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기데거(Parkidegger): 박이문의 하이데거 해석에 대한 단상

(1) 박이문 교수의 「시와 사유: 왜 하이데거는 중요한가?」라는 논문을 읽었는데, 논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데거가 너무 '체계적으로' 잘못 파악되고 있다. 박이문 교수는 본인의 예술론을 전제로 하이데거를 독해하고 있다 보니, 하이데거가 강조하는 개념들과 핵심 표어들이 전부 박이문 교수식으로 끼워 맞추어져버렸다. 드레이퍼스가 독해한 하이데거가 '드레이데거(Dreydegger)'라고 불리고, 크립키가 독해한 비트겐슈타인이 '크립켄슈타인(Kripkenstein)'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박이문 교수가 독해한 하이데거는 '바기데거(Parkidegger)'라고 불릴 수 있을 것 같다.

(2) 박이문 교수는 사르트르의 즉자존재/대자존재 구별을 바탕으로 본인의 예술론을 제시한다. 그 예술론 자체는 꽤 재미있다. 인간이 순수한 의식일 수도 없고 순수한 사물일 수도 없기 때문에, 그 사이의 갈등 속에서 시를 비롯한 모든 예술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 박이문 교수의 예술론에서 제시되는 핵심 주장이다. 문제는, 그 주장을 하이데거 독해에도 그대로 적용시킨 나머지, 하이데거가 애초에 그런 이분법적 구분을 비판하면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완전히 간과되어버리고 만다는 점이다. 그래서 박이문 교수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자신의 도식에 잘 들어맞지 않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애매모호하다.", "모순적이다."라고 너무 손쉽게 처리하거나 비판해버린다.

(3)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하이데거를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솔직한 태도이기도 하다. 하이데거 전문 연구자들은 하이데거의 사유에 대해 직설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을 대단히 꺼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하이데거의 철학을 지나치게 신비적인 것으로 미화하는 나머지, 하이데거를 자기 관점에서 정리하거나 비판하려는 시도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하이데거 연구들과 비교해 보면, 분명히 박이문 교수의 논문은 개성이 강하고 도전적이라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사르트르의 즉자존재/대자존재 구분을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적용시키는 것은 결코 하이데거에 대한 정확한 독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4) 그래서 이 논문은, 상당히 솔직하게 쓰인 글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안타깝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지닌 전체적인 면모를 평이한 언어를 통해 비판적으로 조망하려는 시도가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전체적으로 어그러뜨리고 있어서 정말 마음이 아플 지경이다. 박이문 교수처럼 좋은 필력과 성실함을 갖추신 학계의 원로들이 하이데거의 존재론 같은 '1급' 사유를 잘 정리하고, 널리 소개하고, 제대로 비판해주어야 철학계의 학문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이문 교수의 하이데거 논문은, '철학 논문'으로서는 꽤나 좋은 글이지만, '하이데거 연구 논문'으로서는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서 이쪽 분야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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