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학과 '삶의 의미'라는 단어는 땔 수가 없는 관계를 가진다. 고대 그리스든 고대 중국이든 고대 인도든, 철학이란 학문은 "무엇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2) 문제는 '삶의 의미'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도무지 정의내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이 단어를 이루는 두 단어가 모두 모호하다는 점에 있다. a) '의미 있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b) '삶'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확히 말하면, '삶'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3) 통상 '의미 있다'는 a) 행복(happiness)이나 웰빙(well-being)와는 구분된다 여겨진다. 왜냐하면 '의미 있는 것'은 극심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시리아 내전에서 반군편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싸우는 사람을 행복하다거나 웰빙하다는 점에서는 의심할 수 있으나, 그의 행동이 '의미 있다'는 것에는 대다수 동의할 것이다.
b) '의미 있다'는 단순한 '가치 있다' 혹은 '좋다'와는 구분된다. 통상 '삶의 의미'라는 것을 질문할 때, 우리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좋다'고 말하는 것들과 구별해서 이를 추구한다. (물론 대답자에 따라 질문이 겹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무수히 우리에게 '좋은 것'을 안다. 우정, 쾌락. 건강, 심지어 수단적이지만 돈 역시도 '좋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삶의 의미'에 대해 물을 때, 통상 이런 것들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 질문을 던진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좋다고 아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삶의 의미'로 여기는 듯하다.
(이는 '삶의 의미'에 대한 초월적인 접근에 주로 강조하는 바이다. 적든 크든, 유신론을 배경으로 하는 학자들은 삶의 의미는 '신과의 관계성' 속에서만 성립하며, 그렇기에 다른 '좋음'보다 '더 좋다'는 관점을 유지한다.)
(3-b) 나는 '삶의 의미'가 a) 개개인에 의해서 b) 의심이 없는 강도의 믿음으로 믿어지는 신념이라 주장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우리가 단순히 '좋다' 여기는 것도 '삶의의미'가 될 수 있다. 다만 이 때 이 대상을 단순히 '좋다' 여기는 것을 넘어서, '언제나 - 다른 가치보다 우선시해서 선택할 정도로 좋다'는 굉장히 강한 강도의 믿음을 수반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겨진다.
(4) 이 해석에는 여러 장점이 존재한다. i) 삶의 의미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주장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다. 유신론이든 아니든, 결국 개개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강도'가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우리가 ii) 통상 삶의 의미라는 것을 질문하는 상황에 비추어 좋은 대답을 준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는 이유는 앞서도 말했듯, 우리가 단순히 '좋은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5) 사실 이러면, 삶의 의미란 앎의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 그것도 확신의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