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배우면 실존에 변화가 있다 vs. 없다

윤 선생님, 항상 바쁘실 와중에 정성어린 답글 주셔서 보물을 받은 것처럼 정말 감사합니다. 인용하신 강의는 올해 하신 랜선신학교 강의인지요? 늦게 발견해서 보고 싶은데 주최측이 특정 기간만 오픈하는 걸로 하셔서 아쉬웠습니다 ㅠㅠ 이미 이 내용으로 강의까지 하셨었다니, 제 질문이 적절한 질문이었다는 뿌듯함을 얻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이처럼 차가운(?) 리얼리티체크 내지 빨간약의 견해를 주시리라 이미 예상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의문으로 남는 부분은, "철학보다 종교나 예술의 역할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라는 언급에서처럼, 소위 "궁극적 진리 발견"의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지는 않으시는 듯한, 어떤 형이상-주체적 온기(?)를 느끼게 되는 점인 것 같습니다. 위 '철학은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서 TheNewHegel 선생님이 피력하신,

이같은 전적인 회의주의 입장과는 대비되는 듯 보입니다. 비록 윤 선생님도 위 글의 댓글에서 "환상, 어처구니 없는 생각" 등 강도 높은 표현으로 동조를 표하신 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어떤 지시 가능성의 여지를 두신다는 온건한 인상을 얻게 되는 건 아마 윤 선생님께서 기독교인이시고 유신론자이시기에 비롯되는 차이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1·2차 철학 텍스트들 뿐 아니라 단적으로 이곳 사이트에서의 여러 글, 토론이나, 윤 선생님의 블로그 글을 통하여도 많은 '실존적 통찰'의 자원을 얻은 경험이 있기에 더 의문의 여지가 남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스스로도, 헤겔 철학의 세계를 접하셨을 때를 "회심"이라고 표현하실 만큼 "감동으로 마음이 벅차오를 정도였다"고 회상하시고 (독일관념론 수업에 대한 회상), 키르케고르에 대해서도 "신앙에 대한 생각을 뿌리부터 뒤흔든 철학자였다"고 예찬하고 계시지 않으신지요? (신앙은 철학에게 무엇을 말해주었는가?: 키르케고르의 기독교 강화 네 편에 대한 철학적 해설)

그런 점에서 감히 거친 수사로 표현하자면, 큰 철학(uppercase Philosophy)에 대한 이런 일련의 포기 흐름이 어쩌면 '형이상학적 사다리 걷어차기' 또는 패배주의의 결과로 비쳐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건설적 우려를 조심스레 애정을 담아 표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소위 도사들의 폐해를 잘 알고 있기에 (그중에는 정통 철학자 출신도 계시겠지요), TheNewHegel 선생님과 윤 선생님 등의 진정어린 순수이성비판(?)에 십분 공감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본문 글을 쓰기 앞서 선생님이 마지막 제시하신 글('신앙주의')을 이미 꼼꼼히 읽었었습니다. 사족으로, 저는 더 이상 종교인은 아니지만, 윤 선생님은 MZ 세대의 강영안, 어쩌면 당연히 그 이상의 어떤 거목이 되실 분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워낙 소수에게만 주어진 콜링이라 남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고독하시겠지만 시대와 역사를 위해(?) 계속 정진해주시길 응원드리겠습니다. 갈수록 가벼움이 지배하는 시대에 여전히 "궁극적 진리"를 갈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잘 아시리라 믿으니 학계 밖의 대중과도 끈을 놓지 마시고 계속 귀중한 소통 이어가주세요. (유튜브 다음 업로드 빨리 부탁드린다는 뜻입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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