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ry Smith의 데리다 비판 이후의 인터뷰

  • 대륙/분석 갈등에 흥미를 갖고 철학사 책을 몇 권 읽었었는데, 막상 데리다 학위 논쟁의 주인공인 Barry Smith의 그 편지와 인터뷰를 찾아본 적은 없는 것 같아서 한번 읽고 재밌어 보이는 부분을 발췌 요약했습니다. 순서는 97년의 인터뷰< Revisiting The Derrida Affair with Barry Smith> 요약/ 92년 편지 전문입니다.
  • 기본적으로 저는 스미스의 입장과 유사하기는 한데요, 지나친 면도 없지 않고, 인터뷰 중간에 언급되듯 정치적인 이슈가 섞여 있다는 것이 재미있네요 ([[Chisholm, R]]의 서명 거부, 공산주의 붕괴와 서구 이성에 대한 비판)

아래 글과 비교해서 보시면 더 재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Interview with Barry Smith

  • Q: 편지의 배경?
    • A: 내(Smith) 배경: Oxford에서 수학과 철학 공부. [[Dummett, M]] 아래에서 수학. 그는 철학을 단순한 놀이로 보지 않았다. 그 덕에 대륙철학에 관심을 갖고 Frege,프랑스 철학, 독일 철학, 오스트리아 동유럽 철학 순으로 공부했다.
  • Q: 놀이로 보지 않았다? 설명 필요. [[Wittgenstein, L]]은 어떤가?
    • A: 일부 교수는 철학을 시간 떼우기로 여겼다. 비트겐슈타인은 아니고, 그의 일부 추종자는 그런 것 같기도.
  • Q: 프랑스 철학에서는 뭘 읽었나?
    • A: [[Sartre, J.P.]], [[Merleau-Ponty, M]], [[Foucault, M]], [[Camus, A]] 등. 이후 동유럽으로 흥미가 흘러갔고 교류도 많았다. 내가 일하던 UoM은 영국에서 유일하게 현상학을 연구하던 곳이었다.
  • Q: Manchester에서 얼마나 오래?
    • 10년정도
  • Q: 교류의 성과는?
    • 7080시절 동유럽 철학은 젊고 흥분해 있었다. 내 책 [[Austrian Philosophy]]를 참고하라.
  • Q: 반대 이유 중에 데리다의 [[Husserl, E]] 해석에 대한 이유도 있나?
    • A: 그렇다. 나는 데리다의 글을 열심히 읽었는데, 그는 문헌에 대한 학문적 이해가 부족하다. [[Evans, C]]나 [[Mulligan]]의 데리다 비판을 참고하라.
  • Q: 당신 지도 교수 [[Mays, W]]가 데리다를 칭찬했는데?
    • A: 그(와 그의 시대)는 대륙철학 전반에 호의적이다. 그러나 국적에 관계없이 해로운 것은 거부해야 한다.
  • Q: 당신은 하이데거에 대해서도 강의 했다던데?
    • A: 대륙철학 강의를 많이 했고, [[Ingarden, R]]과 [[Heidegger, M]]는 높이 평가한다. [[A.Tarski]] 다음으로 중요한 폴란드 철학자다.
  • Q: [[Heidegger, M]]와 [[Derrida, J]]의 관계는?
    • 하이데거가 낫다. 데리다의 철학은 하이데거와 니체에게서 이미 발견된다. 하이데거는 기술과 일상성을 경멸하지만 어떤 가치 체계는 있다. 니체는 해체에 대한 독창적 의견이 있다. 데리다의 사상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그의 해체가 재밌을 수는 있지만, 그의 지적 기행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는 것은 재미 없다.
  • Q: 하이데거는 과학의 역할을 꽤 존중한 것 같다.
    • 하이테거 이전의 현상학은 과학적이고 진지한 철학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는 하이데거에 의해 끝났다.
  • Q: 분석철학이 과학을 인간 현실에서 멀리 떨어지게 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잉가르덴이 이 비판의 시조 아닌가?
    • 나는 초기 realist 현상학자들처럼 생각한다. 인간 행위에 관한 존재론적 탐구는 우리 감수성을 이끌기 위한 것이 아니다.
  • Q: 편지 사건에 참여한 동기는? 철학적인 것인가?
    • A: 그때 까지는 독일에 있었다.
    • A: 베를린 장벽과 공산주의 붕괴 후, 동유럽에서 공산주의와 서구 이성은 동일시 되었다. 공산주의 붕괴는 서양철학, 진리, 이성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 틈을 데리다가 채웠다.
    • A: 케임브리지의 몇몇 친구들도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 A: 동유럽에서 데리다가 받아들여지게 되면서, 철학적 진리와 이성의 중요성을 수호할 필요를 느꼈다.
  • Q: 서명을 받는데 어려움이 있었나?
    • A: 많았다.[[Searle, J]]은 데리다를 비판하면서도 응답은 안했다.[[Chisholm, R]]을 포함한 많은 미국 학자들이 주로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며 거부했다. 프랑스 학자들은 데리다의 이웃이었고 자주 만났기 때문에 거부했다. 한 명 [Thom, R]]에게 서명을 받앗다.
  • Q: 데리다는 학문적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반발했다.
    • A: 학문적 자유에는 학문적 책임이 따른다.

