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니체와 아도르노의 방법론인 계보학에 대해 논한다. 그에 의하면 계보학 자체가 비판 작업이므로 니체의 『도덕의 계보』에서의 작업과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의 작업이 그 자체 도덕(이데올로기) 비판이고 계몽(이성) 비판이다.
- Genealogie als Kritik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계보학이라는 방법을 도입하여 고전적인 인식론·역사철학적 방법론과 다른 방식으로 가치의 발생을 가능케한 조건을 탐구한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가치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긍정적으로 부여하지 않는다 (2)역사 자체를 구성적인 것이기에 비판적 역사관(Kritischen Historie)과 달리 역사를 애초에 비판과 분리 불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3)초월적 이성 능력에 대한 추상적·형식적 탐구 혹은 한계 설정이라는 칸트의 비판 철학과 다른 방식의 비판이다. 계보학은 순수하고 초월적 대상(rein noch transzendent)을 다루지 않고 비순수하고 일시적인 것(unrein und vergänglich)을 다룬다. 그리고 계보학적 시선에서 볼 때 실재에 대한 경험은 비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명석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현실이 필연성에서 벗어난 것인 바 현실은 계보학적 해석의 대상이다.
2.Genealogie als Kritik und Kritik als Aufklärung
쉽게 말해, 계보학은 당연한 것(역사적인 것, 과거의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것이 얼마나 몰락해야 하는지 분명히 인식하는 작업이고, 과거의 것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비판 이후에 우리는 대안적 미래를 그려낼 수 있다. 따라서 계보학은 애초부터 계몽과 비판이다.
"Diese Kritische Moment der Entzifferung in der Genealogie impliziert ein aufklärendes oder emanzipatorisches Moment. Die Kritik demaskiert die falschen Vorstellungen des Absoluten sowie die Hypostasierung der Ewigkeit der Werte und lässt zu, neue Werte zu schaffen, und zwar kritischer und selbstbewusster. Man könnte die Genealogie oder kritische Historie als Anfang einer Ideologiekritik verstehen(195)."
3. Dialektik der Aufklärung als genealogische Kritik der verwirklichten Aufklärung
아도르노는 계보학을 사용한 니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아도르노는 니체의 철학적 방법론뿐만 아니라 철학 내용도 수용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니체는 계몽의 변증법적 성격과 이중성을 인식한 철학자이다(정신의 보편적 운동; progressive; fortschreitend ↔ 삶과 적대적인 허무적 힘; repressive; rückschreitend). 또한 니체는 헤겔의 역사관과 이성에 대한 믿음을 비판한 철학자이다. 이러한 니체 철학과 계보학을 받아들임으로써 아도르노는 계몽을 더욱 비판적으로 숙고할 계기를 마련한다.1)
니체와 아도르노는 계보학을 통해 계몽의 억압적이고 해방적 면모를 모두 포착하고, 그것이 자기보존과 자기지양의 운동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파악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앞서 봤듯이 계보학 자체가 계몽과 비판이므로 니체의 『도덕의 계보』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은 계몽에 대한 계몽이다. 즉, 두 철학자들의 작업 -계몽에 내포된 이데올로기적 면모를 인식하는 것- 은 이데올로기화된 계몽을 극복하는 첫 단계로, 계몽의 과정에서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이 이데올로기로 변모했는지 깨닫는 계기를 마련한다. 따라서 『계몽의 변증법』 속 아도르노의 작업은 단지 어두운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도르노는 계몽을 시대적 개념이라는 틀에서 벗겨내어 그것의 역사적 운동을 파악하는 내재적 비판 작업이다. 이제 그의 『계몽의 변증법』이 비관적인 역사철학이라는 일면적 평가는 거두어야만 한다.
이렇게 이데올로기로 변모한 계몽에 대한 계몽의 내재적 비판을 통해서 우리는 희망의 여지를 마련한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제들이 모두 양심의 가책을 가진 채 사제가 되게끔, 그렇게 충분히 민중을 계몽할 것 … 마찬가지로 국가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저들로 하여금 떳떳한 양심을 갖게 하는 것, 그리고 무의식적인 위선을 유럽인들의 몸에서 다시 빼내기 위해, 군주와 정치인들에게 저들의 행동거지 전체가 고의적인 거짓이 되게 하는 것이 계몽의 과제다(니체전집 17권, 111-112)."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을 직접 행할 수는 없어도 알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을 인식은 해도 실제 행하지 않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러나 가끔 승리를 쟁취하기도 하고, 삶을 위해 비판적 역사를 이용하는 사람들,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심지어 이상한 위안도 있다. 다시 말해 저 첫 번째 천성도 언젠가 두 번째 천성이었고, 저 승리하는 두 번째 천성도 첫 번째 천성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안다는 위안이 그것이다(UM2,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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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따르면 아도르노와 니체 사이의 차이도 존재한다. 이 차이는 아도르노가 니체뿐만 아니라 헤겔도 수용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니체는 신화-계몽(노예-주인)을 반대항으로 두고 그것 사이의 갈등이 역사를 추동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니체는 서로가 서로를 규정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도르노는 더욱 변증법적으로 생각하여 지금 실현된 계몽이 곧 신화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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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신화의 가상적 성격에 대한 가장 내면적 근거를 이루는 희생 속에 있는 기만의 계기만이 오디세우스에게 자의식으로 남는다(DA, 90)"도 인용하는데, 무슨 의미인지 생각이 안난다.
출처: Mayor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