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롱댕의 형이상학적 해석학 vs. 바티모의 허무주의적 해석학

장 그롱댕의 Metaphysical Hermeneutics와 잔니 바티모의 Beyond Interpretation입니다. 이렇게 둘을 같이 나란히 놓고 보니 예쁘네요. 파란색 계열의 표지와 노란색 계열의 표지가 서로 대조를 이루어서 인상적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내용상으로도 둘은 가다머 이후 오늘날 해석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반대의 견해를 취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롱댕은 해석학이 형이상학적 전제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바티모는 해석학이 형이상학적 전제들을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니까요.

그롱댕의 Metaphysical Hermeneutics은 작년 9월에 출판되었습니다. 지난 10년에 걸쳐 그롱댕 자신이 '형이상학적 해석학'이라는 주제로 쓴 글들을 모아서 수정하고 보완한 책이에요. 저는 12월에 학교 도서관에 구입을 신청해서 어제 책을 받아보았네요. 그동안 학교 도서관의 전자책 기능을 이용하여 이 책을 읽었지만, 전자책에는 쪽수가 나오지 않아서 논문에 인용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다행히 자료구입 신청이 승락되어서, 지금 쓰고 있는 논문에서 공란으로 비워뒀던 쪽수를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티모의 책은 원래부터 제가 구매해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바티모가 쓴 여러 책들 중에서도 Beyond Interpretation이야말로 그의 허무주의적 해석학을 가장 잘 집약해 주고 있는 책이 아닌가 하네요. 120쪽 분량의 얇은 책이지만, (책의 추천사에 있는 리처드 로티의 표현대로) "대단히 야심차고 대단히 풍부한 책"이거든요. 니체로부터 발원한 니힐리즘을 해석학이 받아들일 경우 '과학', '윤리', '종교', '예술'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어떻게 총체적으로 바뀌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롱댕의 형이상학적 해석학과 바티모의 허무주의적 해석학이 둘 다 주석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심각한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들을 지적하는 것이 제가 요즘 쓰고 있는 학위논문의 제2장에서 핵심 내용이에요. 그리고 그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가 제 학위논문의 전체 기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요, 나름대로 굉장히 야심차게(?)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 언젠가 이 글들이 꼭 세상에 어떤 형태로든 빛을 보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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