Appendix : Derrida 학위 문제

  • Barry Smith 교수 및 기타
  • 친애하는 선생님, Cambridge University는 5월 16일에 M. Jacques Derrida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할지를 투표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M. Derrida의 주목할 만한 경력에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관심을 가진 철학자들로서, 다음과 같은 점이 공개 토론에 필요한 빛을 던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 M. Derrida는 자신을 철학자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의 저작물은 그 분야의 특징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거의 전적으로 철학 이외의 분야, 예를 들어 영화학과 프랑스 및 영어 문학과 같은 분야에서 나타났습니다.
  • 철학자들의 눈에 비추어볼 때, 그리고 세계의 주요 철학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M. Derrida의 작업은 수용되는 기준의 명확성과 엄격성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 우리는 (말하자면,) 물리학자의 작업이 다른 분야에서 주로 인정받는다면, 그 물리학자가 명예 학위 후보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결여되었다고 봅니다.
  • M. Derrida의 경력은 1960년대의 절정기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의 저작물은 여전히 그 시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중 많은 부분이 그가 추구하는 과장된 농담이나 'logical phallusies' 같은 단어 유희로 구성되어 있으며, M. Derrida는 우리가 보기에 다다이즘이나 구체시(concrete poets)의 트릭과 유사한 것들을 학문적 영역으로 번역해 경력을 쌓은 것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 물론 그는 이 점에서 상당한 독창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독창성이 그가 명예 학위 후보자로 적합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프랑스 철학자들은 M. Derrida가 조용한 당혹감(silent embarassment)을 초래할 뿐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그의 행동은 현대 프랑스 철학이 조롱의 대상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 M. Derrida의 방대한 저작물은 우리가 보기에 정상적인 학문적 학습의 형태를 뛰어 넘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독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그의 저작물은 이해할 수 없는 저술 스타일을 사용합니다. 많은 이들이 M. Derrida에게 의심의 여지를 주려는 마음으로, 그러한 심오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언어 속에 깊고 미묘한 생각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 그러나 이 언어를 파헤치려는 노력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적어도 일관된 주장이 있을 경우, 그것이 거짓이거나 사소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우리의 의견으로는, 진리, 이성, 학문적 가치를 공격하는 것에 불과한 상태에서 학문적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명문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수여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진심을 담아,
Barry Smith
(편집자, The Monist)

서명자: Hans Albert (University of Mannheim), David Armstrong (Sydney), Ruth Barcan Marcus (Yale), Keith Campbell (Sydney), Richard Glauser (Neuchatel), Rudolph Hailer (Graz), Massimo Mugnai (Florence), Kevin Mulligan (Geneva), Lorenzo Pefia (Madrid), Willard Van Orman Quine (Harvard), Wolfgang Röd (Innsbruck), Edmund Ruggaldier (Innsbruck), Karl Schuhmann (Utrecht), Daniel Schulthess (Neuchatel), Peter Simons (Salzburg), René Thom (Burs-sur-Yvette), Dallas Willard (Los Angeles), Jan Wolenski (Cracow).

9개의 좋아요

흥미로운 글 번역 감사합니다. 전 왠지 모르게 데리다에게 학위 수여를 거부하려 했던 곳이 예일대라고 잘못 알고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