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윤, 「니체주의적 경합적 민주주의는 샹탈 무페 모델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시대와 철학』, 제34권 4호, 2023

2023년 마지막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요약문
본 논문은 니체에 기반한 경합적 민주주의 모델이 샹탈 무페 모델의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는지 검토한다. 경합적 민주주의 이론은 칼 슈미트 또는 니체를 사상적 원천으로 지닌다. 한국에서 자주 논의되는 무페가 슈미트의 철학에 기반하여 자신 고유의 경합적 민주주의 모델을 구성한다. 그러나 슈미트에 근거를 두는 그녀 모델은 다음 네 비판에 취약하다. 첫째, 정당한 상대방과 적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 둘째, 적대의 존재론적 근본성과 적대 아닌 경합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비일관적이다. 셋째, 그녀가 말하는 경합은 자기 보존이라는 텔로스에 갇혀 있어 실질적으로 다원적 세계를 포착하지 못한다. 넷째, 경합 유지 수단에 관한 이론적 요소가 없고, 경합을 유지할 수 있는 갈등의 정도에 대한 설명도 없다. 무페와 달리 코널리와 오웬을 비롯한 니체주의자들은 니체에 기반하여 경합적 민주주의 모델을 구축한다. 필자는 니체의 텍스트와 니체주의자들의 논의를 분석 및 재구성한 후, 니체주의적 모델이 앞서 언급한 무페 모델의 한계들을 다소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들어가는말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면모를 없애기 위해 과거의 여러 철학을 재조명하고 현대화하는 것이 오늘날 사회철학자의 임무이다. 슈미트와 맑스, 그리고 포스트 구조주의를 절합하여 현대적 경합적 민주주의 이론을 만들어낸 샹탈 무페(이하 무페)의 작업이 좋은 예이다. 무페의 작업은 그 참신함 덕분에 기존 맑스주의, 숙의 민주주의 이론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한국에서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반면 영미권과 네덜란드의 니체주의자들이 니체를 토대로 구상한 니체주의적 경합적 민주주의가 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무페 또한 자신 저작을 통해 니체주의 모델과 자신 모델을 대결시키고 있는바, 한국에서 경합적 민주주의에 관한 깊이 있는 담론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니체주의 모델에 대한 이해와 검토가 필요하다.
본 논문은 니체주의적 경합적 민주주의를 소개하고 철학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양한 영역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어 낸 경합적 민주주의 이론은 근거하는 사상을 기준으로 니체 기반 모델과 슈미트 기반 모델로 나뉜다. 후자의 대표주자가 한국에서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무페이다. 반면 전자 또한 경합적 민주주의의 한 축을 담당함에도 국내에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국내의 사회철학계와 니체 학계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니체주의적 경합적 민주주의를 소개하고, 그들이 무페 모델의 이론적 한계를 뛰어넘을 잠재력이 있는지 검토할 것이다. 우선 경합적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세 가지 철학적 요소를 설명한다(2장). 그에 기반하여 무페의 모델을 재구성하고(3장 1절), 이론적 한계를 짚어본다(3장 2절). 다음으로 니체 텍스트 분석을 통해 니체주의적 경합적 민주주의가 성립 가능함을 보이고(4장 1절), 니체주의 모델을 자세히 살펴본다(4장 2절). 앞선 내용을 종합하며 니체주의 모델이 무페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는 더 좋은 모델인지 견주어 본다(5장).

나가는말
지금까지 두 경합적 민주주의 모델을 소개하고, 두 모델의 한계점까지 살펴보았다. 슈미트에 기반한 무페 모델은 다음의 네 비판에 취약함을 알 수 있었다. 첫째, 그들을 정당한 상대방과 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모호하다. 둘째, 적대의 존재론적 근본성과 적대 아닌 경합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비일관적이다. 셋째, 무페가 말하는 경합은 자기 보존이라는 텔로스에 갇혀 있다. 넷째, 경합 유지 수단에 관한 이론적 요소가 없고, 경합을 유지할 수 있는 갈등의 정도에 대한 설명도 없다. 반면 니체주의 모델은 무페와 사상적 토대를 달리하기에 앞선 세 비판을 피해갈 수 있었고, 네 번째 비판에도 어느 정도 반박할 이론적 힘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니체주의 모델이 무페 모델보다 더 합리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니체주의 모델도 무페와 마찬가지로 ‘경합을 가능케 하는 갈등의 정도’에 대한 비판에 대해 좋은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무페와 달리 ‘결정의 순간’에 관한 설명이 부재하다는 비판에도 취약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니체주의자들에게 남은 과제는 자신의 두 한계를 보완할 방도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본 논문의 한계 또한 분명하다. 본 논문은 많은 니체주의 모델 중에서 코널리와 오웬을 중심으로 다뤘기에, 지멘스와 하탑 등 다양한 니체주의 모델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심지어 코널리와 오웬이 푸코에게 영향받은 면모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러한 점들을 차후에 설명하는 것이 필자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참고문헌
김도윤. 2023. 「니체 철학의 사회철학적 재구성 흐름에 대한 비판적 점검: 공동체주의와 대안적 독법을 중심으로」. 『사회와 철학』 45(1):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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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간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잘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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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히 잘 읽어보았습니다. 특히나 논문 초반부 무페 모델에 대한 요약과 비판이 너무 명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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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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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논문 발표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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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논문 잘 읽어보았습니다. 좋은 글을 읽고 생각할 기회를 주신데 먼저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글에 대해 제 개인적인 생각들을 조금 말해보려 합니다.

