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계열의 기독교 출판사인 비아(VIA)에서 ‘오늘의 인물‘이라는 주제로 매일 기독교 신학자와 철학자를 SNS에 소개하는데, 오늘은 현대 해석학의 대가 중 한 명인 잔니 바티모가 올라왔네요. 해석학 전공자로서 제가 관심을 가지는 인물이기도 해서, 여기도 글을 옮겨봅니다.
[오늘의 인물] 잔니 바티모 Gianni Vattimo (1936~2023)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정치인. 1936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로마 가톨릭 환경에서 성장하여 12세부터 매일 미사에 참석했으며, 고등학생 시절 움베르토 에코와 깊은 우정을 쌓았다. 토리노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이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카를 뢰비트, 위르겐 하버마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에게 배웠다. 이후 토리노로 돌아와 2008년 은퇴할 때까지 토리노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1999년과 2004년 두 차례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해석학과 종교철학의 교차점에서 독자적 사상을 전개한 20세기 후반 유럽 대륙 철학의 주요 인물로 꼽힌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이른바 ‘약한 사유’pensiero debole이다. 이를 통해 바티모는 근대성이 구축한 형이상학의 토대들, 곧 객관적 진리, 단일한 역사, 보편 이성의 권위는 지속될 수 없으며, 철학의 과제는 이 토대들의 약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차이와 복수성을 위한 윤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1980년대 후반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복귀하면서 ‘약한 사유’의 연장선에 있는 ‘약한 신학’을 전개했는데 성육신과 케노시스, 곧 하느님의 자기 비움이 그 자체로 형이상학적 권력으로서의 신 개념을 해체하는 사건이라고 이야기했다.
주요 저술로 『근대성의 종말』La fine della modernità, 『투명한 사회』La società trasparente, 『믿는다고 믿음』Credere di credere, 『그리스도교 이후』Dopo la cristianità 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열 살 남짓 되었을 때, 나는 본당 성당에 다니곤 했다. 나는 그 공간에서 세상과 타인을 대하는 근본 태도를 벼렸고, 그 과정에서 사회와 정치와 종교를 향해 뻗어가는 관심도 함께 길러냈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여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까닭은 내 안에서 이렇게 뒤섞인 관심사들이 요구하는 바를 맹렬하게 살아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새로운 그리스도교 인문주의 뼈대를 세우는 작업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 인문주의는 자유주의가 뿜어내는 개인주의는 물론이요, 인간을 집단으로 뭉뚱그려 운명을 결정지어버리는 마르크스주의 양쪽에서 모두 벗어난 사유였다. 그 시절, 우리 가톨릭 청년들은 자크 마리탱이 쓴 저작들을 파고들었다. 그는 탁월한 신토마스주의 사상가이자 파시즘에 가차 없이 맞선 프랑스 지식인이었으며, 『온전한 인문주의』Integral Humanism라는 본문을 세상에 내놓았다. 나는 마리탱에게 근대가 우상으로 세운 몇몇 독단을 향해 깊은 불신을 품는 태도를 물려받았다. 이런 까닭에 아리스토텔레스를 파고든 박사 학위 논문을 마친 뒤, 니체와 하이데거가 직조한 사유에 몰두했다. 내 눈에 두 사람은 근대를 가장 뿌리째 흔들어 타격하는 비판가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이게도, 나는 이 두 사상가를 뚫고 지나가며 다시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혹은 그 신앙과 서늘하게 닮아 있는 어떤 심연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그들이 단지 근대를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교 자체를 타격한(특히 니체가 그러했다) 적대자들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리스도교 이후』 중
#오늘의신학공부 #오늘의인물공부 #오늘의인물 #로마가톨릭 #포스트모던신학 #해석학 #약한사유 #이탈리아 #20세기 #21세기
https://www.facebook.com/share/p/1BxNfAYorL/?mibextid=wwXIfr
*젊은 시절 바티모는 손석구를 닮았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