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종 & 윤유석, 『사유의 길: 대화의 해석학을 향하여』
1.
이승종과 윤유석의 공저 『철학의 길: 대화의 해석학을 향하여』(세창출판사, 2024)가 출간된 지 2년 만에 나온 후속작 내지 '보충편'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대화의 해석학'이라는 부제 아래서 철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한 주제들을 단순한 말하기가 아니라 2인칭적인 대화의 방식으로 사유한다. 본래 전작의 해제로 기획되었으나 분량상의 이유로 담지 못한 내용을 보충한 '제1부'는 '이정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대륙철학과 영미철학의 간격과 공유점 그리고 그 한계들, 그것을 극복하려는 두 흐름인 해체주의와 자연주의,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2인칭 철학'에 관한 사유와 설명으로 이루어진 이 챕터는 철학사에 대한 놀라운 독해 방식을 보여준다. 이 글은 말 그대로 '이정표'인데, 사유의 길을 터주는 길잡이 같은 글인 동시에, 토론으로 이루어진 '제2부'를 위한 서론의 역할도 한다. 특히 이 2부에서는 인공지능, 역사에 대한 관점들, 예술, 종교 등에 관한 중요한 문제들이 '2인칭 철학'의 적용으로서 논의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저술이 아니라 활동이며, 말 그대로 사유의 길이다.
2.
저자들은 '이정표'의 첫머리에서 대륙철학과 영미철학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서로 다른 사유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과학주의가 팽배하고 보편적인 관점이라고 생각되는 현대의 학문의 지평에서 대륙철학은 '과학과 수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주어지는 사태의 모습들에 집중하는 '현상학'과 '해석학'으로 나아가고, 분석철학은 그런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설명방식을 채택하는 '언어분석철학'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저자들은 이 두 철학적 사조가 각각 철학의 미래에 관해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퇴폐주의'와 실증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독단주의'로 나아간다고 진단한다. 이어서 그들은 이것이 '해체주의'와 '자연주의'에서 극복될 수 있다고, 또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를 빌려서 말하면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철학사에 대한 종래의 이해에서 양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입장으로 이해되었고 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던 반면에, 이 책에서는 두 입장을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즉, "세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해체하려는 시도와 삶에 주어진 원초적 사실을 기술하려는 시도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94쪽). 본질주의 비판이라는 공통된 토대에서 시작하는 두 입장은 자연이 사람의 '삶의 형식'으로 인간에게 주어진다는 '사람의 얼굴을 한 자연주의'에서 통합 또는 보완된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두 관점의 결합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 사유의 모슴이다.
이 책의 내용에서 흥미로운 부분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단순히 두 사조를 서로 떨어진 것으로 보지 않고, 상호간의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는 철학사를 경직된 방식으로 분리시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간주된 두 입장이 어떻게 서로 시작에서 공통된 토대를 갖는지를 넘어서 어떻게 서로 결과적으로 상호 보완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사유를 보여준다. 이런 방식의 사유는 제2부에서도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서로 대화의 관점에서 상호적으로 사유하려는 시도에서도 보여진다.
3.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자연주의' 역시도 매우 흥미롭다. 비트겐슈타인의 '삶의 형식' 개념에서 출발한 이 입장은 해체주의와 자연주의의 상호 보완뿐만 아니라 전통 철학과 현대철학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도 중요한 대안으로 자리잡는다. 이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자연의 사태들이 사람의 관점에서만 주어진다는, 즉 삶의 원초적인 사실을 기술하고자 하는 현상학적이고 해석학적인 입장과 기존의 이해 방식을 무너뜨리는 해체주의적 입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된다.
'사람의 얼굴을 한 자연주의'는 '2인칭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사유된다. 주관적 주어짐과 자아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에 철학을 토대짓고자 하는 1인칭 철학, 사물들의 독립성에 초점을 맞추어 사유하고 그것에 철학을 토대짓고자 하는 3인칭 철학은 2인칭 철학이라는 대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인칭 철학은 철학을 경직된 탐구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사유로서 제시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책에서 제시된 이런 사유는 우리의 앞으로의 철학적 이해에 큰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한다.
상호 대화의 2인칭 철학이라는 관점은 제2부에서 '토론'을 통해 구체화된다. 초청자들은 이승종 교수와 여러 주제들에 관해서 대화를 나눈다. '철학에 이르는 길', '영미철학', '대륙철학', '비교철학', '한국철학', '역사철학', '대화의 해석학' 등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곳에서는 단순히 철학적 이론에 관해서가 아니라 일상적인 문제들에 관한 통찰적인 철학적 시선 역시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이승종 교수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이 메울 수 없는 간격을 가지고 있는 듯 연구되는 현대의 연구 실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지며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색하는 답변을 제시한다. 또한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물음들에 대해 제시하는 '2인칭적' 답변들은 매우 매력적이다. 가령 그는 인공지능과 '우리'의 관계가 가질 수 있는 회의적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인공지능이 디스토피아를 야기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교수님의 표현과는 정반대로 우리가 로봇을 2인칭적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즉 로봇을 도구나 노예로 영구히 묶어두려는 데서 오는 불안 심리의 표출일 수 있습니다. 로봇이라는 노예의 해방이 우리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 말입니다. 인공지능과의 공존은 지배와 예속의 관점이 아닌 상호 교류를 통한 공진화의 추구로 방향 잡혀야 한다고 봅니다. 칸트의 인간성 정식을 도래할 로보 다자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일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배우는 로봇이 사람의 지배욕까지 배워이를 사람을 상대로 실현하려고 할 때 디스토피아가 올 것입니다. 로봇의 방향성은 일차적으로 로봇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성숙도가 로봇의 바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저는 로봇과의 교류를 통해 사람이 이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더욱 깊어지는 유토피아를 지향합니다." (350-51쪽)
결론적으로 이 책 『사유의 길』은 우리 시대에 처한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매력적이고 강력한 통찰을 우리에게 주는 '이정표'와 같은 책이다. 물론 제2부의 토론이 서로의 의견을 제시하며 논쟁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로 저자의 생각을 묻는 방식들로 쓰여 있는 점은 논쟁적 대화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말하는 '대화'가 논쟁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의 관계맺음과 이해를 의미한다면, 이 대화란 플라톤적 변증술을 넘어선 진정한 철학적 만남이며, 현대에 꼭 필요한 사유의 활동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