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삶-긍정(life-affirmation)과 삶-강화(life-enhancement) 개념 구별

우선 답변에 앞서 솔직히 제가 영원회귀 개념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른다는 점부터 말씀드릴게요.

(1) 기본적으로 니체의 정치사회철학적 면모를 탐구하는데 있어 영원회귀 개념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니체라는 도구를 통해 정치사회철학을 하는 제 입장에서 영원회귀 개념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2) 저는 영원회귀 개념에 큰 비중을 두고 연구하는 것 자체에도 꽤나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영원회귀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구절이 사실 몇 없기 때문입다 (『즐거운학문 340-342』, 『차라투스트라』 속 단문 및 출간저작 몇몇, 마지막으로 『유고』 곳곳).
일단, 저는 니체 연구에 있어 『유고』를 연구 사료로 채택하는데 부정적인 입장입니다(니체 연구에서 사료 인정에 관한 입장들). 그래서 영원회귀와 관련해 아주 유명한 다음의 유고 구절을 통해 이론을 구축하는 작업에도 회의적이구요.

내 사상이 가르치는 것: 다시 살고자 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사는 것, 그것이 과제이다-너는 꼭 그렇게 될 것이다!
KSA,9 11[163]; 책세상 니체전집 12권 pp.500-501.

마찬가지로, 『차라투스트라』를 연구 사료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도 또한 부정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문학적 색채가 강한 작품으로 어떤 철학을 구축해내는 게 쉽지 않으며, 최소한 저에겐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제 입장이 크게 독특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말씀하신 『차라투스트라』 속 "당나귀의 영원회귀"같은 것들을 철학적 개념화하길 꺼립니다.

the philosophical participants are avoiding the poetic work that Nietzsche said was the key to understanding his doctrine(eternal recurrence 별첨)— Thus Spoke Zarathustra
Gemes, K., & Richardson, J. (Eds.). (2013). The Oxford Handbook of Nietzsche . Oxford University Press.

scholars today, as we have seen, dismiss as absurd the idea that life eternally recurs, ignore or misread those places in which Nietzsche claims to have discovered this, and argue that Nietzsche’s published writings show no interest in the truth, warrant, or cosmological aspects of eternal recurrence.
ibid.

(3) 그래도 아는 한 최대한 답변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일단 인용하신 수업 강의록의 주장 "영원회귀는 기본적으로 힘을 외부로부터 부정적으로 매개하는 것들은 다시 회귀하지 못하게 선별한다"에 반대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를 "영원히 존속하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들이 같은 것으로 회귀(변화, 운동)한다"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영원회귀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신의 삶에서 결코 회귀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예컨대 강의록 속 '부정적으로 매개하는 것들')까지도 영원히 반복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마주해야합니다. 바로 이런 윤리적 태도를 강조하는 것이 니체의 의도(강의록 속 '긍정하는 능력의 시금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대립하는 것이) 영속한다라는 쪽으로 해석하는 편이 ‘힘과 힘 사이의 상호 의존성(혹은 권력-저항의 필연성)’을 말하는 니체의 주장과 정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경우, 주장(a)에 따르면 모든 것이 회귀하지는 않기 때문에 (a)는 틀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장(b)처럼 영원회귀를 받아들이면, 회귀하는 모든 것 바깥에 또 무엇인가가, 순수한 이론적 관점(일종의 세계 외 존재)이 존재한다는 것이므로 모든 것이 회귀하지 못합니다. 외부의 관점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같은 것으로 회귀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회귀'와 '나중의 회귀'를 구분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결국은 "단순히 회귀의 수"을 기준으로 해서라도 구별해야만 합니다. 이 경우도 역시 "회귀의 수"가 반복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회귀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렇게 영원회귀가 엄밀한 개념화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니체가 애초에 이러한 역설을 의도했다고 생각합니다. 즉, 니체는 존재의 영원함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세계에 시간(생성)의 영원함을 도입하는 영원회귀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무시간적으로 보였던 초월적 기준(실재)가 허구는 아닐지, 나와 관계없이 별개로 존재하는 외부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게해주는 선생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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