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철학 비전공자입니다.
몇 해째 홀로 철학책을 붙들고 있지만 철학을 만나는 방식은 늘 둘 중 하나였습니다. 2차 해설서를 펴면 철학은 3인칭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가 무엇을 주장했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는 형태죠. 1차 문헌을 펴면 철학은 일종의 독백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문장을 여러 번 읽고도 제대로 읽었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철학을 엿들어 온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뭔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발버둥치기도 했구요.
<사유의 길>은 그 엿듣던 틈을 열어젖힌 책입니다.
1부(이정표)에 정리된 해제는 2부(토론)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탁월한 나침반의 역할을 합니다. 방대한 주제를 커버 하면서도 깊이를 놓치지 않으며, 가독성 있게 서술하신 것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특히 토론 파트의 한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연주의를 다루는 대화에서, 김연경님이 이승종 교수님의 책에서 두 문장을 골라 나란히 놓습니다. 한 문장은 삶의 형식과 자연사가 수학의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른 문장은 그 둘의 변화가 새 수학의 충분조건이 된다고 말합니다. 서로 어긋나지 않느냐고 묻고, 이승종 교수님은 “충분조건이 된다”보다는 “충분조건일 수 있다”가 더 적합한 표현이겠다고 답합니다. 사소한 답변일지 모르지만, 정정하는 장면에서 어떤 품위가 느껴졌습니다. 남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말을 다시 검토하는 일은 우리가 존중이라 부르는 것의 가장 소박한 모양일 것입니다. 대화를 통해 길어낼 수 있는 지혜 중 하나겠죠.
이러한 ‘대화’를 정의한 대목도 인상적입니다. 둘 이상의 참여자 사이의 얽힘이어야 하고, 결론이 정해지지 않은 운동이어야 하며, 한쪽이 일방적으로 말하면 독백이고, 결론이 단정적으로 제시되면 통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생각, 다시 말해 ‘철학함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명료한 답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행위’라는 선입견 또한 깨졌습니다. 사유의 길은 대화를 통해야 하고, 대화에서는 답에 앞서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책의 대화 장면들을 생동감있고 풍성하게 한 것은 대개 답이 아니라 ‘물음’이었습니다.
귀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신 저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