(1) 칼 슈미트나 샹탈 무페의 민주주의 이론이 적과 동지(슈미트) 혹은 정당한 상대방과 적, 동지(무페)의 개념을 중심으로 단순화되어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 제일 처음 드는 인상이었습니다.

즉, 칼 슈미트의 민주주의 이론은 그의 헌법학/헌법철학의 논의에서 1) 대의제와 민주주의, 대표의 원리와 동일성의 원리 등을 근대국가적 틀 안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고, 2) 그의 또다른 중요한 이론적 개념으로서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동일성 민주주의, 그리고 그의 국가사회주의적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 그가 고수했던 결단주의 헌법관과의 관련 내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논문의 주제와 분량이 한정되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텍스트 내에서 슈미트의 견해가 한정되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 염려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우 각주로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는 것도 좋은 대처일 수 있을 것입니다.

(2) 그리고 위의 (1)과 연속되는 논의이긴 하지만,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관련해서 더욱 생각해 볼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의 '정치적인 것'은 1) 국가를 전제로 하지 않은 경우의 논의, 즉 적과 동지의 구별 이론으로도 논의되지만, 동시에 2) '정치적인 것이 곧 국가적인 것'이라는 옐리네크(Jellinek)의 논지를 이어받아 국가의 선존재를 가정하는 정치신학적 차원에서의 논의도 포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어요.

이 적과 동지의 구별은 3) 결단주의적 헌법이론의 틀 안에서 '적과 동지에 관한 결단'으로 새로이 파악되며, 이는 어떤 비상적 상태를 전제하거나 염두에 두는 사정하에서 이루어집니다. 즉, 적과 동지의 구별에서 도덕적, 윤리적 맥락이 제거되어 있긴 하지만, 그러한 개념쌍을 도입한 것 자체가 이미 정치적 통일체(die politische Einheit)의 비상적 상황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라 이해됩니다. 이러한 문맥이 샹탈 무페의 경합적 민주주의 논의의 이론적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됩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선생님의 논문 자체와 깊은 관계는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3) 마지막으로 니체의 경합적 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니체 자신이 反민주주의적인 색채를 띄는 주장들도 했다는 점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니체의 주장은 단순히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그 뉘앙스에 있어 미묘하고 단순한 부정적 견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니체의 틀 안에서 계속 논의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점을 규명하고 해결하여야 하는 것이 선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4) 전체적으로 수려하고 대단히 논리적으로 명쾌한 논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요, 다음에도 좋은 논문으로 널리 인정받으시길 바래봅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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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논문을 읽고, 또 상세히 코멘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지적해주신대로 슈미트의 철학 내에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제가 슈미트의 철학을 '친구/적' 개념을 중심으로 단순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제 논문의 메인 이슈이자 슈미트의 철학을 이어 받아 경합적 민주주의 이론을 만든 무페가 그러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파악하기로 무페가 슈미트의 철학에서 집중하는 부분은 '친구/적' 개념이고, 다른 것들은 맑스주의와 포스트주의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논문 주제상 슈미트는 '친구/적' 개념을 중심으로 서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니체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그야말로 니체 철학 이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논쟁거리이기에 이 논문에서 그것을 다룰 수는 없었습니다. 니체와 민주주의의 친연성 문제는 학자마다, 또 어느 시기의 저작을 논의 베이스로 하냐에 따라서 의견이 달라지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는 니체가 민주주의와 친연적 관계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주장을 종합적으로 펼치기위해서는 수편의 논문을 준비해야할 것 같습니다. 안그래도 다음에 이 주제로 짧은 논문을 쓰려고 생각중입니다. 관련 논문을 퍼블리시하게 되면 다시 올빼미에 공유하고, 사려 깊은 코멘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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