)을 만족시키는 것으로서의 체계성이었다. 콰인과 루이스가 높이 샀던 형식 논리학적인 매끄러움 같은 것을 스트로슨은 덫으로 간주했다. 이런 덜 표준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스트로슨과 루이스, 심지어는 그들의 형이상학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트로슨은 일상 언어 철학자의 마음을, 루이스는 이상 언어 철학자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광범위하게 상식(혹은 자연 과학)을 부정하는 것을 꺼렸지만 상식의 가장자리에 교정 가능한 의견이 있는 지대(a belt of revisable opinions)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긴 했다. 지적인 가치에 관한 이러한 미묘한 차이로 인해 그들은 판이하게 다른 이론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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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재밌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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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재밌어요 ㅠㅜ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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