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Rorty, 「Idealization, Foundations, and Social Practices」

우리 실천에 대한 이상화와 그 실천에 대한 토대는 구분해야 한다. 이상화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실천을 더 일관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루며, 이에 대해 어떤 것은 경시하고 또 어떤 것은 강조하는 방식으로 답한다. 극도로 추상화된 수준의 정치적 논쟁은 일반적으로 대립하는 이상화 사이의 논쟁이고, 우리 공동체의 유토피아적인 미래에 대한 대립하는 버전들 사이의 논쟁이다.

토대는 ‘현재의 실천에 왜 계속 참여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 토대주의자들은 질문에 답하며 우리의 실천을 더 일관적인 방식으로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실천과 유리되어 존재하는 ‘인간 본성’, ‘이성’, ‘도덕성’ 등을 내세워서 답변하고자 한다.

반토대주의자들의 눈에는 실천을 실천 외부의 것 위에 정초하는 토대주의자들의 시도는 항상 부정직하다. 실천 외부에 있다고 가정되며 우리 실천을 근거 짓는 ‘인간 본성’, ‘이성’, ‘도덕성’ 등은 단지 우리가 촉진하고 싶은 인간 산물의 일종을 축약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성을 ‘진리의 원천에 대한 이름 혹은 진리의 판정자’라고 여기는 토대주의자들과 달리,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따라서 설득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이름’으로 여겨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정치적/도덕적 숙의에 대한 하나의 언어 및 이 언어와 연결된 사회적 실천이 다른 것보다 더 이성적이라고 말할 방도는 없다. 또한 그러한 언어와 실천이 우리 인간 본성을 기준으로 봤을 때 더 진실하다고 말할 방도는 없다.
그래서 반토대주의자들은 공유된 전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제거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 근저에는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사고하는 능력을 ‘우리 문화와 역사의 우연성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표상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언어를 ‘실재를 표상하는 무언가’가 아닌 ‘타자의 불신을 약화하는 도구’, ‘우리와 매우 다른 것에 대한 공감과 신뢰를 형성하는 능력’이라면, 우리 실천과 유리된 확고한 토대 없이 ‘적절한 신뢰’를 통해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다.


출처: 벤하비브, 1996, Democracy and Difference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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