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이야기에서 사무엘의 영이 등장하자 그 영을 불러낸 강령술사조차 스스로 깜짝 놀랐다는 점(사무엘상 28:12)으로 볼 때, 적어도 해당 이야기의 맥락에서는 사무엘의 영이 단순한 악령이 아니라 진짜 사무엘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 합니다. (천사, 악령, 지옥 개념 등이 정교하게 체계화된 제2성전기 이후 유대-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죽은 사무엘을 강령술사가 불러낸다는 게 어색해 보이겠지만, 그 구약 이야기만 떼어놓고 보면 강령술사가 불러낸 사무엘을 진짜 사무엘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야기 내적 근거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나저나,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교부 시대 기독교 철학자들이 성경 해석이나 신학 사상에 굉장히 열린 태도를 취한다는 게 올려주신 글에서도 드러나는 듯하네요. 난해한 구절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들의 가능성을 모두 인정하면서 청중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제시한다든가, 사울이 구원받을 가능성까지도 열어둔다든가 하는 점들 말이에요. 다른 텍스트들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든가, 심지어 성매매가 신학적으로 허용될 가능성을 고민한다든가 하는 등, 굉장히 거침 없이 그리스도교 사상의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죠. 어떤 면에서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교부‘보다 더 사유의 폭이 좁고 가부장적이지 않은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될 정도로 말이에요.